탈화석연료 경제로의 연착륙을 위해서는 산업구조와 도시구조가 변화해야 한다. 구조의 변화는 상당한 고통과 비용이 따르므로 에너지 효율화를 병행해야 한다. 현재의 산업과 경제에 영향도를 최소화하면서 에너지 효율화를 하는 방안이 그린 딜 혹은 그린 뉴딜과 디지털 전환을 연계하는 것이다.
유럽연합(EU)의 2022년 미래전략보고서(2022 Strategic Foresight Report)는 디지털 전환과 그린 딜을 연계하여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보고서에서 디지털 전환과 그린 딜을 쌍정(雙晶)이라고 표현했다. 쌍정이란 두 개의 결정이 대칭 형태로 붙어 있는 현상을 말하는데, 디지털 전환과 그린 딜이 그만큼 강한 연계성을 가진다는 의미다.
쌍정의 영역은 크게 다섯 가지다. 이를 나열하면 에너지의 디지털화, 친환경적 운송 체계, 제조업의 기후중립 촉진, 디지털화를 통한 주택과 건물의 친환경화, 마지막으로 지능적 친환경적 농업이다. 디지털 전환과 그린 딜이 유럽에서 쌍정이라면, 우리나라에서도 쌍정이다. 한국판 쌍정의 방향성을 간략하게 살펴보자.
전력 수요에 대한 실시간 측정을 통해 최적의 전력을 생산하도록 하는 스마트 그리드는 시급하게 정착돼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정부의 리더십이 중요하다. 기계식 전력계량기는 전자식으로 바꾸고 측정된 전력 소비량을 중앙 시스템에 전송하는 스마트 미터로 100% 교체되어야 한다. 대규모 사업인 만큼 비용 효율성이 높아야 하며, 통신 네트워크에 연결되어 있음에 따라 높은 보안성과 표준을 준수해야 한다. 적절한 이윤을 보장하여 기업의 혁신을 촉진하면서도, 표준의 제정 및 국가 단위의 비용 효율성 향상을 위한 정부 리더십을 높여야 한다.
서비스로서의 모빌리티(Mobility as a Service, MaaS)와 서비스로서의 운송(Transport as a Service, TaaS)은 운송수단을 소유의 대상이 아니라 서비스의 대상으로 인식하게 할 것이다. 배터리 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전기차를 포함한 운송수단의 전체 생애주기에서 배출하는 탄소량을 줄일 것이다. 정부는 이와 관련된 제도를 선제적으로 정비해야 하고, 기업은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로 이를 준비해야 한다.
제조업은 3D 프린팅, 사물통신, 디지털 트윈, 인공지능과 메타버스 등의 기술을 활용하여 투입되는 재료를 줄이고 공정의 에너지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 예방적 운영으로 공장의 효율성을 높이고 제품의 생명을 늘릴 수 있다. 가장 강조해야 할 것은 제품의 생애주기를 늘리면서도 기업의 적정 이윤과 창의성을 보장할 수 있도록, 제품과 비즈니스 모델을 결합해야 한다.
건물의 전 생애주기인 설계에서 운영 및 해체까지 디지털 기술을 이용하여 에너지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 앞으로 일부 건물을 제외한 모든 건물은 온실가스 배출 0을 달성해야 한다. 디지털 기술뿐만 아니라, 건물 높이가 낮아서 에너지 효율성을 확보해야 하며, 지열 등을 이용하고 냉난방이 잘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런데 이는 도시의 구조와 기능에 변화를 요구한다. 안타깝지만 기후변화는 현재의 마천루를 미래의 거대한 콘크리트 쓰레기로 만들 수도 있다. 도시의 구조와 역할에 대해서는 현재의 이익이 아니라 미래의 이익까지 제도적으로 고려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끝으로 농업은 디지털 기술을 이용하여 더 적은 비료와 물을 쓰도록 해야 한다. 운송비용도 적게 들 수 있도록 도시농업이 발달해야 한다. 목축산업은 앞으로 대체육과 배양육 산업으로 전환할 것이다. 기존의 목축업 농가는 대체육이나 배양육 협동조합을 결성하는 대안을 마련해야 하고, 농부는 1차산업의 종사자가 아니라 정밀농업과 농업용 사물통신의 지식산업 전문가로 탈바꿈해야 한다.
21세기 전반기, 세계는 디지털 전환과 탈화석연료 경제로 요동칠 것이다. 공동체, 지구생태계, 경제적 혁신이 역동적으로 균형을 이룰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헌법을 포함한 법제도와 한국 사회의 세계관 그리고 그 이면에 있는 근본적 내러티브까지 점검하고 변혁해야 한다. 한국 사회가 가야 할 길이 참 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