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선' 전후석 감독 "'LA폭동' 겪은 한인들 '정치인 필요하다' 생각"

입력 2022-10-27 15:28 수정 2022-10-27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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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하원의원 선거 출마한 5명의 한국계 후보 궤적

▲'초선' 전후석 감독. 출처: 커넥트픽쳐스
▲'초선' 전후석 감독. 출처: 커넥트픽쳐스

“당시 슈퍼마켓의 한인 주인과 흑인 소녀가 주먹다짐을 했어요. 그러다가 소녀가 가게를 확 나가버리니까 주인이 가지고 있던 권총으로 소녀를 쏴 버린 거죠.”

1992년, LA 한인타운에서 비극적 사건이 벌어진다. 슈퍼마켓을 운영하던 50대 여성 두순자 씨가 자신의 가게에서 물건을 훔쳐 가는 것처럼 보였던 흑인 고등학생 라타샤 할린스를 총으로 쏜 것이다. 27일 서울 종로의 한 카페에서 이 이야기를 전면에 내세운 다큐멘터리 ‘초선’ 인터뷰로 만난 전후석 감독은 “경찰 조사에 의하면 상점을 구경하던 소녀가 물건을 가방에 넣은 것은 사실이지만 주머니에 물건값을 지폐로 가지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두순자 씨가 집행유예를 받는 데 그치자 고질적인 인종차별에 시달리던 흑인들은 강력하게 분노했다. 한인타운의 가게를 불태웠고, 물건을 약탈해갔다.

아메리칸드림을 꿈꾸며 말도 통하지 않는 미국 땅으로 이주해온 한인들은 ‘주 7일 근무’가 일상이었을 만큼 생존에만 골몰했기에, 당시 인식으로서는 자신들이 인종차별의 가해자가 될 수 있다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초선' 포스터 (커넥트픽쳐스)
▲'초선' 포스터 (커넥트픽쳐스)

전 감독은 “(당시 한인들에게는) 인종 간 화합해서 살아야 한다는 의식이 없었다”면서 “LA ‘폭동’ 사건은 ‘재미한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이해하는 중요한 사건”이라고 짚었다.

전 감독은 언어와 사회문화적 장벽으로 자신들의 입장을 제대로 대변할 수 없었던 한인들이 이 사건 이후 자신들의 현안을 제대로 다뤄줄 수 있는 정치인, 즉 연방 하원의원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강하게 하게 됐다고 분석한다.

그가 연출한 다큐멘터리 ‘초선’은 이 사건을 뿌리 삼아 2020년 미연방 하원의원 선거에 출마한 5명의 한국계 후보의 궤적을 쫓아가는 이야기다.

주인공 중 4명은 그해 하원의원에 당선돼 국내 언론에도 여러 차례 소개된 인물들이다. 공화당 소속 하원의원 미셸 스틸과 영 김, 민주당 소속 하원의원 앤디 김과 메릴린 스트릭랜드다.

▲'초선' 스틸컷 (커넥트픽쳐스)
▲'초선' 스틸컷 (커넥트픽쳐스)

한국에서 태어났거나 한국인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이들 4명 의원은 소속된 당은 물론 정치 지향과 가치관도 전혀 다르지만, 전 감독은 이들이 “아시안이기 때문에 공통적으로 직면한 위험에 대해서는 연대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대표적인 게 2021년 5월 다른 의원들과 함께 아시안 혐오범죄 금지법을 통과시킨 일이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아시아 노인을 대상으로 한 무차별 길거리 폭력이 사회적 문제로 불거지던 시기였다.

전 감독은 “부모님 세대가 겪었던 공동체적 위기감이 30년이 지난 뒤 아시안 혐오범죄를 통해 고스란히 다음 세대로 전이됐다”면서 “아시아 사람에 대한 뿌리 깊은 ‘이방인 정서’를 정정하기 위한 여러 움직임이 많았다”고 짚었다.

▲'초선' 스틸컷. 하원의원 선거에서 당선된 미셸 스틸, 영 김(왼쪽부터) 후보가 2021년 1월 열린 초선의원 선서에 참석한 모습. (커넥트픽쳐스)
▲'초선' 스틸컷. 하원의원 선거에서 당선된 미셸 스틸, 영 김(왼쪽부터) 후보가 2021년 1월 열린 초선의원 선서에 참석한 모습. (커넥트픽쳐스)

다만 한국계 하원의원들이 모두 같은 가치관을 지닌 건 결코 아니다. 영화에는 공화당 소속 미셸 스틸 의원이 강성 트럼프 지지자들과 동일한 논리로 미등록이민자를 배척하는 장면이 나오는가 하면, 민주당 소속 데이빗 킴 후보가 기본소득과 이민자, 성소수자의 인권을 말하는 대목도 담겼다. 데이빗 킴 후보는 그해 6%의 표 차로 캘리포니아 34지구에서 낙선했다.

전 감독은 “특정 개인을 홍보하는 영상을 만들고 싶진 않았다. 모든 주인공을 의식적으로 ‘한 인간’으로 보려고 했고 공평하게 다루려고 했다”고 전했다.

다만 전반적인 분량은 민주당 소속 하원의원 후보로 출마했다가 낙선한 데이빗 킴의 비중이 크다.

한인 목사로 평생을 활동해온 보수주의적 관점의 아버지와 충돌하는 데이빗 킴의 모습은 한 명의 정치인이기 전에 이민자 가정에서 자라면서 부모 세대와 갈등하게 되는 2세대의 어려움을 잘 보여준다.

▲'초선' 스틸컷. 데이빗 킴 후보가 선거 운동을 하고 있다. (커넥트픽쳐스)
▲'초선' 스틸컷. 데이빗 킴 후보가 선거 운동을 하고 있다. (커넥트픽쳐스)

전 감독은 “데이빗 킴을 통해서 다른 후보들에게서는 끌어낼 수 없었던 한인 사회의 여러 복잡성과 갈등 구조를 보여줄 수 있었다. 그의 가정사를 통해 세대적, 이념적, 종교적, 인종적, 성소수자적인 갈등을 이야기할 수 있었다”고 의미를 짚었다.

미국에서 태어나 한국에서 유년기를 보내고 다시 미국으로 돌아간 인생의 경로를 거치면서 “정체성 고민이 굉장히 심했다”는 전 감독은 다음 달 3일 개봉하는 ‘초선’을 통해서 “서로 다름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을지 질문하고 싶었다”고 했다.

그는 “(양극으로 나눠진) 재미한인 사회와 현재 대한민국 사회가 굉장히 흡사하다고 생각한다. 거울 같은 주인공들을 통해서 우리 스스로를 돌아봤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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