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크래커] “퇴계 이황 차례상 소박한데”…문헌에도 없는 홍동백서·조율이시에 ‘며느라기’ 운다

입력 2022-09-06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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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균관의례정립위원회가 5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간소화 된 차례상 예시를 발표하고 있다.
 (뉴시스)
▲성균관의례정립위원회가 5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간소화 된 차례상 예시를 발표하고 있다. (뉴시스)

명절을 전후로 차례상 차리기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커진다. 과도한 가사 노동과 스트레스로 인해 척추·관절 질환이나 두통, 소화불량, 우울증 등에 시달리거나 차례상을 마련하기 위한 경제적 부담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차례상 차릴 걱정에 근심…물가 상승으로 경제적 부담까지

명절증후군은 과도한 가사 노동과 스트레스로 어지럼증, 두통, 식욕부진, 소화불량, 피로감 등 신체적 증상이나 짜증, 우울, 불안, 무기력, 집중력 저하 등 정신적인 증상이 나타나는 경우를 말한다. 넓게는 가사 노동으로 인한 어깨, 허리, 손목 등 관절 질환에서 발전한 손목터널증후군, 허리 디스크, 목 디스크 등 근골격계 질환도 포함한다.

명절증후군은 △밤에 잠을 잘 못 자고, 자고 나도 개운하지 않음 △예민하고 사소한 일에도 짜증이 남 △기분이 자꾸 가라앉고 우울함 △속이 더부룩하고 소화가 잘 안 됨 △ 숨찬 기운이 올라오거나 숨이 참 △화가 나면 얼굴에 열이 오르거나 온몸에 열이 나면서 발끝까지 뜨겁고 입이 마름 △가슴이 두근거리고 벌렁거림 △만사가 귀찮고 의욕이 없음 △어깨, 허리, 손목 등에 근육통이 있음 △목이나 명치 끝에 이물감이 있음 등 이러한 증상 중 5개 이상에 해당한다면 의심해볼 수 있다.

차례상을 차리기 위한 경제적 부담도 스트레스에 한몫한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8월 먹거리 물가는 113.57로 1년 전보다 8.4% 올랐다. 먹거리 물가는 2020년 당시 물가를 100으로 본 상대적 지수다. 먹거리 물가에는 식료품·비주류 음료와 음식 서비스 부문을 각 지수와 가중치를 고려해 계산한 값이며 식료품·비주류 음료에는 빵과 곡물, 육류, 수산물, 과일, 채소, 과자, 냉동식품 등이 포함된다.

최근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가 추석을 앞두고 차례상 차림 비용을 조사한 결과 올해 추석에는 차례상 마련에 평균 31만7000원이 들 것으로 전망했다. 지난해 29만8000원에 비해 약 6.5% 오른 셈이다. 정부는 명절 성수품 공급을 평시 대비 1.4배 확대하는 등 추석 물가 안정을 위해 노력했으나 제11호 태풍 힌남노 등의 영향으로 추석 물가 상승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출처=게티이미지뱅크)
(출처=게티이미지뱅크)

“9가지만 간소하게”…성균관이 내놓은 ‘차례상 표준안’ 보니

명절로 인해 몸도 마음도 지갑도 아픈 삼중고를 겪다 보니 가정의 평화에도 금이 가기 쉽다. 지난 10년간 월평균 이혼율을 집계해보면 명절이 있는 달이 다른 달에 비해 이혼율이 높았다고 한다. 온 가족이 모여 즐거워야 할 명절이 오히려 역효과를 낳고 있는 셈이다.

이에 성균관은 ‘반성문’ 성격의 기자회견문과 함께 ‘차례상 표준안’을 발표했다. 성균관 의례 정립위원회는 “유교는 오랜 세월 동안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면서도 “현대화 과정에서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옛 영화만을 생각하며 선구자 역할을 하지 못했다. 그 결과 유교에 대한 국민의 인식은 부정적인 이미지로 자리 잡았다”고 지적했다.

위원회는 “명절만 되면 ‘명절증후군’과 ‘남녀차별’이라는 용어가 난무했다”며 “명절 끝에는 ‘이혼율 증가’로 나타나는 현상이 유교 때문이라는 죄를 뒤집어써야 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위원회는 차례상에 올리는 음식 가짓수는 최대 9개면 족하다고 강조했다. 기본 음식은 송편, 나물, 구이(적·炙), 김치, 과일, 술 등 6가지며 육류, 생선, 떡 등 3가지 음식을 추가로 올려도 된다.

▲최영갑 성균관의례정립위원회 위원장이 5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대국민 차례 간소화 기자회견’을 갖고 간소화 차례상 예시를 설명하고 있다.
 (뉴시스)
▲최영갑 성균관의례정립위원회 위원장이 5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대국민 차례 간소화 기자회견’을 갖고 간소화 차례상 예시를 설명하고 있다. (뉴시스)

홍동백서ㆍ조율이시 옛 문헌에도 없는 표현

위원회는 기름에 튀긴 음식이나 전 등 지진 음식은 차례상에 꼭 올리지 않아도 된다고 설명한다. 사계전서 제41권 의례문해에 밀과와 유병 등 기름진 음식을 써서 제사를 지내는 것은 예가 아니라고 명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차례상을 차리는 예법처럼 여겨져 왔던 ‘홍동백서(紅東白西·붉은 과일은 동쪽에 흰 과일은 서쪽에)’, ‘조율이시(棗栗梨枾·대추·밤·배·감)’ 등은 예법 관련 옛 문헌에 없는 표현이라고 강조한다. 상을 차릴 때는 음식을 편하게 놓으면 된다.

이번 표준안은 ‘차례 관련 국민 인식조사’ 설문조사 결과와 예법 등을 두루 고려해 마련됐다. 최영갑 성균관의례정립위원회 위원장은 “차례는 조상을 사모하는 후송들의 정성이 담긴 의식인데 이로 인해 고통받거나 가족 사이의 불화가 초래된다면 결코 바람직한 일은 아니다”라며 “차례에 대한 부담이 있었던 국민들이 조금이라도 마음의 부담을 내려놓을 수 있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유교의 차례 간소화 공식 발표는 이번이 처음이다. 최 위원장은 “(차례를) 지내지 않는 것보다 간소하게라도 지내는 게 바람직한 현상 아닌가”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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