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보안법철폐, 우리 민족끼리 화목하게 삽시다’라는 어깨띠를 두르고 지하철에서 소리 높여 통일을 주장하던 김영식 씨에게 또래 노인의 욕설이 비수처럼 날아든다. 재수가 좋지 않은 날은 시비 붙은 상대에게 얻어맞은 적도 있다고 했다.
한국 다큐멘터리의 대부로 불리는 김동원 감독이 지난 20일 메가박스 코엑스에서 공개한 신작 '2차 송환'에 담긴 내용이다. 올해 아흔 살이 된 주인공 김영식 씨는 1962년 남파된 간첩으로 27년 동안 감옥살이를 한 뒤 풀려났다. 김 감독은 그를 통해 북으로 돌아가지 못한 소위 ‘비전향장기수’ 이야기를 다시 수면 위로 끌어올린다.
이날 상영 뒤 열린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김 감독은 “송환이 뭔지 모르는 관객들과 통일에 별 관심이 없는 젊은이들 사이에서 착잡하기도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분단의 현실을 느끼게 하는 영화 만드는 것"이라고 개봉 소감을 전했다.
단어조차 생소한 비전향장기수는 60년대 남파 간첩 중 30~40년 동안 감옥살이를 하면서도 남한으로의 전향을 택하지 않은 이들을 말한다.
김대중 정부 당시인 2000년 9월 남북이 해당 문제를 전향적으로 논의하면서 63명의 비전향장기수를 한 차례 북으로 돌려보낸 바 있다.
김 감독은 유례없는 송환의 여정을 카메라에 담은 다큐멘터리 ‘송환’으로 2004년 선댄스영화제에서 표현의자유상을 수상하면서 곡절의 여정을 세계에 알렸다.
18년 만에 다시 관객을 만나는 ‘2차 송환’은 투옥 시절 고문에 의해 강제로 전향서 쓰면서 당시 송환 대상에 오르지 못했다고 주장하는 김영식 씨의 이야기다. 김 감독이 1992년부터 2021년까지 약 30년간 촬영한 ‘송환’의 방대한 촬영분을 새롭게 규합하고 편집한 결과물이다.
김 감독은 “2차 송환이 곧 있을 줄 알았는데 계속 밀리고 밀리는 바람에 타의로 20년 동안 작업을 했다. 송환되는 장면을 촬영하고 싶었지만 당분간은 불가능하게 보이기 때문에 엉거주춤한 상태에서 끝을 내게 되었다”고 말했다.
또 “(비전향장기수) 선생님들 나이가 평균 91살이고 김영식 선생님은 90살이다. 돌아가시거나 연로해 병상에 누워 계신 분들을 볼 때마다 그들을 더 찍는다는 것이 괴로웠다”고 작업의 어려움을 전했다.
2000년 송환 이후 살아서 북으로 돌아간 비전향장기수는 없기에, 송환의 가능성은 크지 않은 상황이다. 2005년 남북 협의로 31년간 옥살이를 한 뒤 고인이 된 정순택 씨의 유해를 북송한 바 있다.
2001년부터 총 46명이 2차 송환을 신청했지만, 현재 김영식 씨와 비슷한 처지의 생존자 9명 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이날 김 감독과 자리에 함께 참석한 주인공 김영식 씨는 “나라도 갈라져 있고, 처자식도 헤어져 있는 형편에서 우리가 고향으로 가겠다는 건 정당한 일”이라면서 “고향에 가서 내가 심어 놓은 나무가 얼마나 컸는지 보고, 우리 가족이 어떻게 잘 사나 보고 싶다. 고향으로 빨리 보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비전향장기수 문제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는 ‘2차 송환’은 이달 29일 개봉한다. 12세 관람가, 러닝타임 156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