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준의 일, 삶, 배움] 남북이 함께하는 서해 평화지역에 국제기술 훈련원 건립을

입력 2022-09-08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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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직업능력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남과 북이 돌이킬 수 없는 전쟁을 치른 후 거의 70년간 적대적인 관계를 지속하고 있는 나라로 현재는 한국과 북한이 유일하지만 1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미국이라는 나라가 있었다. 남북전쟁 이후 거의 70년간 미국의 북부와 남부 지역은 별다른 교류와 협력 없이 지내왔다. 그러다 1902년 윌리스 캐리어의 에어컨 발명을 계기로 남부와 북부는 교류와 협력의 물꼬를 트기 시작하였다. 습도와 무더위로 조면기에 의존한 목화산업 이외에 별다른 산업을 가지지 못한 남부 지역에 에어컨을 설치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오늘날 선벨트 공업지역이 형성되기 시작한 것이다. 에어컨 기술 덕택으로 북부의 공장은 낮은 임금과 풍부한 노동력이 있는 남부지역으로 대거 이동하였다.

우리나라의 경우 북한에 대한 정치적 이념적 관점의 차이로 인해 어느 정도 부침은 있었지만, 역대 어느 정부도 교류와 협력 자체를 마다하거나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현재 국민의힘의 전신인 민주정의당 노태우 정부의 대북 포용정책부터 민주당 문재인 정부에 이르기까지 남과 북 간 교류 협력에 대한 노력은 물론 협의와 합의가 있어 왔다. 이 중 가장 주목할 합의 중 하나가 노무현 정부 때 이뤄진 10·4 남북정상선언에서 나온 서해평화협력지대가 아닌가 한다.

당시 10·4 남북정상선언 중 서해 지역과 비무장지대(DMZ)를 포함한 접경지역 평화지대 활용에 대한 대표적인 방안들로 남북한 교류협력 증진을 위한 ‘경제특별 구역 설정’이나 ‘UN대학연구소’, ‘남북공동대학’, ‘국제평화대학’ 설립 등이 있다. 이들 정책이 남과 북 간 교류와 협력을 위한 좋은 방안이긴 하지만 아직은 시기상조다. 대학 설립은 그 취지를 돋보이게 할 수는 있지만, 교육에 정치적이고 이념적인 내용이 포함될 수 있어 북한의 참여를 주저하게 만들 수 있다. 그렇다면 국제적으로 보편적이면서 비정치적이고 비이념적인 의제가 필요한데, 그것은 바로 기술이다.

물론 미국의 에어컨 사례처럼 기술을 통한 남북 간 직접적인 경제 교류와 협력은 평화협정 체결과 국내법 제정, 북핵 문제 해결 없이는 어려운 일이다. 따라서 간접적인 기술개발을 통한 교류 협력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는데, 필자는 서해 평화지역 내 ‘국제기술훈련원’ 설립이 이를 충족할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서해 평화지역에 저숙련, 단순 기술이 아닌 미래지향적이면서 기술 수준이 높은 인력을 양성하는 교육·훈련기관을 설립하는 것이다. 기술훈련은 비종교적이면서도 세계적인 보편적 관심 사항인 만큼 북한의 국제기구 참여에 대한 거부감이 약할 수 있다. 실제로 북한은 남한과의 교육·훈련에 대해 직접적인 협력보다는 국제기구를 통한 간접 교류 형태를 원하고 있다.

따라서 국제노동기구(ILO)나 유네스코의 관할 기관으로서 서해 평화지역 내 ‘국제기술 훈련원’은 더할 나위 없는 남북 간 교류 협력의 장이자 국제적인 교류 협력의 무대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국제기구하에서 남과 북이 세계 여러 나라와 같이 기술훈련원 운영 주체가 되면 자연스럽게 북한은 국제사회의 개발 협력에 기여함과 동시에 보통 국가로 발돋움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 수 있으며 남북 간 교류 협력도 촉진될 것이다. 또한 우리나라가 과거부터 야심 차게 진행하고 있는 북방의 몽골,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아르메니아와 남방의 캄보디아, 베트남, 인도네시아, 미얀마와의 기술 및 미래 고급인력 양성 협력도 가능할 수 있어 국제평화 기여라는 명분을 획득할 수 있는 장점도 있다.

미래의 국제경제는 지난 30년간 세계 자본주의를 유지하는 데 공헌한 미국과 중국의 장점도 사라질 것으로 예견되는 만큼 인도나 인도네시아, 베트남, 서아시아 국가들과의 교류 협력은 기술 우위를 가진 대한민국의 경제 활성화를 위해서도 서해 지역의 지리적 환경을 활용할 필요가 있다. 남과 북의 교류 협력을 활성화하는 동시에 국제평화와 세계경제 재편에 대한 선제 대응이 가능한 서해 평화지역의 ‘국제기술훈련원’ 설립이야말로 ‘담대한 계획’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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