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현로] 대통령도 단체장도 집무실 리모델링 중

입력 2022-09-07 05:00 수정 2022-09-07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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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지영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

윤석열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인 3월 대통령 집무실을 용산 국방부 청사로 옮기는 데에 500억 원가량의 예비비 지출이 필요하다고 직접 밝혔다. 예비비 내역은 대통령 비서실 국방부 본관 이전 및 리모델링 252억 원, 국방부 합동참모본부 건물 이전 118억 원, 대통령 경호처 이사 비용 99억9700만 원, 한남동 공관 리모델링 및 경호시설 설치비 25억 원 등이다. 이 예산 집행과정에서 특정업체들과의 수의계약 체결 문제가 불거지기도 했다. 또 얼마 전 야당 국회의원은 300억 원의 예산이 전용 등을 통해 추가 지출되었다고 지적했다. 이 추가 예산의 내역은 대통령 경비단 이전 비용 50억 원, 국방부 부서 통합 재배치 193억 원, 국방부 전용예산 29억5000만 원, 행안부 전용예산 관저 리모델링 20억9000만 원 등이다. 이에 대통령실은 이 예산은 이전비용이 아닌 부대비용이라고 해명했다.

정리하면 대통령 집무실 이전 과정에서 정부는 500억 원의 ‘예비비’를 사용했고, 수십 건의 ‘수의계약’을 체결하고, ‘예산전용’ 등을 통해 300억 원을 추가 지출했다. 집무실 이전 관련 정치적 논란을 떠나 이런 방식의 예산 운용이 적절한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먼저 ‘예비비’는 예산을 편성하면서 예산이 부족할 때를 대비해 준비해 놓는 재원이다. 통상 예비비는 예상치 못하게 발생한 재난·재해 등 시급한 국가적 대응이 필요한 영역에 투입된다. 헌법 제55조는 ‘예비비는 총액으로 국회 의결을 얻어야 하며, 예비비 지출은 차기 국회 승인을 얻어야 한다’고, 국가재정법 제52조는 ‘정부는 예비비로 사용한 금액의 총괄명세서를 다음 연도 5월 31일까지 국회에 제출해 승인을 얻어야 한다’고 규정한다. 이렇게 예비비를 국회 승인 절차를 통해 통제하는 이유는 낭비성으로 쓰이는 쌈짓돈으로 변질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다음 ‘수의계약’은 경쟁입찰에 의하지 않고 특정인을 임의로 선택하여 체결하는 계약이다. 수의계약은 행정의 효율적 집행을 위해 가능하지만 그 규모가 수십억 원, 수십 건에 이른다면 경쟁입찰을 통해 통합 발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는 수의계약 과정에서 특정업체 밀어주기 및 몰아주기, 쪼개기 계약을 통한 비용 증가 등 국가계약법 위반 사항이 반복적으로 발생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수의계약은 선정기준, 진행과정, 계약내역 등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그리고 ‘예산전용’은 ‘예산의 목적 외 사용금지’라는 예산 원칙에 어긋난다. 세출예산에서 정한 목적 외의 용도로 경비를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즉, 국회에서 최종 확정된 예산을 정부가 임의대로 목적과 용도를 변경해 써서는 안 된다. 하지만 예산 운용상 불가피한 경우를 대비해 예외 조항을 두었는데 이것이 예산의 전용이다. 야당의 ‘이전비용’이건 대통령실의 ‘부대비용’이건 예산을 전용했다는 것은 당초 예산의 목적 외 사용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바람직하지 않다.

최근 대통령 집무실 이전 비용과 함께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 지방자치단체장의 집무실 리모델링이다. 지방선거 후 166곳의 단체장이 교체되었다. 이렇게 단체장이 교체된 여러 곳에서 집무실을 호화롭게 리모델링하고 멀쩡한 집기를 교체하고 있는데, 이에 수천만 원에서 수억 원을 쓰고 있어 예산 낭비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는 매 지방선거 후 불거지는 문제였으나 특히 올해는 단체장이 대거 교체되면서 더욱 많은 지역에서 집무실 리모델링이 진행되고 있다.

자치단체장 집무실 리모델링 비용 또한 대통령실 이전 비용처럼 당초 지출계획이 없었던 예산이기 때문에 주로 예비비를 사용하고 예산을 전용해 지출한다. 아니면 당초 편성된 청사관리비 또는 자산취득비, 행정운영경비를 당겨쓰고 모자란 비용은 추경에 편성할 것이다. 또한 단체장들이 당선되자마자 집무실 공사가 단기간에 진행되고 있는 상황을 보면 대부분 수의계약을 했을 가능성이 크다. 이뿐 아니라 매번 문제가 되는 것이 단체장 집무실 기준 면적의 준수 여부이다. 기초자치단체장 집무실의 기준 면적은 행정구가 설치된 시는 132㎡ 이하, 그 외는 99㎡ 이하이다. 규정을 어기고 더 넓은 공간을 임의로 사용하여 문제가 되기도 한다.

단체장 집무실을 리모델링하여 쾌적한 공간에서 업무를 보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이보다는 현장으로 가서 민생을 챙기는 것이 우선이다. 단체장이 가장 많이 하는 말이 “예산이 부족하다”이다. 그런데도 당선되자마자 집무실 리모델링부터 예산을 무리하게 쓰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단체장 업무를 성실히 수행하면서 집무실 이용에 불편이 있다면 목적과 용도를 정해 내년도 본예산에 편성할 수 있다. 다른 목적으로 편성한 예산을 우선적으로 쓸 만큼 시급하지 않다. 다시 돌아가 대통령 집무실 이전도 마찬가지이다. 집무실 이전은 대선 공약이었기에 추진할 수 있다. 또 청와대가 제왕적 대통령과 권위의 상징으로 이전 대통령 여럿이 청와대 이전 공약을 내걸었기에 정치적 명분도 있다. 문제는 대통령 집무실 이전 자체가 아니라 당선되자마자 코로나 민생보다 집무실 이전을 비정상적으로 밀어붙이는 태도와 불투명하고 원칙 없는 예산 집행과 계약 방식이다. 대통령이든 단체장이든 집무실 관련 예산의 시급성, 필요성, 타당성 등을 면밀히 따지고 유권자들에게 투명하게 공개하여 각종 의혹 및 예산낭비라는 지적에서 벗어나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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