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석주의 시각]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된 후

입력 2022-09-29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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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인문학 저술가

고통의 범주는 넓고 형태는 다양하다. 감옥이나 군대에서 겪는 육체 형벌에 따르는 통증을 포함해 만성 질병이 가져오는 통증을 거쳐 사회적 압박감이 초래하는 심인성 통증에 이르기까지. 통증은 맞고, 찢기고, 찌르는 가운데 아프다는 신체 자각의 결과이자 신체에서 발신하는 자기동일성의 해체라는 위기 신호다. 신체에 각인되는 고통은 의식을 얼어붙게 하고 비명을 내지르게 한다. 이것은 신체의 안락함을 삼키는 어두운 경험이면서 동시에 자아가 무감각을 넘어서서 제 살아 있음을 아는 계기이다.

당신의 고통에 대해서 말해 준다면 나는 당신이 누구인가를 말할 수 있다. 우리는 자주 고통의 밀물 속에 삼켜진다. 이것은 살아 있음 자체가 고통인 까닭이다. 통증은 신체 일부가 손상되는 가운데 겪는 기분 나쁜 감각 자극이다. 이것은 피할 수 없는 잔여물로 현존의 현재를 꿰뚫는다. 통증은 존재의 무력감을 가져오는 무엇도 할 수 없음이다. 한병철은 ‘고통 없는 사회’에서 고통을 성찰하면서 “고통은 새로운 것의 산파이자 완전히 다른 것의 조산사다”라고 쓴다. 고통은 아픔이고 새로움을 낳는 매질이자 그것의 산파다.

이것은 역병 재난에 대한 기록이고 통증에 대한 보고서다. 나는 신체를 꿰뚫고 지나가는 고통을 겪었는데, 이 사태는 코로나19 양성 확진자로 진단받으며 시작되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창궐하고 양성 확진자 숫자가 치솟는 동안에도 나는 이것이 나를 비켜갈 줄 알았다. 나는 건강하고 면역력이 있다고 자신했다. 하지만 오판이었다. 나는 코로나 바이러스에 맥없이 쓰러졌다. 첫 통증은 극심한 인후통이다. 정말 죽을 만큼 목구멍이 따갑고 아팠다. 결국 병원 응급실로 실려 갔다.

음압병동에서 채혈을 하고 흉곽 엑스레이를 찍었다. 의사는 염증 치수가 높다며 입원을 하라고 했다. 밤 11시가 넘은 시각 입원 수속을 하고 낯선 병실에서 환복을 하니 영락없는 환자다. 얼마 뒤 간호사가 와서 수액 링거를 꽂고 항생제를 투여한다. 잔기침이 계속 나오고 목구멍에서는 가래가 끓었다. 기침이 나올 때마다 극심한 인후통이 밀려온다. 바늘 천 개로 목구멍을 찌르는 듯한 통증을 견디며 낯선 병실에서의 불안하고 어수선한 첫날 밤을 보낸다.

창밖이 희부옇게 밝아왔을 때, ‘아, 죽지 않고 살아 있구나!’ 하는 느낌이 밀려온다. 살아 있음을 실감하며 메마른 가슴을 적시는 가느다란 감격이 스친다. 아침에 병원에서 주는 식사를 하고 나니 간호사가 속옷 몇 벌과 랩톱, 책 몇 권을 전달해 준다. 아내가 집에서 가져온 것이다. 아침 회진이 끝난 뒤 랩톱을 열고 잔기침을 하며 신문 칼럼 원고를 마무리해서 보냈다. 아내의 편지는 아도니스 시집 ‘너의 낯섦은 나의 낯섦’에 끼워져 있었다. 아내는 몹시 놀란 듯했다. 놀람과 슬픔이 고스란히 배어 있는 문장들로 채워진 편지다.

초록빛 벼락이여

태양과 광기 속의 내 아내여,

바위가 눈꺼풀들 위에서 부서졌으니

사물들의 순위를 바꾸시오.

나는 하늘 없는 대지로부터 그대에게 왔소

-아도니스, ‘벼락’ 일부

입원한 뒤 단조롭고 지루한 날들이 지나간다. 4인 병실에서 사흘을 보내고 새날을 맞는다. 통증의 맥시멈에서 온몸을 찌르고 덮치던 불안과 공포는 잦아든다. 위험한 고비는 넘어갔다. 밭은기침을 하며 지샌 새벽에 간호사가 와서 혈압, 맥박, 체열, 혈당 체크를 한다. 다 정상이다. 혈당 수치도 안심할 만한 수준이다. 엊저녁에는 124였는데, 오늘은 108이다. 인후통으로 물 한 모금 넘길 수가 없었는데, 통증이 가라앉으며 식사를 정상으로 할 수 있게 되었다. 잔기침은 여전하지만, 빈도가 줄고 통증도 덜하다.

생각해 보면 질병과 싸우는 주체는 몸이다. 신체는 이 싸움에 제 신경망과 치유력을 다 쏟아붓는다. 몸은 죽지 않으려고 필사적이다. 몸이 질병과의 싸움에 나태해지는 법이란 없다. 나는 그저 몸과 질병 사이에 일어나는 싸움을 바라보는 관전자일 뿐이다. 몸에 24시간 링거를 통해 투입되는 수액이나 항생제 따위는 이 싸움을 돕는 현대의학의 보급품이다. 입원 소식에 많은 페이스북 벗들의 따뜻한 응원과 격려가 이어졌다. 그 하나하나가 눈물겹게 고맙다. 나는 이 격려를 알아듣지만 몸은 타인에 건네는 말들을 알아듣지 못한다. 몸에게 이걸 어떻게 전달할 수 있을까? 아직 창밖은 미명이다. 침상 위 머리등을 켜고 아내가 넣어준 책을 몇 쪽 읽었다.

입원 닷새 차다. 오늘은 안개가 자욱하다. 어제까지 선명하던 먼 산이 안개 뒤로 숨어 안 보인다. 면회도 안 되고 병실 밖으로 한 걸음도 나갈 수 없다. 같은 병실에 있는 노인들은 텔레비전이 없다고 툴툴거린다. 이 툴툴거림은 집에서 거저 누리던 일상의 권리를 행사할 수 없음에 대한 불만이다. 병실 창문으로 먼 곳 풍경을 볼 수 있는 게 병원에서 허용하는 유일한 자유다. 먼 곳은 병실 저 너머 고통이 없는 아늑한 장소, 고통의 너머의 세계이다. 아픈 자에게 건강이란 갈 수 없는 먼 풍경이다.

어젯밤에는 간호사가 손등에 붙은 링거 줄을 떼 내었다. 링거줄을 떼 낸 뒤 깊은 잠을 잤다. 발작하듯이 터지는 기침과 가래 끓는 게 줄며 그만큼 통증이나 불안도 줄었다. 새벽에 간호사가 와서 맥박, 혈압, 체열, 혈당치를 잰다. 체열은 36.8도, 혈당치는 118. 다 정상이다. 몸이 잘 견디고 있다는 증거다. 피검사를 하기 위해 채혈을 하고, 병실 침상에 누운 채로 간이 엑스레이로 흉곽 사진을 찍었다. 염증수치가 나아졌다면 오늘 중으로 퇴원을 해서 집에서 회복에 집중할 것이다. 아침에 회진 의사를 기다리는데, 간호사가 주말이라 의사가 출근하지 않는다고 한다. 주말에는 회진이 없다는 걸 몰랐다.

신체는 하나의 완전체다. 신체는 신진대사를 통해 생물학적 필요를 취하고, 세계의 한가운데서 동적 평형을 유지하며, 자기 생산 운동을 한다. 내 신체는 이 운동이 순조로운 상태를 건강으로 받아들인다. 건강은 신체 활동에 필요한 생동과 활력의 정도를 드러내는 수사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외부에 대응하는 신체 활력의 잉여가 건강이다. 이 잉여값이 클수록 더 건강한 신체다. 하지만 신체가 건강할 때 건강을 인식하는 것은 어렵다. 이것이 결락되었을 때 신체는 비로소 제 균형이 무너진 것을 느끼며 불건강을 인식한다.

질병이란 은유적으로 내 몸을 찾은 초대하지 않은 나쁜 손님이다. 더 많이 존재하려는 자의 여기 있음과 그 의지 흔들기이자 가혹한 시험이라는 점에서 질병은 우리가 원치 않는 나쁜 권능의 실재를 보여준다. 신체 내부로 침입한 원인균이 만든 혼돈과 무질서라는 폭탄을 터뜨린다. 원인균은 신체의 장기와 골수, 혈액, 신경망 따위에 들러붙어 자가 증식한다. 이 증식으로 말미암아 신체는 혼돈에 빠진다. 신체는 바이러스의 외부 침투를 방어한다. 신체가 먼저 바이러스를 공격하는 법은 없다. 질병이 신체 내부의 집약적 질서를 무너뜨리고 시스템을 파괴할 때 열과 염증 반응이 나타난다. 신체는 염증 수치로 위기를 감지하고 붉은 비상등을 반짝 켠다. 신체는 질병에 저항한다. 질병은 신체의 저항과 통제를 넘어서서 제 갈 길을 간다. 신체 내부에 질병이 탈주선을 만들 때 주체는 외롭게 통증에 맞서 힘겨운 싸움을 시작한다.

닷새 만에 병원에서 나와 집으로 돌아온다. 집에서는 채혈을 하려고 혈관에 주삿바늘을 찌르는 일도, 팔목에 링거줄을 매단 채로 잠드는 일도 없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나는 욕실에서 뜨거운 물로 씻었다. 씻고 나니 온몸이 나른해지며 졸음이 밀려온다. 한낮의 빛을 커튼으로 차단하고 단잠에 들었다. 몸과 마음이 고요하고 평화롭다. 이 고요와 평화는 질병과의 싸움에서 승리하고 얻은 전리품이다. 나는 코로나 바이러스란 질병에서 살아 돌아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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