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과 고위공직자수사처가 고발 사건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서로에게 칼을 겨누게 됐다. 검찰이 김진욱 공수처장 등 문재인 정부 당시 임명된 고위공직자의 피고발 사건을 서울중앙지검에 무더기로 이송했고, 공수처는 ‘서울시 공무원 간첩조작 사건’ 피해자 유우성 씨가 고발한 ‘보복기소’ 사건을 살펴보고 있다. 당시 수사ㆍ기소를 담당한 검사를 수사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2일 법조계에 따르면 검찰과 공수처는 고발 사건 처리 과정에서 서로를 수사할 수 있는 여건이 형성되고 있다. 최근 ‘우선수사권’을 비롯해 검찰과 공수처 갈등이 격화하는 상황에서 서로를 수사하는 일이 벌어질 수 있는 계기가 생겼다.
앞서 검찰은 지난달 27일 대선 당시 윤석열 대통령과 배우자 김건희 여사, 기자 등을 상대로 통신 조회했다며 김진욱 공수처장이 고발된 사건을 수원지검 안양지청에서 서울중앙지검으로 이첩했다. 추미애ㆍ박범계ㆍ박상기 전 법무부 장관과 이용구 전 차관 등 사건도 넘겼다. 답보해있던 사건들을 서울중앙지검으로 넘기면서 수사 탄력이 붙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공수처도 검찰 관계자를 수사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서울시 공무원 간첩조작 사건’ 피해자 유우성 씨가 2014년 검찰에 '보복기소'를 당했다며 지난해 11월 김수남 전 검찰총장(당시 서울중앙지검장)을 비롯해 신유철 전 검사장(당시 서울중앙지검 1차장검사), 수사 실무진이었던 이두봉 대전고검장(당시 서울중앙지검 형사2부장), 안동완 수원지검 안양지청 차장(당시 담당 검사) 등을 고발했다.
이 사건과 관련해 공수처는 6월 박광일 북한민주화청년학생포럼 대표를 참고인 신분으로 조사했다. 탈북단체 대표 2명도 조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2014년 3월, 유우성 씨를 출입경기록 위ㆍ변조 의혹, 사기, 외국환거래법 위반 등 혐의로 고발했다. 법조계에서는 2014년 당시 '보복기소' 과정을 살펴보고 있는 것 아니냐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한 형사전문변호사는 "검찰과 공수처가 각각 고발 사건을 처리하면서 서로를 수사할 수 있는 명분이 생긴 것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그는 "서울중앙지검은 전국 최대 검찰청인데 공수처 사건을 모두 넘겼다면 수사력을 집중하겠다는 의지를 가진 것"이라며 "공수처 역시 유우성 씨 고발 사건 관련해 관계자들을 소환하고 있는 걸 보면 현재 수사에 힘을 싣는 것 같다. 수사 방향이 검찰 관계자를 향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검찰과 공수처는 고발 사건 외에도 '우선수사권'을 놓고 알력 다툼을 벌이고 있다. '우선수사권'은 공수처 범죄수사와 중복되는 다른 수사기관의 범죄수사를 두고 공수처장이 이첩을 요청하면 해당 수사기관이 이에 응해야 한다는 '공수처법 24조 1항'을 의미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후보 시절 이 조항이 ‘독소조항’이라며 폐지를 공약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 역시 지난달 26일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우선적 수사권 문제를 개선하도록 법무부 차원에서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반면, 공수처는 이 조항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공수처 관계자는 이날 경기도 정부 과천청사에서 가진 정례 브리핑에서 “공수처 설립 목적을 보면서 필요한 부분을 따져야 하고 이첩요청권은 반드시 필요하다”며 "꼭 필요한 상황이 생겼는데 해당 조항이 없으면 공수처는 제 기능을 못 한다”고 강조했다.
공수처는 관련 사건이 서울중앙지검으로 이첩된 것과 관련해 "별다르게 할 말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유 씨 관련 사건에 대해서는 "정확히 말하긴 어렵다"면서도 "참고인 조사는 맞는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