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세상의 모든 걸 바꾸는 ‘이자’

입력 2022-08-30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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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호 부국장 겸 금융부장

1455년 요하네스 구텐베르크가 인쇄기를 발명했다. 가톨릭 교회의 문서를 인쇄하는 일을 했는데, 자금이 부족해 사업가 요한 푸스트의 돈을 빌려 거대한 두 권짜리 성서를 인쇄했다. 그런데 단 200권을 인쇄한 후 돈이 바닥나 버렸다. 대출 이자를 갚을 수 없게 된 구텐베르크는 푸스트에게 인쇄기를 빼앗겼다. 막상 큰돈을 번 것은 영업망을 구축해 독일과 프랑스 등에서 종교 책자를 판매한 푸스트였다.

1946년 10월 일본에서는 토지개혁법안이 통과됐다. 지주들은 연 3.6%의 이자를 30년 동안 지급하는 채권을 받고 시장가치보다 낮은 금액에 땅을 내줘야 했다. 토지개혁으로 약 200만 가구가 손실을 보았지만 400만 가구가 이득을 봤다. 결국, 농경지 약 5분의 2의 주인이 바뀌었다. 1950년대 중반에 소작지 비율은 토지개혁 전 10분의 1 미만으로 축소됐고 임대료는 대부분 사라졌다고 한다.

1990년대 중반 태국은 환율 안정을 위해 바트화를 팔고 달러화나 엔화 등 외화를 사들였다. 태국중앙은행은 채권을 팔아 바트화를 환수하려 했는데, 그 결과 국내 이자율이 올라가고 다시 해외로부터의 차입은 더 늘어나게 됐다. 마침내 태국은 지속적인 통화팽창으로 고정환율제를 포기해야 했다.

글로벌 금융위기였던 2009년 당시 금융시장 안정을 위해 우리나라에서는 은행 자본 확충 펀드가 조성됐다. 한국은행이 10조 원을 내는 등 총 20조 원을 투입할 계획이었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자 집행액이 3조5900억 원에 불과했다. 대규모로 지원받으면 부실은행으로 낙인 찍힐 수 있다는 우려도 있었지만 높은 이자가 은행들을 망설이게 했다.

2014년 일본 국가부채비율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250%에 달했다. 일본 정부는 세수의 4분의 1을 국채이자 상환에 써야 했다. 국가 재정이 이자의 덫을 지금도 벗어나지 못하고 기준금리 상승을 엄두도 못 내며 나 홀로 ‘통화완화정책’을 고수 중이다.

과도한 이자는 최대 위기 순간에도 신세 지기 싫을 만큼 무서운 존재다. 중세 교부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는 “이자는 노동 없이 시간만으로 돈을 버는 것이므로 신의 의지에 반하는 것”이라고 죄악시했다.

2020년 3월 미 연방준비제도가 기준금리를 0%(하단)로 떨어뜨린 후 2022년 3월 0.25%로 올리기까지 약 2년간 전 세계는 정말 이자 무서운 줄 모르고 지냈다. 영혼까지 끌어모아 대출을 받아 아파트를 사지 않으면 벼락 거지가 된다는 말이 나돌고 빚내서라도 투자하지 않으면 시대에 뒤처진다는 지청구를 들었던 건 바로 ‘낮은 이자’ 때문이었다. 그런데 지금 이들의 신세가 백척간두에 있다.

주요 시중은행 주택담보대출 변동금리 상단이 1년 전 연 4%대 초반에서 최근에는 6%대 초반으로 뛰었다. 한국은행 추가 기준금리 인상 시 7% 돌파도 시간문제다. 신용대출 금리도 마찬가지로 연 7%를 곧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이자에 치여 쓰러지기 직전인 몸을 제2금융권에, 최악의 경우에는 더 나아가 대부업체에 기대야 할 수도 있다. 이자가 늘어나면 그만큼 소비가 줄어 생활 형편이 나빠질 것은 뻔하다.

금융당국이 코로나19 피해, 개인사업자 또는 소상공인들을 위한 새출발기금을 마련했다. 일정 부분 원금을 탕감해 주고 금리를 낮춰 주겠다는 것이다. 자유시장경제에서 투자의 책임은 오롯이 스스로 지는 게 원칙이다. 그런데 정부가 이렇게 나서는 걸 보면 사회 근간이 흔들릴 정도로 심상치 않은 모양이다.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 의장이 26일(현지시간) 와이오밍주에서 열린 연례 경제정책 심포지엄(잭슨홀 미팅)에서 “물가 안정을 지켜야 한다는 우리(중앙은행)의 의무에는 조건이 없다”고 못 박았다. 당분간 고금리는 지속될 수밖에 없다. 이자 급증 후폭풍은 이제 시작인 셈이라서 걱정이 태산 같다. vicman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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