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조용한 퇴사’가 요란한 까닭

입력 2022-09-21 05:00 수정 2022-09-21 0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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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은 직장인들 사이에 새로운 현상을 낳았다. 이른바 ‘조용한 퇴사(quiet quitting)’다.

‘조용한 퇴사’는 자이드 칸이라는 미국 20대 엔지니어가 틱톡에 업로드한 영상에서부터 시작됐다. 영상을 보면, 래그타임 스타일의 피아노 연주곡과 화면을 가로지르며 빛나는 뉴욕의 여름 풍경, 여기에 읊조리는 듯 조용한 내레이션이 흐른다.

“일은 당신의 삶이 아닙니다. 당신의 가치는 당신의 생산적인 결과물로 정의되지 않습니다.”

틱톡에 이 영상이 올라오자 전 세계에서 많은 사람들이 공감했다. “나는 이미 수년 전에 회사에서 그 이상을 추구하는 게 더는 행복하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열심히 일하면 얻을 수 있는 유일한 것은 더 많은 일이다.”, “다른 사람의 꿈을 이뤄주는 것이 얼마나 무의미한 일인지 확실히 깨달았다.”, “나의 이상은 돈 이상이다.”, “내가 잘하든 못하든 상사는 끊임 없이 나를 루저로 만든다. 그래서 조용한 퇴사를 결심했다.”

말은 ‘조용한 퇴사’라지만, 실제로 퇴사를 하는 건 아니다. 직장에서 요구하는 최소한의 것만 하고, 그 이상은 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초과 근무를 하지 않거나 퇴근 후 직장 동료의 메시지에 답문을 하지 않는 식이다.

이 ‘조용한 퇴사’ 현상에 대해 기업들은 심각하다. 직장에 불만이 있든 없든 직원 참여도가 높을 수록 생산성이 향상되는 것이 이치인데, ‘대퇴사(Great Resignation)’도, ‘반노동운동(the anti-work movement)’도 아닌 것이, 의욕 잃은 직원들이 포진해 있으면 회사에 활력을 떨어뜨릴 수 있어서다.

미국 여론조사회사 갤럽 조사에서는 미국 직장인의 최소 50%가 ‘조용한 퇴사자’라는 결과가 나왔다. 실제로는 더 많을 것이라고 한다. 갤럽에 따르면 직원들의 참여도 저하는 2021년 하반기부터 본격화했고, 이는 퇴사자 증가와 동시에 일어났다. 갤럽은 이것이 ‘기대치의 명확성, 배우고 성장할 기회, 관심, 조직의 사명’ 등과 관련이 있다고 분석했다. 이런 것들이 희미해지면서 직장에서 참여 의욕이 저하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Z세대와 35세 미만의 젊은 밀레니얼 세대 사이에서 직장에 대한 몰입도와 고용주에 대한 만족도가 떨어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팬데믹 이후 젊은 근로자들이 관리자로부터 관심과 보살핌을 받고, 자기계발 기회를 가질 기회가 크게 줄어든 탓이다. 단지 ‘저성과자들의 무책임한 행동’이라고 치부하기엔 주어진 상황이 너무 안타깝다.

사실, 팬데믹 이후 근로자들은 재택근무든 하이브리드 방식이든 초과 근무에 대한 인정과 보상을 받지 못하는데 지쳐가고 있다. 장기간의 재택근무에서 오는 고립감, 이메일과 메신저를 통한 불통, 하루 종일 같은 환경에 있으니 공사 구분도 어려워진다. 여기다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성과가 없으면 사내 정기 승진인사에서 탈락되거나 연봉에서도 밀리는 등 박탈감에 빠지기 십상이다.

이런 현상에 대해 일각에서는 팬데믹 이후의 시대정신을 대변하는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팍팍한 노동시장에서 노동자들에게 다양한 직업 선택권이 주어지고, 재택근무 유지와 종료를 놓고 계속되는 줄다리기로 인해 노동자들이 자신이 어디서, 어떻게 일을 하는지 재평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조용한 퇴사’는 ‘대퇴사’의 연장선일 수도 있다. 팬데믹 불황을 계기로 정부와 기업이 나서서 해고를 회피하면서 일자리 시장은 안정을 찾게 됐고, 해고 위험이 낮아지다 보니 열심히 일할 동기가 줄어들었다는 것.

과거에는 회사에 불만이 있으면 노동조합을 설립해 근로자들끼리 협상력을 가지려는 움직임이 있었는데, 지금은 소셜미디어라는 오픈된 공간에 개인의 ‘조용한 퇴사’를 ‘요란하게’ 광고하는 게 여간 낯선 모습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상황이 진짜 심각하게 받아들여진다면 기업들도 달라져야 한다. 더는 노사 간 단체협상은 통하지 않는 시대가 된 것이기 때문이다. 직장에서 노사간은 물론이고, 노노(勞勞)간, 세대간 갈등이 더 심화할 수 있다는 의미다. 구성원 개인의 상실감을 일일이 보상해줄 수는 없지만, 대퇴사를 막기 위해선 ‘인정’과 ‘소통’이 먼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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