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크래커] 한국에만 있는 ‘Banjiha(반지하)’?…진짜 없어질 수 있을까

입력 2022-08-11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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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기생충의 한 장면. )
(영화 기생충의 한 장면. )

기록적인 폭우에 일가족 3명이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안타까운 사고에 외신들도 주목했는데요. 외신들이 주목한 것은 이들이 숨진 주택이 ‘반지하’였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외신에서는 반지하를 ‘Banjiha’로, 한국말 그대로 옮기면서 진정한 비극이 일어났다고 언급했는데요.

실제로 이번 사고는 반지하라는 한국만의 독특한 주택 형태 때문에 더 큰 피해를 불러왔다고 합니다. 주민들이 필사적으로 나섰지만 창으로 물이 들이치는 반지하의 구조적 문제로 인해 피해자들을 구조할 수 없었다고 하는데요. 이에 정부는 반지하 주택을 없애겠다는 특단의 조치까지 내놓았습니다.

그런데 먼저 살펴봐야 할 것이 있습니다. 왜 한국에만 반지하라는 특이한 주거 형태가 자리잡게 된 것일까요? 또 문제가 있다고는 하지만 누군가에겐 삶의 터전인 반지하 주택을 정부가 일시에 없앨 수 있는 걸까요?

▲침수로 고립돼 일가족 3명 사망한 관악구 한 빌라 앞. 8일 오후 9시 7분께 서울 관악구 부근 한 빌라 반지하에 폭우로 침수된 일가족 3명이 갇혀 신고했지만 결국 사망했다. 외신들은 우리나라의 폭우를 보도하며, 이 사고를 비중있게 다뤘다.(연합뉴스)
▲침수로 고립돼 일가족 3명 사망한 관악구 한 빌라 앞. 8일 오후 9시 7분께 서울 관악구 부근 한 빌라 반지하에 폭우로 침수된 일가족 3명이 갇혀 신고했지만 결국 사망했다. 외신들은 우리나라의 폭우를 보도하며, 이 사고를 비중있게 다뤘다.(연합뉴스)

‘반지하’를 덮친 수해…일가족 3명 참변

지난 8일 기습적인 폭우로 서울 관악구 신림동 반지하 주택에 거주하던 초등학교 6학년 어린이와 그 어린이의 어머니, 이모가 고립돼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당시 이모는 전날 집 안으로 빗물이 들이닥치자 지인에게 침수 신고를 해달라고 요청했고, 지인은 오후 9시쯤 경찰에 신고까지 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급박한 상황 속에서 주민들도 이들을 구조하기 위해 나섰다고 합니다.

하지만 물이 빠르게 차는 반지하라는 주거 특성 탓에 상황은 순식간에 악화됐습니다. 이들의 비극적인 희생에 다들 안타까움을 금치 못했는데요. 윤석열 대통령도 사고가 있었던 신림동 반지하 현장을 직접 찾았습니다.

특히 외신이 이번 사건을 집중 보도했습니다. BBC는 “진정한 비극은 분홍빛이 섞인 벽돌색 다세대 주택에서 일어났다”며 “창문과 연결된 반지하 집에서 일가족 3명이 숨졌다”고 보도했습니다.

이어 “이 집은 오스카상을 수상한 영화 기생충에 등장하는 ‘반지하’(banjiha)와 거의 똑같이 생겼다”며 “이곳에서 일어난 일은 주인공 가족이 폭우로 인해 집에 들어찬 물을 필사적으로 퍼내는 모습을 연상시킨다. 하지만 현실에서의 결말은 더 최악”이라고 했습니다.

뉴욕타임스(NYT)도 폭우 소식을 보도하며 서울의 반지하 거주민 중에는 빈곤층이 많다는 과거 기사를 소개했으며, 아랍권 매체 알자지라 방송은 서울의 폭우 피해를 상세히 전하며 반지하 주택에 대해 오스카 수상 영화 기생충에서 묘사된 ‘비좁은 지하층’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반지하 주택이 외신의 주목을 받은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이번 보도에서도 언급된 것처럼 반지하 주택은 2020년 아카데미상을 받은 영화 기생충에 등장하면서 주목을 받았는데요. 당시 BBC는 “영화 ‘기생충’은 허구지만 한국의 반지하는 그렇지 않다“며 ”그 앞에서 담배를 피우거나 땅에 침을 뱉는다. 여름에는 참기 힘든 습기와 빨리 퍼지는 곰팡이와 싸운다. 빛이 거의 없어 다육식물도 살기 힘들고 사람들은 창문을 통해 집 내부를 들여다볼 수 있다”고 반지하 주택을 묘사했습니다.

그러면서 “반지하는 가난을 상징한다며 ”내가 사는 곳이 내가 누구인지를 규정한다“ 설명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9일 서울 관악구 신림동 침수 피해 현장을 방문, 현장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이 반지하 주택에서는 발달장애 가족이 지난밤 폭우로 인한 침수로 고립돼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9일 서울 관악구 신림동 침수 피해 현장을 방문, 현장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이 반지하 주택에서는 발달장애 가족이 지난밤 폭우로 인한 침수로 고립돼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연합뉴스)

반지하, ‘가난의 상징’…1970년대 주택 방공호 개념으로 도입

상당히 날카로운 묘사인데요. 실제 반지하 주택은 옥탑방, 고시원 등과 함께 가난을 상징하는 주거 형태 중 하나입니다. 그런데 유독 반지하가 주목을 받는 이유는 반지하 주택이 유독 한국에서 두드러지는 주거형태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반지하는 다른 나라에도 존재합니다. 하지만 한국처럼 많지는 않죠. 이에 외신에서도 반지하를 반지하의 한국어 발음을 알파벳으로 그대로 옮긴 ‘banjiha’라고 표현할 정도입니다.

왜 한국에서 유독 반지하 형태의 주택이 발달한 걸까요. 이유가 있습니다. 국토연구원과 국회 입법조사처에 따르면 반지하 주택은 1970년 주택 방공호 개념으로 도입됐다고 합니다. 북한과 극한 대립이 이어지던 당시 주택 내 대피소로 활용하기 위해 지하층을 설치하도록 건축법에 명시한 것인데요.

당시만 하더라도 반지하 공간을 거주지로 임대하는 것은 불법이었습니다. 하지만 1980년대 주택 위기가 찾아오면서 정부는 이 공간을 거주 시설로 합법화했습니다. 치솟는 집값으로 서민들이 주거 공간을 확보하는데 어려움 겪자 반지하 주택이 대응 방안으로 떠오른 것이죠.

유현준 홍익대 건축학과 교수는 자신의 유튜브에서 “70년대를 거치면서 우리나라 인구의 대부분이 다 도시로 이동하게 되면서 도시의 인구가 엄청나게 늘어났다”며 “주거가 부족해지면서 반지하 공간을 세를 주기 시작하고 그게 지금 도시에서 가장 적은 임대료를 내고서 머물 수 있는 공간이 됐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에 반지하 주택은 우리나라 주요한 거주 형태로 자리잡았는데요. 2020년 통계청 조사 결과, 지하 또는 반지하에 거주하는 가구는 전국 32만7000가구로 집계됐는데요. 이 중 수도권에는 31만4000가구가 몰려있다고 하빈다. 그 중 서울 내 반지하 가구 수는 무려 20만1000가구에 달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반지하는 없어져야 할 주거 공간으로 꼽히고 있습니다. 이번 폭우와 같이 침수피해가 컸을 때마다 반지하 주택에 대한 핍박(?) 역시 강도를 더했는데요. 지난 2010년 집중호우가 발생해 저지대 노후 주택가를 중심으로 인명·재산 피해가 집중되자 정부는 침수 우려 지역에 반지하 주택 신규 건축허가를 제한하도록 관련 법을 개정하기도 했습니다.

폭우 취약한 반지하 주택, 없앤다...실현 가능성은?

기록적인 폭우로 침수 피해 커진 현재 또 다시 반지하 주택을 없애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데요. 서울시는 지하·반지하 주택을 완전히 없애겠다는 계획을 야심차게 발표했습니다.

먼저 시는 지하·반지하의 ‘주거 목적의 용도’를 전면 불허하도록 건축법을 개정하기 위해 정부와 협의하기로 했습니다. 이번 주 중으로 건축허가 시 지하층은 주거용으로 허가하지 않도록 각 자치구에 ‘건축허가 원칙’을 전달할 계획입니다.

또 ‘반지하 주택 일몰제’도 추진합니다. 이는 기존에 허가된 지하·반지하 건축물에 10∼20년의 유예 기간을 주고 순차적으로 주거용 지하·반지하 건축물을 없애는 제도입니다.

서민들의 주거 환경을 개선시킬 수 있다는 측면에서 이번 조치는 긍정적인 반응을 얻고 있습니다. 하지만 실효성이 있을지는 선뜻 공감하지 못하고 있는데요.

당장 반지하에 살고있는 서민들은 ”반지하라도 없으면 싸게 묵을 수 있는 집이 어딨냐“고 하소연 합니다. 이에 전문가들은 ‘반지하 퇴출 정책’이 실제 성과를 내려면 기존 세입자의 대체 주거지 마련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하지만 시는 이번 발표에서 긴급히 이주해야 하는 지하·반지하 세입자 수나 이를 매칭하기 위한 공공임대주택 물량 확보 상황, 주거 바우처 예산 규모 등 구체적인 내용을 내놓지 못했습니다.

또 다시 침수로 인한 비극이 발생하지 않도록, 주거 환경 대책 마련에 나선 것은 필요합니다. 하지만 3년 전 영화 ‘기생충’이 세계의 주목을 받았을 때도 정부는 반지하 가구 주거의 질을 올릴 대책을 내놓겠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그러나 정부의 대책 마련은 기약 없이 미뤄졌고 그사이 빗물은 반지하 주택을 휩쓸었습니다.

이번에야말로 이런 비극이 반복되지 않을 정책이 나올 수 있기를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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