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박근혜 탄핵 망각한 보수정권의 오만

입력 2022-08-23 05:00 수정 2022-08-23 0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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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창 국장대우 정치경제부장

이준석은 지난해 전당대회 전 36세에 국회의원 경험이 전무한 0선이었다. 정치 신예나 다름없는 그가 국민의힘 대표가 됐다. 30대 원외 대표는 우리 정치사에 전례가 없는 파격이다. 박근혜 탄핵으로 무너진 보수세력의 절박한 선택이었다.

그의 대표 당선은 보수 부활의 신호탄이었다. 국민의힘은 2016년 이후 대선과 총선, 지방선거에서 한 번도 이긴 적이 없다. 연전연패였다. 보수마저 등을 돌리면서 당의 존립 기반이 흔들렸다. 절망적인 상황에서 보수의 희망으로 떠오른 게 윤석열이었고, 보수 결집의 결정판이 이준석 대표 선출이었다. 그는 모난 성격과 갈등 유발형 리더십으로 윤석열 후보와 두 차례의 심각한 위기를 맞았지만, 대선과 지방선거 승리로 보수의 기대에 부응했다. 그는 그렇게 여당 대표가 됐다.

그의 무기는 젊은층 표다. 보수 정치인으로서는 차별적 강점이다. 지지 기반을 넓힐 수 있는 그만의 경쟁력이다. 대선 승리의 1등 공신이 된 원동력이었다. 그에게 호감을 가진 이대남과 그가 공들인 호남의 약진이 없었다면 윤석열 대통령의 승리는 장담할 수 없었다. 전통적으로 민주당에 기울었던 20대 남성의 58.7%가 윤 대통령에게 표를 몰아줬다. 호남에선 역대 최고 득표율을 올렸다. 8할은 이준석의 몫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그가 이젠 여권의 최대 리스크가 됐다. 핵심 집권세력의 권력욕이 부른 뺄셈정치의 비극이다.

정권을 잡은 여권 핵심세력은 선택의 기로에 섰다. 눈엣가시 같은 이준석과 불안한 동거를 이어갈지, 아니면 버리고 갈지는 향후 권력 구도와 직결된 문제였다. 순리대로 이준석 체제로 계속 간다면 내년 6월 전당대회서 당을 장악한다는 보장이 없었다. 그렇다고 정권교체를 선물한 대표를 내칠 명분도 없었다. 게다가 이준석은 선거 승리 여세를 몰아 혁신위를 꾸리고 차기 총선을 겨냥한 강드라이브를 걸었다. 다분히 윤핵관을 겨냥한 행보였다. 총선 공천권을 갖는 차기 대표를 양보할 수 없는 윤핵관은 초조했을 것이다. 이들의 고민을 일거에 해결해 준 게 이준석 성상납 의혹이었다. 이준석을 버리기로 했다. 당 윤리위는 경고 정도 나올 거라는 전문가들의 예상을 뒤엎고 당원권 정지 6개월이라는 중징계를 내렸다. 곧바로 당은 윤핵관인 권성동 대표 대행체제로 갔다. 이준석의 대표직은 정지됐다.

이 와중에 윤 대통령의 문자 파동이 불거졌다. 이준석과 윤핵관의 싸움이 윤 대통령의 전면전으로 비화했다. 국민의힘은 문자 파동의 장본인인 권성동 대행체제를 끝내고 비대위 체제로 전환했다. 대표직을 잃은 이준석은 반발하며 가처분 신청을 냈다. 그는 “국민도 속고 나도 속았다”며 윤 대통령 공격을 서슴지 않고 있다. 대선에서 이긴 여당의 전 대표가 대통령을 공격하는 초유의 사태다.

결과는 참담하다. 한때 60% 가까이 갔던 윤 대통령 지지율은 20% 초반까지 밀렸다. 부실한 인사와 비선 논란 등 여러 악재가 겹쳤지만 지지율 하강에 속도를 붙인 건 단연 이준석과의 갈등이었다. 윤 대통령은 인적 쇄신 등 민심 수습에 나섰지만, 이준석 리스크가 해소되지 않는 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이미 이준석을 지지했던 젊은층의 이탈이 심각하다. 대선에서 윤 대통령을 밀었던 2030 남성의 60%가 지지를 철회했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게다가 이준석은 차기 당대표 적합도에서 1, 2위를 다툴 정도로 존재감이 여전하다. 윤 대통령의 정치적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더 큰 고민은 이번 갈등의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선 땐 대선 승리라는 공동의 목표가 있어 몇 차례 갈등 봉합이 가능했다. 지금은 두 사람의 지향점이 정반대다. 갈등이 쉽사리 정리되기는 어렵다는 의미다. 여권 내에선 이준석·유승민 연대설이 고개를 들고 있다. 신당 얘기까지 나온다. 정권 초 이런 얘기가 나오는 것 자체가 보수 분열의 예고편이다.

이준석 갈등은 실패로 끝난 과거 측근 정치의 데자뷔다. 측근 정치는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보수의 대표적 적폐다. 멀리 갈 것도 없다. 이명박·박근혜 정권이 그랬다.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자 대통령 측근그룹(친이계)이 친박(친박근혜)계에 대한 ‘공천학살’을 강행했다. 서청원 등 친박계 일부가 탈당해 만든 친박연대는 그 결과물이었다. 박근혜 정권에선 거꾸로 친이를 포함한 비박계가 핍박을 받았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인장을 갖고 사라진 ‘옥새 나르샤’는 계파 갈등의 정점을 찍은 사건이었다. 이런 적폐의 종착역은 박근혜 탄핵이었다. 보수는 처절하게 무너졌다. 불과 5년 전 얘기다. 어렵게 정권을 되찾은 보수는 아직도 정신을 못차리고 있다. 권력에 취하면 오만해지기 마련이다. 실패의 역사가 되풀이되는 건 아이러니다. leej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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