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공소장에 담지 않은 사실을 기반으로 유죄를 인정한 판결이 대법원에서 파기됐다. 대법원은 공소장 변경 없이 이 같이 판결하는 것은 피고인의 방어권을 침해해 위법이라고 판단했다.
대법원 1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30일 A 씨의 무고죄를 유죄로 인정해 벌금 300만 원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중앙지법으로 돌려보냈다.
법원에 따르면 A 씨는 2019년 2월 경찰에 “계좌에서 나도 모르게 돈이 출금되고 있는데 누가 돈을 빼 가는지 신원을 밝혀 달라”고 고소했다. 그는 “내 계좌는 아버지와 아버지 회사 관리부장만 접근할 수 있는데, 두 분도 모르게 출금됐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는 A 씨가 자신의 명의로 된 계좌에 아버지가 보관하던 돈을 몰래 인출해 유흥비로 쓴 사실을 감추려 한 거짓말로 드러났고, 검찰은 A 씨를 무고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검찰은 A 씨가 고소장에 고소 대상자(피고소인)의 이름을 쓰지 않은 점을 고려해 ‘피고인이 성명불상자를 형사 처벌받게 할 목적으로 무고했다’고 공소장에 기재했다.
대법원 판례에 의하면 특정되지 않은 성명불상자를 상대로 한 무고죄는 성립하지 않는다. 공무원에게 무익한 수고를 끼칠 뿐 심판을 그르치게 할 염려가 없고, 무고된 사람을 해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그런데도 1·2심은 모두 A 씨의 혐의를 유죄로 인정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경찰에서 아버지 회사 관리부장에게 의심이 가는 진술을 했고, 실제 관리부장이 용의선상에 오를 수도 있었다”며 “비록 고소장에 피고소인을 쓰진 않았으나 타인이 형사처분을 받을 수 있다는 미필적 인식이 있었다”고 판시했다.
이에 대법원은 “원심이 공소장 변경 절차 없이 쟁점이 되는 공소사실을 유죄로 인정한 것은 잘못”이라며 원심 판단을 뒤집었다.
대법원은 “검사는 피고인이 ‘성명불상자’를 무고했다고 기소했는데, 원심은 무고 피해자가 ‘관리부장 등’으로 특정됐다고 봤다”며 “이는 공소사실에 포함되지 않은 사실을 인정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 같은 경우 유죄를 인정하기 위해서는 공소장 변경 절차를 거쳐야 한다”면서 “공소장 변경 없이 유죄로 인정한 것은 피고인이 방어권을 행사하는 데 불이익을 초래할 우려가 있다”고 설명했다.
박일경 기자 ekpa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