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근 전 더불어민주당 사무부총장은 불법 정치자금을 받기 위해 “나는 유력 정치인의 측근이고 대통령 비서실장과도 친하다”라며 자신의 인맥을 과시한 것으로 드러났다.
29일 이투데이가 입수한 검찰 공소장에 따르면 이 전 부총장은 정치권 인사들과의 친분을 내세우고 자신의 직무를 이용해 약 10억 원 가량의 불법 정치자금을 수수했다. 이 전 부총장은 19일 정치자금법위반 혐의로 구속기소됐다.
27쪽 분량의 공소장에는 이 전 부총장이 사업가 A 씨에게 어떤 방식으로 금품을 요구했는지 구체적인 내용이 담겨 있다. 이 전 부총장은 정치권 실세들과의 인연을 주로 거론했다. 그는 사업가 A 씨에 돈을 요구하기 위해 “중소기업창업투자사 운용 자금은 중소기업벤처기업부 자금이라서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을 움직여야 한다”며 “장관을 언니라고 부를 정도로 친한 관계”라고 말했다.
그는 “나는 유력 정치인인 B 국회의원의 측근이고 대통령 비서실장과도 친하다”라며 인맥을 자랑하기도 했다. 또한, “B 의원이 곧 당의 주도적 위치로 갈 것이니 총선에서 나의 서초구 공천은 따놓은 것과 다름 없다”며 “선거 비용이 필요한데 남편 소유의 경상북도 임야를 대금 5000만 원으로 다운계약서를 쓰고 가져가고 1억 원을 달라. 도와주면 잊지 않겠다”라는 말도 했다.
선거가 가까워지자 이 전 부총장은 공천을 이유로 돈을 더 요구했다. 이 전 부총장은 A 씨에게 “공천을 받으려면 어른들에게 인사를 해야 하는데 돈이 급하다”라며 5000만 원을 받았다. A 씨가 선거 사무실을 방문하자 “초선으로 출마한 후보들 중 친한 사람들이 있으니 그 사람들도 도와주면 나중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하며 1000만 원을 수수했다.
이 전 부총장이 21대 총선을 앞두고 2020년 2월 민주당 서초갑 국회의원 후보로 확정되고 3월 중앙당 부대변인으로 임명되자 더 적극적으로 돈을 요구했다.
이 전 부총장은 A 씨에게 “내 뒤에 B 의원이 있다”, “후보 등록비, 유세차 비용으로 3000~4000만 원이 급히 더 필요하다” 등의 말로 약 2억 원 넘는 돈을 받아냈다.
이 전 부총장은 식품의약품안전처의 마스크 인허가를 두고도 알선 대가로 금품을 요구했다.
한 마스크 생산 회사가 수출이 어렵게 되자 이 전 부총장이 직접 나서서 상황을 해결하겠다며 돈을 요청한 것이다. 이 전 부총장은 “전 식약처장과 친하다”며 친분을 과시했고 식약처 담당 공무원 알선 등을 이유로 총 2억 원을 수수했다.
이 외에도 포스코건설 소유의 구룡마을 개발과 관련해서 우선수익권 인수를 도와 달라는 A 씨의 청탁에 “내가 국토교통부 장관과도 친하고 포스코건설 법무팀도 잘 알고 있으니 선거가 끝난 뒤 인수할 수 있게 해주겠다”고 말했다. 이후 이 전 부총장은 A 씨에 “조카 전세 자금이 급히 필요하니 2억2000만 원을 달라”고 요구했고 A 씨는 이 전 부총장 측에 1억7000만 원을 입금했다.
또, A 씨가 한국남동발전에 수소력발전 설비 납품을 시도하며 이 전 부총장에 “대통령 비서실장을 통해 한국남동발전 사장을 소개해달라”고 청탁했고, 이 전 부총장은 그 자리에서 돈을 요구해 3000만 원을 받았다.
이 전 부총장은 알선의 대가로 명품을 얻어냈다. 그는 A 씨에게 “백화점에 봐둔 물건이 있는데 매장 계좌번호를 알려줄 테니 결제해 달라”며 루이비통 핸드백과 운동화 등을 얻어냈다.
이처럼 이 전 부총장 공소장에 적시된 정치인들은 10여 명에 달한다. 그러나 이들은 이 사건과의 관계성을 부인하는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