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놀이터] 이그 노벨상, 있을 법하지 않은 연구 이야기

입력 2022-09-23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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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난영 과학칼럼니스트

몇 년 전에 종영된 ‘알쓸신잡’이란 프로그램이 있다. 지식의 향연장까지는 아니지만, 다섯 명의 출연진이 쏟아내는 결코 가볍지 않은 수다와 제법 유용한 한 보따리의 잡학 덕에 꽤 인기가 있었다. 나처럼 소소한 지식에 의지해 매일을 살아가는 이들에겐 물질을 구성하는 최소 입자보단 ‘충무 앞바다에서 돌아가신 지 500여 년이 넘은 이순신의 숨결을 느낄 확률’이란 질문이 더 흥미롭게 다가온다.

그런데 이처럼 다소 엉뚱하면서도 재미있는 물음이 웃음 소재로 끝나지 않고 실제 연구로 이어지기도 한다. 있을 거 같지 않은, 다소 황당무계한 연구들 중 ‘반복할 수 없거나 반복해선 안 되는(that cannot, or should not, be reproduced)’ 업적에 대해 매년 이그 노벨상(Ig Nobel Prize)이 수여된다. 노벨상을 패러디해 만든 상으로, ‘이그’라는 이름의 유래에 대해선 이런저런 설이 있다. noble(고상한)의 반대말인 ignoble을 이용한 말장난이란 의견도 이 중 하나다. 이 말의 사실 여부를 정확히 가릴 수는 없지만, 상을 받은 내용을 보면 대부분 ‘진지 혹은 엄숙’과는 거리가 있다.

일례로 2008년도 이그 노벨 생물학상을 받은 프랑스 툴루즈 국립수의대팀의 연구 주제는 ‘개에 기생하는 벼룩이 고양이에 기생하는 벼룩보다 더 높이 뛰는 이유’였다. 이 밖에도 ‘비상시 방독면으로 사용 가능한 브래지어 발명’이란 주제로 공중 보건상을 받은 연구팀도 있고, ‘욕설 시 고통을 덜 느낀다’는 내용이 이그 노벨상 수상 업적으로 선정된 적도 있다. 1995년 영양학상을 받은 ‘루왁 커피’ 즉, 고양이의 배설물 속의 커피 원두로 만든 루악 커피의 발견은 사향 고양이들이 커피 생산을 위해 야생에서 포획돼 철창에 갇히는 비극을 유발했다.

언뜻 보기에 ‘이런 걸 굳이?’ 싶은 주제들이지만, 해당과학 부문에선 나름 의미를 갖는 경우가 있어 속단은 금물이다. ‘바보 같으면서도 시사하는 바가 있어야 한다(Laugh and then think)’라는 비공식 선정 기준을 봐도 알 수 있듯이 웃음과 생각을 동시에 주는 업적들이 수상하는 경우가 많다.

9월 15일(현지시간) 발표된 제32회 이그 노벨상 수상 내용을 봐도 그렇다. ‘새끼 오리들이 줄지어 헤엄치는 이유’, ‘전갈의 짝짓기에 변비가 미치는 영향’ ‘수다를 떨 때 진실 또는 거짓말을 할지 결정하도록 돕는 알고리즘’ 그리고 ‘엘크-디즈니 영화 ’겨울왕국‘에서 남자 주인공인 크리스토퍼의 썰매를 끄는 동물- 모양을 한 충돌시험용 인형’ 등이 올해의 수상 내역에 들어가 있다.

이 중 변비 걸린 전갈에 대한 연구가 흥미로웠다. 포식자에게 잡아먹힐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한 전갈은 독침을 쏘기도 하지만 자기 몸의 일부를 잘라내는 ‘자기절단(Autotomie)’으로써 목숨을 구하기도 한다. 그런데 거미나 게, 도마뱀처럼 중요하지 않은(?) 다리 또는 꼬리 일부를 버리는 게 아니다. 전갈의 경우 자절 시 독침과 소화관 일부 그리고 항문까지 떨어져 나간다. 문제는 상처가 아물 때 소화관이 폐쇄되어 배변 길이 막힌다는 점이다. 밖으로 나가지 못한 배설물이 뱃속에 쌓이는 자연 변비가 발생하는 거다. 그런데 특이한 건 자절이 주로 수컷 성체에서 일어난다. 생물학상을 받은 브라질 상파울루대 연구팀의 발표 내용에 따르면 몸의 일부가 떨어져 나간 뒤에도 이들 수컷은 상당히 오랜 기간 생존한다. 그리고 비록 움직임은 많이 느려지지만, 짝짓기를 무난히 해낸다고 한다. 거친 삶 그리고 지독한 생존력의 표상으로 전갈을 선정해야 하는 게 아닐까 싶다.

보험이나 집 계약서를 읽어보면 ‘뭔가 중요한 내용이긴 한 것 같은데 정확한 의미 파악이 어려운’ 문장들로 가득 차 있다. 문학상을 받은 매사추세츠공대 연구팀의 발표 내용에 의하면 이는 문장 구성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희귀한 전문 용어, 문장 내 마구잡이로 삽입된 수식어들과 그로 인해 쓸데없이 길어진 문장 그리고 수동태 문장이 자주 사용되는 것 등이 내용 파악을 방해한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책임을 회피하고 권위를 드러내기 위한 방식이란 생각이 든다. 그리고 이해를 못 하는 이유가 내 법률 지식이 짧기 때문만은 아니라고 하니 위로도 된다. 동시에 이런 걸 ‘시민과학(?)이라 불러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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