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지금] 창조적 파괴와 중국경제

입력 2022-08-31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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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의현 영남대학교 경제금융학부 교수

필리프 아기옹은 경제성장론 분야에서 독보적인 성과를 거두고 있는 경제학자이다. 그는 기업의 혁신이라는 미시적인 연구 주제를 국가 경제의 장기적인 성장 이슈로 연결하면서 경제학의 현실 설명력을 넓혔다. 그의 이론은 혁신의 아이콘인 조지프 슘페터의 이름을 빌려 슘페터식 패러다임 또는 슘페터식 성장 모형이라고 불린다. 그가 동료들과 함께 저술한 “창조적 파괴의 힘”은 올해 여름 국내에서 번역본이 출판되었다.

어떤 기업이 혁신에 성공하면 그 기업뿐만 아니라 해당 국가의 경제 성장에도 큰 도움이 된다. 최근 미국의 빅테크 기업의 성장과 미국 경제의 발전을 생각해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시장이 경제를 주도해야 하고, 정부가 규제를 통해 간섭하면 기업의 혁신에 오히려 방해될 수 있다는 주장은 굳이 세계적 경제학자가 아니더라도 우리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다. 그런데 아기옹은 혁신 과정에서 때로는 정부의 간섭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혁신이 시장의 힘으로 이뤄지는 것은 맞지만, 혁신으로 성공한 기업은 새로운 혁신보다는 경쟁자를 누르고, 자신의 시장 지배력을 유지하려는 데 더 큰 힘을 쓰게 된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해당 경제의 혁신성은 떨어지고, 경제 성장도 지지부진해진다. 이런 환경에서는 정부가 기존의 산업구조를 파괴하는 새로운 혁신을 유도할 수 있는 정책이나 규제를 실행할 필요가 있다. 무조건 시장에 맡기는 것이 아니라 시장의 기능이 혁신을 제한하는 상황이 발생하면 정부가 시장에 간섭할 수 있다.

중국은 시장이 아닌 정부가 주도적으로 경제를 이끌어 가는 나라이다. 국가가 앞장서 기업에 기술개발을 독려하고, 대학에는 우수한 논문의 양산을 요구한다. 그렇다면 중국에서 기존 질서의 파괴를 가져올 혁신은 순조롭게 잘 진행되고 있을까? 창조적 파괴의 힘이 중국 경제에 커다란 활력을 가져온 시절도 있었다. 산자이(모방제품) 취급을 받던 샤오미가 세계적인 휴대폰 회사가 되었고, 알리바바는 중국을 넘어 세계적인 플랫폼 기업이 되었다. 유튜브를 위협하는 틱톡의 바이트댄스, 메신저 프로그램인 위챗을 개발한 텐센트 등등도 전 세계적인 혁신의 조류에서 중국 국내의 수요를 정확하게 파악하여 성공한 기업이다. 국가가 혁신을 가속하려면 이들 성공한 기업들이 새로운 기업의 혁신을 방해하지 않고, 시장지배력을 높이려는 노력보다 기술개발에 더 투자하도록 이끌어야 한다.

8월 중순 중국 정부는 중국의 대표적인 빅테크 기업 24곳에서 30개의 핵심 알고리즘 목록을 제출받았다고 공개했다. 이들 알고리즘은 고객들에게 어떤 콘텐츠를 먼저 노출할 것인지 어떤 맞춤 정보를 제공할 것인지 등등을 결정하는 기업의 핵심적인 사업 비밀이다. 그런데 중국 정부의 입장에서 이들 핵심기술은 국가의 안정을 위해 통제해야 할 대상에 불과하다. 기업이 노력해서 얻은 결과물을 정부에 빼앗긴다면 새로운 기술을 개발할 의욕은 사라져 버릴 것이다. 전자상거래의 강자 알리바바는 2015년의 시장점유율이 80%에 육박했지만, 최근에는 50% 수준으로 떨어졌다. 그 사이 징둥과 핀둬둬 등 새로운 기업이 등장했다. 핀둬둬의 성공에는 공동구매 마케팅 전략이 큰 역할을 했다고 하는데, 이것이 경쟁자들이 생각하지 못할 혁신에 속하는 것인지 의문이다. 오히려 중국 정부가 급성장하는 알리바바를 견제하기 위해 다른 기업들을 의도적으로 키워준다는 시각도 있다.

특허는 대표적인 혁신의 성과 지표로 사용된다. 중국은 국제특허(PCT) 출원에서는 독보적인 1위를 기록하고 있고, 최근에는 질적 우수성이 담보되어야 출원이 가능한 미국특허청 특허도 빠른 속도로 늘려가고 있다. 작년 말 누적 기준으로 한국과 미국이 출원한 미국특허 가운데 A급 특허의 비중이 24%, 21%인 데 비해 중국은 13%에 불과했다(한국발명진흥회 SMART 5 특허 평가 기준). 이에 비해 질적 수준이 낮은 C급 특허는 중국이 33%, 한국과 미국은 20% 정도에 그쳤다. 중국의 기술력을 경계는 해야겠지만 기업의 혁신은 정부가 멱살을 잡아끈다고 달성되는 그런 것이 아니다. 중국을 지나치게 의식하면 우리의 혁신 페이스에 오히려 방해될 수 있다.

8월 24일은 한중 수교 30주년을 맞이하는 날이었다. 일반적으로 자유무역은 혁신과 성장에 긍정적 영향을 준다. 지난 30년간 한국 경제는 중국과의 교역 속에서 발전할 수 있었다. 그런데 대중국 수입은 점점 늘어나는 반면 우리의 수출은 증가율이 떨어지면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수입의존도가 지나치게 높아지는 것은 경계해야겠지만, 양질의 중국산 중간재를 활용하여 만든 우리 제품이 세계시장에서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면 기본적으로 좋은 일이다. 그런데 자유무역은 공정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 아기옹은 수입품의 가격경쟁력이 혁신에 의한 것이 아니라 그 나라 정부의 보조금 때문이라면 수입제한 정책을 사용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올해 상반기 우리나라에 등록된 전기버스의 절반가량이 중국산이다. 중국산 버스의 가격경쟁력이 이들 기업의 혁신에 의한 것인지 아니면 중국 정부의 보조금 지급 때문인지 면밀히 살펴보아야 한다. 이런 사안이야말로 우리 정부가 규제의 칼날을 들이대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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