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발언대] 재정건전성의 시계를 확보한 2023년 예산안에 대한 소견

입력 2022-09-06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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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훈 재정정책연구원장.
▲김정훈 재정정책연구원장.

한국은 오랫동안 재정건전성이 양호한 국가로 평가를 받아왔다. 이러한 명성을 얻기까지 세 번의 큰 위기가 있었고, 그때마다 한국의 재정당국, 국민, 민간경제는 세계가 주목하는 역량을 발휘했다.

1980년대 초반의 재정건전화 조치는 한국 경제가 지속적으로 성장한 결정적인 계기가 된 것으로 유명하다. 1998년 외채 부담을 줄이기 위한 한국 국민의 ‘금 모으기’는 전 세계에 널리 알려져 있다. 2009년 세계경제 침체가 발생하자 튼튼한 재정으로 성장한 민간경제가 오히려 힘을 발휘해 한국은 스페인, 이탈리아 등을 앞서기 시작했다.

G7 한국을 뒷받침해온 한국의 재정은 결코 우연의 산물이 아니다. 어려움이 발생할 때마다 지나간 과정을 거치면서 당시 상황에 가장 맞는 해법을 찾아낸 국민과 민간경제와 정부의 합작품이다. 이제 한국은 지난 세 번의 어려움과는 또 다른 속성의 어려움을 맞이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급한 과제는 최근 들어 거의 2배 이상 빠르게 증가한 일반재정(지방재정과 사회보장부문 제외)의 국가채무를 안정화시키는 것이다.

두 번째 과제는 장기적으로 국가채무보다 훨씬 더 심각한 사회보험(국민연금, 의료보험 등)의 재정유지 가능성을 확보하는 것이다. 세 번째 과제는 OECD 국가 중 재정이 무너진 일본만 채택하고 있는 ‘묻지마 재정지원’의 지방(교육)재정 제도를 개혁하는 것이다.

산적(山積)한 도전에 직면해 있는 재정당국이 선택할 길은 두 가지이다. 첫 번째는 쉬운 길이다. 예산 편성은 국민의 세금을 아끼려고 할수록 오히려 욕을 얻어먹는 속성을 지니고 있다. 쌓이는 나랏빚으로 지금 당장 손해 보는 사람이 없지만, 나랏돈을 써서 혜택 보는 사람들은 많기 때문이다. 두 번째 길은 어려운 길이다. 국가채무의 궤도를 계산해 보고, 국민연금 개혁의 로드맵을 그리고, 재정 봉토주의를 합리적 재정제도로 전환하는 대안을 도출한 다음 국회를 설득하고 국민들의 이해를 구하는 과정은 어렵고 난해하며 고생만 하는 길이 될 수 있다.

2023년 예산(안)에는 이러한 재정의 기로에 선 재정당국이 선택한 길이 제시돼 있다. 놀랍게도 어려운 길을 택했다.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지출 감축(-24조 원)을 단행했고, 관리재정수지를 절반(GDP의 -5.1% → -2.6%)으로 축소시켰으며, 국가채무 수준을 대폭 개선(GDP의 7%포인트(P) 이상)하는 계획이 담겨있다.

다행스러운 점은 최근 2년 동안의 높은 국세 증가율로 국세 수입의 기저(基底)가 높아졌다는 점이다. 그 결과 재정수지를 대폭 개선시키면서 복지, 국방, 그리고 미래 투자(R&D)의 견조한 증가세를 유지하는 ‘선택과 집중’이 가능할 수 있었다. 국세 세수 전망도 중립적인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2022년 추경 기준 국세 세수 전망치(397조1000억 원)에 비해 내년 국세 세수(400조5000억 원)가 사실상 증가하지 않는 것으로 전망됐기 때문이다.

2023년의 예산안으로 한국의 재정이 갖고 있는 어려운 문제들이 갑자기 쉬워진 것은 아니다. 그러나 2023년 예산안이 갖는 가장 큰 의의는 최근 실종되다시피 한 재정 운용의 방향성과 중기적 시계가 확보됐다는 점이다. 앞으로 다가올 현실은 경제·사회의 심대한 불확실성으로 인해 현재의 계획 및 전망과 상당히 다를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격차에는 단기적 대응을 함과 동시에 재정운용의 방향성과 시계를 국민과 공유하면서 필요한 재정개혁을 또한 지속적으로 추진하는 어려운 길을 재정당국이 택할 경우 일본과는 다른 성장궤도를 한국이 달릴 수 있다. 시간이 지나서 2023년 예산이 한국의 재정 역사에 네 번째의 성공사례로 기록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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