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 분노한 크림대교 트럭 폭발...의문점은

입력 2022-10-11 11:40 수정 2022-10-11 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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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와 크림반도를 잇는 크림대교에서 8일(현지시간) 폭발 사고가 발생했다. 크림반도/UPI연합뉴스
▲러시아와 크림반도를 잇는 크림대교에서 8일(현지시간) 폭발 사고가 발생했다. 크림반도/UPI연합뉴스
러시아와 크림반도를 연결하는 크림대교 폭발을 기점으로 우크라이나 전쟁 상황이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의 ‘테러’ 공격으로 규정하고 11일(현지시간) 민간인을 겨냥한 대규모 공습을 감행했다. 러시아가 즉각적으로 우크라이나에 화살을 돌렸지만, 폭발 당시 크림대교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는 아무도 확신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폭발 원인과 주체를 특정할 증거가 부족한 가운데, 사건은 미궁에 빠졌다.

8일 새벽 크림대교 한 복판에서 갑자기 거대한 폭발이 발생했다. 화물열차가 화염에 휩싸였고 2개 차선 상판이 완전히 붕괴됐다. 사망자는 3명으로 폭발 트럭 근처에 있던 차량 승객들이다. 러시아 조사위원회는 희생자 중 두 명의 시신이 바다에서 발견됐다고 밝혔다.

크림대교에서 발생한 의문의 폭발로 러시아는 또 한 차례 굴욕을 맛봤다. 최근 러시아는 우크라이나군에 밀려 남부에서 잇달아 후퇴해 체면을 구겼다. 특히 크림대교는 러시아와 크림반도(2014년 러시아가 강제 병합)를 연결하는 유일한 다리이자 러시아군의 주요 보급로로, 푸틴의 '자존심'이 무너졌다는 평가가 나왔다.

크림대교 폭발 몇 시간 후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정조준했다. 러시아 조사위원회는 크림대교를 건너던 트럭을 지목, 대규모 폭발 장치가 숨겨져 있었다고 주장했다. 트럭에 설치된 폭발물을 이용한 ‘테러’ 공격이라는 것이다. CCTV에는 주홍색 캡이 달린 트럭이 교량 진입 전 검문소에 나타나는 모습이 담겼다. 일상적인 검사가 진행됐고 반팔을 입은 운전사가 트럭의 뒷문을 닫는 게 보인다.

알렉산드르 바스트리킨 러시아 조사위원회 위원장은 푸틴을 만나 “트럭이 불가리아에서 조지아, 아르메니아, 북오세티야를 거쳐 러시아로 왔다”며 “테러 공격을 준비 중인 사람들과 러시아 연방 영토에서 활동하는 사람들 중 용의자를 식별할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이어 “우리는 분명한 결론에 이르렀다”며 “우크라이나 특수부대가 준비하고 있던 테러 공격”이라고 보고했다.

이후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 연방의 중요 민간 기반 시설을 파괴하기 위한 테러 공격이라는 데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밝혔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9일(현지시간) 조사위원회 위원장과 회의를 하고 있다. 모스크바/로이터연합뉴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9일(현지시간) 조사위원회 위원장과 회의를 하고 있다. 모스크바/로이터연합뉴스

러시아의 재빠른 우크라이나 테러 규정은 자국 방어 실패 비난을 최소화하고 대규모 공습 명분을 제공했다.

푸틴은 “우크라이나가 가장 추악한 테러 집단과 동등해졌다”며 “우크라이나 정권에 책임을 묻지 않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러시아는 11일 사람들의 이동이 많은 ‘러시아워’에 우크라이나 12개 도시에 최소 84발의 미사일과 로켓 공격을 퍼부었다. 민간시설이 파괴됐고 최소 14명의 사망자를 포함해 사상자가 속출했다.

푸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가 민간인 무차별 공격의 빌미를 제공했다고 주장하지만, 크림대교 폭발 사건 원인과 배후는 아직 오리무중인 상태다.

CNN에 따르면 전문가들도 폭발 당시 영상만으로는 정확한 분석이 어렵다는 입장을 내놓고 있다.

크림대교는 우크라이나에서 약 150마일(241km) 떨어져 있다. 서방이 공급한 무기의 사정거리에서 크게 벗어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다만 올 여름 우크라이나 드론이 해당 지역에 접근해 방공 조치를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드론에 의한 미사일 공격으로 트럭이 폭발했을 가능성도 확신하지 못하고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트럭 폭발로 서쪽 방향의 차선 두 구간이 완전히 붕괴돼 케르치해협으로 사라질 수 있는지 의문을 제기한다. 그러면서 차선이 무너진 형태는 폭발 힘이 위가 아닌 아래서 발생했음을 암시한다고 설명했다.

크리스 콥-스미스 포렌식 아키텍처 애널리스트는 “트럭 폭발만으로 이 정도 파괴력을 낼 수 없다”며 “폭발로 대교를 붕괴시키는 건 가능하지만 엄청난 양의 ‘탬핑(tamping, 화약류를 사용해 발파작업을 할 경우 암석 구멍에 폭약을 장전한 후 모래 또는 점토, 기타 인화성 없는 물질로 구멍을 메우는 것으로 일명 충진재라고 한다)’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개인 희생 없이 대교를 파괴할 수 있는 정교한 무기 시스템이 있다”며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물 속에 잠긴 다리를 분석해야 한다”고 말했다.

▲10일(현지시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곳곳에서 미사일 공습을 단행한 가운데 수도 키이우에서 한 구조 당국관계자가 화염에 휩싸인 차량 옆을 지나가고 있다. 키이우/AP뉴시스
▲10일(현지시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곳곳에서 미사일 공습을 단행한 가운데 수도 키이우에서 한 구조 당국관계자가 화염에 휩싸인 차량 옆을 지나가고 있다. 키이우/AP뉴시스

우크라이나는 크림대교 폭발을 환영하면서도 책임은 인정하지 않고 있다. 우크라이나 정보기관은 이날 오전 대규모 미사일 공습이 교량 폭발 며칠 전부터 계획됐다고 주장하며 러시아를 의심한다. 우크라이나 국방정보부는 “러시아 군부대가 지난 2~3일 이미 러시아 정부로부터 우크라이나 민간 인프라 공습을 준비하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일부 관리들은 크림대교 폭발이 러시아 보안국과 국방부의 내분에 따른 결과라고 말한다. 제시한 증거는 없다.

우크라이나가 크림대교를 공격 타깃으로 언급했던 적은 있다. 드미트로 마르첸코 우크라이나 중장은 지난 6월 “크림대교는 최우선 타깃”이라며 “가장 먼저 공격해야 할 목표”라고 말했다.

그러나 현재 정황만으로는 크림대교 폭발 당시 무슨 일이 있었는지 확언할 수 없다. 사건이 미궁에 빠진 가운데 전쟁은 확전 국면으로 치닫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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