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크래커] 휴대용 선풍기, 쓸까 말까…"괜찮다"는 과기부 발표가 찜찜한 이유

입력 2022-08-02 13:35 수정 2022-08-02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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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시민들이 양산을 쓰고 손풍기를 들고 걸어가고 있다.(연합뉴스)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시민들이 양산을 쓰고 손풍기를 들고 걸어가고 있다.(연합뉴스)

날로 더해지는 여름 불볕더위가 괴로운 이들에게 필수로 꼽히는 휴대용 선풍기(손풍기)의 전자파를 놓고 정부와 시민단체간 의견 충돌을 빚고 있다. 정부는 시중에서 파는 20개 상품을 테스트한 결과 인체보호기준을 충족했다고 발표했지만, 시민단체에선 국제기준을 턱없이 모자란다고 반박하고 나서며 논란이 잦아들지 않고 있다.

과기부, 휴대용 선풍기 전자파 인체보호기준 충족 결론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시중에 유통 중인 ‘목선풍기’ 9대와 ‘손선풍기’ 11대 등 총 20대의 휴대용 선풍기의 전자파를 측정한 결과 국제 인체보호기준을 모두 충족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1일 밝혔다.

과기정통부는 국제표준과 동일한 국립전파연구원 기준으로 측정한 결과 국제 권고 인체보호기준의 2.2~37.0% 수준의 전자파가 측정됐다고 설명했다. 조사 제품 중 10개는 지난달 26일 환경보건시민센터가 전자파 측정치가 발암유발 기준치를 최대 322배 초과했다고 지목한 제품이다.

과기정통부는 환경보건시민센터가 활용한 계측기는 주파수별 전자파 측정이 어렵고, 안테나 크기도 국제규격에 맞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전자제품에서 발생하는 전자파는 주파수(0~300GHz)에 따라 인체보호기준이 다르기 때문에 주파수별로 구분해 측정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 환경보건시민센터가 주장한 발암유발 기준인 4mG(밀리가우스·전자파 세기 단위)는 세계보건기구(WHO)와 국제비전리복사보호위원회(ICNIRP) 등에서 과학적 증거가 부족해 인정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서울 종로구 광화문 광장에서 시민들이 양산과 손풍기를 들고 있다.(뉴시스)
▲서울 종로구 광화문 광장에서 시민들이 양산과 손풍기를 들고 있다.(뉴시스)

시민단체, 즉각 반박 성명

과기정통부의 이번 발표는 지난달 환경 시민단체가 휴대용 선풍기의 전자파가 위험 수준이라는 주장을 해명한 것이다.

환경보건시민센터는 지난달 26일 서울 종로구 센터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목선풍기 4종과 손선풍기 6종의 전자파 세기가 발암 위험을 높일 수 있는 전자파 세기로 알려진 4mG의 최소 7.4배에서 최대 322.3배 발생한 것으로 측정됐다고 발표했다.

이번 과기정통부의 해명자료 이후에도 환경보건시민센터는 즉각 ‘휴대용 선풍기 전자파 관련, 과기부 보도자료를 반박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센터는 과기정통부 발표가 가까운 거리와 오랜 노출시간 등 휴대용 선풍기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센터는 “손 선풍기를 10㎝ 거리에서 사용할 때 노출될 수 있는 극저주파 자기장 수준은 반도체 공장 노동자의 노출 수준보다 높다”고 주장했다.

센터는 WHO 국제암연구소(IARC)가 전자파를 그룹 2B에 해당하는 발암가능물질로 지정하고 4mG를 기준으로 삼았다고 주장했다. 그룹 2B는 발암 가능성이 있는 물질 가운데 인체 자료가 제한적이고, 동물실험 결과도 충분하지 않은 경우를 말한다.

환경보건시민센터 운영위원인 박동욱 방송통신대 환경보건학과 교수는 “휴대용 선풍기를 일반 시민들은 지속(만성)적으로 사용하고 있는데 과기정통부의 전자파 위해성 기준은 한번 노출에 망막까지 손상시킬 수 있는 급성 기준을 가지고 평가한다”며 “전자파 위험 판단 기준이 개선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서울 종로구 청계천 인근 다리에서 한 시민이 양산과 손풍기를 들고 걸어가고 있다.(뉴시스)
▲서울 종로구 청계천 인근 다리에서 한 시민이 양산과 손풍기를 들고 걸어가고 있다.(뉴시스)

제각각 기준 놓고 평행선

과거 송전탑 설치를 놓고도 인근 주민들과 비슷한 갈등을 겪은 사례가 있다. 지난해 창원시 마산합포구 월영동 송전탑 증설사업을 두고 전자파를 우려하는 인근 대단지 아파트 주민과 사업 주체인 한전 등이 갈등이 벌어졌다.

흔히 전자파라고 알려진 ‘극저주파 자기장’은 암을 유발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이 극저주파 자기장을 발암 물질로 분류했다.

그러나 자기장의 양에 상관없이 극저주파 자기장의 발암 수준은 절임 채소류나 고사리 정도라는 주장도 있다. ‘발암 가능성이 있을 수도 있다’는 정도라 과학적 근거는 아직 명확하지 않아서 학계에서도 논란이 계속되는 중이다.

이번 갈등에서 정부와 시민단체의 기준이 다른 것도 문제다. 극저주파 자기장 수치의 단위는 밀리가우스(mG)다.

정부는 국제비전리복사보호위원회(ICNIRP) 기준을 준용하는데, 극저주파 자기장은 2000mG를 넘지 않으면 된다. 우리나라는 이 기준보다 좀 더 엄격하게 833mG를 적용하고 있다. 이 기준에 따르면 휴대용 선풍기는 문제가 없다.

반면 시민단체는 국제암연구소(IARC) 기준을 준용한다. 이 기준에 따르면 3~4mG의 전자파라도 10년 이상 노출되면 어린이 백혈병 발병률이 2배 커진다고 보고 있다.

우리나라와 같은 기준을 적용하는 나라는 영국과 호주 등이며, 시민단체가 요구하는 수준을 적용하는 나라는 스웨덴(2mG), 네덜란드(4mG), 스위스 (10mG) 등이다. 시민단체는 혹시 모를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서라도 엄격한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만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시민단체가 주장하는 나라들의 기준은 고압 송전선로를 지을 때 전력회사에 권고하는 수치로 일반 가전기기와 무관하다"고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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