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탑골 : 매벌이

입력 2022-08-09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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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의 등장인물과 이야기는 모두 허구임을 밝힙니다.

2020년 9월 2일, 헬반도 꼰대들은 최상위 1% 꼴통을 골라 뽑은 엘리트 단체를 설립했다. 이 단체는 사라져가는 팀킬 전투감각을 향상시켜 꼴통들을 세계최고의 자폭테러단로 만드는데 그 목적이 있었고, 이 계획은 성공했다. 오늘 날, 헬반도에서는 그들을 구태의힘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꼴통들은 이 전투학교를 이렇게 부른다 : 탑골

2024년 2월 헬반도 중부지역.

‘콰아아아아아아아’

DW14-라보의 애프터버너가 불을 뿜었다. 당원들이 엄지를 높이 세우며 출격을 지시하는 수신호를 보내자 스톤(콜사인 매벌이)을 태운 라보가 굉음을 내며 달려나갔다.

매벌이가 두 팔을 하늘로 번쩍 들어 올리며 용태(콜사인 용태)에게 소리쳤다. “거봐, 시동만 걸리면 된다고 했잖아!”

“뉘에, 뉘에...이 골동품이 움직인다는게 신기할 따름이네요” 어쩐 일인지 용태의 목소리는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질주하는 라보의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던 용태가 입을 열었다. “진짜 할 겁니까?”

매벌이가 썩소를 머금자 용태가 말을 가로챘다. “그 표정 짓지 마세요”

“설마 또 윤카(콜사인 짜장)를 믿는 겁니까? 2년 전 일을 벌써 잊었어요? 아무리 용궁이 괴멸상태라지만, 탑골은 여전히 간(콜사인 찰스)과 장(콜사인 뉴클리어 원) 손아귀에 있어요. 공무원시험합격(콜사인 뉴클리어 투)도 다시 탑골 교장자리를 노린다잖아요. 그 뿐 인줄 아세요? 언데드(콜사인 유재석)가 걸어다니는 걸 봤다는 사람도 있답니다. 물론 숨은 안 쉰다고 합디다만...아무튼, 이번 전투가 끝나면 또 등에 칼을 찔러 넣을 거라는 걸 정말 몰라서 이래요?”

매벌이는 짧은 한숨을 내쉰 뒤 다시 썩소를 지었다. “그렇다고 그 섬을 또 청건적에 내줄 수는 없잖아. 청건적 뒤에는 오랑캐가 있다는 걸 알면서 그래. 그 섬을 또 뺏기고 용궁까지 잃으면 자칫하다간 헬반도가 통째로 오랑캐 손에 넘어가”

용태의 표정이 굳어졌다. “매벌이, 상대는 찢자이밍(콜사인 매이햄)이에요. 막산이 미사일에 맞으면 끝장이라고요. 이유 없이 살기 싫어져서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잖아요. 10연발 초밥탄으로 무장한 5세대 호위대는 또 어떻게 상대할 겁니까? 아무도 그들을 실제로 본 적 조차 없어요!”

매벌이가 그 표정을 지으며 용태를 달랬다. “50일이면 충분해. 너야 말로 2년 전 개싸움에서 연속으로 이긴 걸 잊었어?”

용태의 머릿속에 2022년 당시의 용궁 공성전이 스쳐 지나갔다. 탑골 멤버 중 실전에서 세 번이나 청건적을 물리친 전력을 가진 건 매벌이 뿐이었다. 그가 전투를 이끌면서 쉽게 이길 줄 알았던 용궁 쟁탈전은 용왕 후보 짜장과 참모 뉴클리어들의 1일 1망언 자폭으로 날이 갈수록 패색이 짙어가고 있었다. 갈라치기 전술로 치고 빠지는 매이햄과 청건적의 게릴라전술에 말려든 탑골을 구해낸 건 매벌이의 한줄공약 포와 쇼츠 건이었다. 언제 어디서든 쏠 수 있는 모바일 무기가 보급되자 자원입대하는 청년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고, 오랑캐가 뿌려대는 선동 플레어를 무력화시키며 전세를 순식간에 뒤집었다.

“그렇지만...”용태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결국 매벌이를 탑골 교장에서 끌어내렸잖아요. 이번에도 꼴통들 실력으로는 그 섬을 뺏길 것 같으니 매벌이를 부른 거고, 전투가 끝나면 또....”

“삐삐삐삐삐!!!!” 갑자기 경보음이 울렸다. “매이햄 출현! 매이햄 출현!” 용태가 소리쳤다. “막산이 미사일 발사됐어요. 따돌려야 해요!”

매벌이는 라보의 속도를 끌어올렸다. 용태가 소리쳤다. “10km/h를 넘기면 안돼요. 10.1도 10.2도 아니고 딱 10!” 차체가 덜컹대고 창에 금이 가는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매벌이는 속도를 줄일 생각이 없어 보였다.

“최고 속도까지 올릴테니 안전띠를 풀고 탈출해!” 매벌이가 다급히 외쳤다. “탈출장치가 고장났어요!” 용태가 울부짖었다. “삐삐삐삐삐삐!!” 경보음이 점점 커져갔다. “안되겠는데요!” 용태가 고함을 질렀다. 매벌이의 머릿속에 그네(콜사인 닭)가 스쳐갔다. “미안해 닭...”

그 때였다. 어디선가 날아든 정밀유도 육모방망이가 매이햄을 때리면서 막산이 미사일과 함께 폭발했다. 윾(콜사인 치타)의 목소리가 들렸다. “오랜만이야 매벌이, 나다 짜근엄...아니 치타” 치타는 안경을 쓰윽 밀어 올린 뒤 대답할 틈도 주지 않고 기수를 돌려 빠르게 멀어졌다. “또 보자고, 매벌이”

“왓더ㅍ...” 거친 호흡을 가다듬던 용태는 불현듯 불길한 얼굴로 매벌이의 표정을 살폈다. “안돼...하지말아요...제발” 매벌이가 그 표정을 지으며 용태를 달랬다. “생각하지 마. 그냥 해”

보일 듯 말 듯 고개를 끄덕이던 용태가 결심한 듯 ‘후읍’ 크게 심호흡을 삼킨 뒤 물었다. “어디로 가죠?” “계수나무골” 매벌이가 미소를 띠며 대답했다. 용태는 어이없다는 듯 웃음을 터트렸다. “매이햄 본진? 미쳤네. 하하하하”

해가 지고 있었다. 매벌이를 태운 DW14-라보는 내려앉는 석양 속으로 천천히 사라져갔다. 저 멀리 계수나무골 상공에 막산이 미사일이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오르고 있었다.

In memory of PeopleP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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