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기설의 노동직설] 미국 일류기업들은 왜 재택근무에 부정적인가

입력 2022-10-14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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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좋은일자리연구소장

2013년 IBM 뉴욕지사를 방문했을 때 만난 회사 관계자는 재택근무의 장점을 입에 침이 마를 정도로 늘어놓았다. 그는 “재택근무는 직원들에게 출퇴근 시간과 교통비를 줄일 수 있게 하고 회사는 사무실 비용을 아낄 수 있어 직원과 회사 모두에 이익이 된다. 또한 타인으로부터 간섭받기 싫어하고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근무하고 싶어하는 젊은 층의 신사고와도 어울려 젊은 층 인재 확보에도 크게 기여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그곳은 직원 120명이 재직하고 있었는데 이 중 115명은 집에서 일하거나 집에서 가까운 곳에 마련된 스마트워크센터에서 일하고 있었다. 회사로 출근하는 직원은 5명에 불과했다. 윗사람 눈치를 봐야 하는 근로자들에게 천국이 따로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재택근무 원조격인 IBM은 전체 직원의 40%가량이 재택근무 형태로 일하면서 사무실 임대 비용만 연간 1억 달러(약 1400억 원)를 절약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IBM은 재택근무 시행 10여 년 만인 2017년 이를 전격 폐지했다. 근무자들의 소외감과 단절감이 높아지고 생산성이 떨어지고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코로나19 사태로 확산되던 재택근무는 코로나 사태가 끝나가면서 크게 줄어들고 있다. 특히 미국의 초일류기업들은 재택근무에 아주 부정적인 편이다. 미국 시가총액 1위인 애플의 최고경영자(CEO) 팀 쿡은 팬데믹 시대에 시행한 재택근무를 줄이고 9월부터 사무실로 출근하라는 지침을 내렸다. 직원들은 수개월 전 회사의 재택근무 폐지 방침에 반발했지만 이번에는 코로나 상황이 진정되고 있는 데다 불황까지 겹치고 있는 탓에 큰 반발 없이 회사 측 방침을 수용했다고 한다.

혁신의 아이콘인 아마존의 제프 베이조스는 “워라밸을 지지하지 않는다”고 밝혀 화제가 된 적이 있다. 그는 “일과 생활의 균형을 찾으려 하지 말라. 일과 삶은 균형이 아니라 조화를 이뤄야 한다”고 말했다. 기업이 성장하기 위해선 워라밸의 느슨함보다 조직의 엄격함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잭 웰치 전 GE 회장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일과 삶의 균형 따위는 없다. 인생은 그 자체가 균형적이지 않다. 나는 정말 죽도록 일했다. 기업에서는 ‘하드워킹’ 아니면 ‘not 하드워킹’ 두 가지만 존재한다”고 밝힌 적이 있다. 기업 성장에 워라밸은 한가한 소리라는 지적이다.

구글은 수영장 당구장 게임장 수면실 등 직원들의 복지시설을 잘 갖춘 회사로 유명하다. 직원들이 원하면 업무시간에도 이들 시설을 이용할 수 있다. 정해진 출퇴근 시간은 없다. 한 달 이상 휴가를 내도 된다. 재택근무도 할 수 있다. 휴식을 취하든, 재택근무를 하든 개인의 자유다. 하지만 성과는 확실히 내야 한다. 회사는 워라밸을 강조하지만 포탄이 쉴 새 없이 떨어지는 전쟁터 같은 곳에서 일과 삶의 균형을 찾을 수 있을까.

코로나 이전부터 인재 확보와 일·가정 양립을 위해 도입했던 다른 미국 기업들도 이제 잇따라 재택근무를 철회하고 있다. 재택근무로 인한 비효율성이 부각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네이버 카카오 등 일부 IT 및 플랫폼 기업들이 코로나 사태가 진정된 이후에도 대면근무와 출근 횟수를 줄이고 재택근무를 늘리는 유연근무제를 확대하고 있다. 업무 특성상 재택근무 활용이 효율적이라고 생각한 때문이다. 반면 현대자동차 삼성 LG 포스코 등 대기업들은 미국 기업들처럼 재택근무 비율을 대폭 줄이거나 아예 폐지하고 있다.

재택근무는 출퇴근 교통 소요시간을 줄일 수 있고 일과 가정을 양립할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업무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부정적 평가도 많다. 서로 얼굴을 맞대고 회의를 해야 새로운 아이디어가 나오고 집중력도 발휘되는데 재택근무를 하면 이 같은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또한 직장은 사회적 인간관계를 증진시키며 삶에 활력을 불어넣는 역할을 하는 데 반해 재택근무는 소외감과 외로움, 우울감을 들게 만들어 정신건강에도 부정적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upyk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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