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역에 가고 싶다] 수산시장과 학원가 ‘노량진역’

입력 2022-11-07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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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륜거의 소리는 우레와 같아 천지가 진동하고 기관차의 굴뚝연기는 하늘 높이 솟아오르더라. 차창에 앉아서 밖을 내다보니 산천초목이 모두 움직이는 것 같고 나는 새도 미처 따르지 못하더라.” 1899년 9월 19일에 발행된 독립신문은 시속 20km로 노량진과 인천을 달리던 경인선 열차를 보고 이와 같이 표현했다. 1899년 9월 18일 우리나라 철도가 개통할 당시 인천역에서 열린 개통식에 참석할 귀빈들을 태우기 위한 열차가 노량진역(영등포 위치 임시역사)에 도착했다. 이렇듯 옛 노량진역은 한강철교가 완공되기 전 경인선의 시종착역이었다. 지금의 역사는 1971년에 건축된 것으로 1974년 8월 15일 수도권 전철이 운행을 시작, 2005년 여객열차 운행중단으로 광역전철역으로 역할하고 있다.

개통 당시 경인철도는 노량진역에서 인천까지 약 1시간 40분을 걸려 매일 왕복 2회 운영했다고 한다. 쌀 한 가마니가 4원 하던 시절, 외국인 전용인 상등석이 1원50전이었으니 당시 열차는 무척이나 비싼 교통수단이었다. 그리고 1900년 한강철교가 완공되면서 노량진역과 서대문역이 연결되는 역사적인 사건이 발생한다.

철강 1200t, 벽돌 120만 장, 석재 5만 개가 투입된 근대식 토목공사에 의한 최초의 대형 교량이자 한강 최초의 다리인 한강철교는 1896년 공사가 시작되어 4년여 만에 준공되었다. 1917년에는 인도교가 새롭게 건설되기도 하였다. 한강철교는 한국철도교통과 근대화의 중요한 상징이지만, 동시에 한국전쟁 당시 피란길에 올랐던 수많은 피란민이 우리 정부에 의해 희생당했던 비극의 상징이기도 하다.

2018년, 대한민국 철도사의 시작을 함께한 노량진역에 경인선 최초 설계도와 조선철도여행지도, 증기기관차, 열차 미니모형 등을 볼 수 있는 작은 철도박물관이 꾸며졌다. 그렇다면 1899년 9월 18일, 노량진역을 출발했던 열차의 이름은 무엇이었을까? 당시 천지가 진동할 만큼 큰 기적소리로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했던 이 기차의 이름은 ‘모갈 1호’였다. 모갈(Mogul)이란 거물, 또는 거인을 뜻하는 이름이었지만 낯선 발음 탓에 사람들은 불을 때서 가는 기차라 하여 화차, 또는 화륜거라 불렀다.

노량진이란 백로가 노닐던 나루터라는 뜻으로 예부터 수양버들이 울창한 노들나루라 불렸다. 오늘날 물 내음 나던 뱃길의 흔적은 노량진 나루터 표지석(노량진 배수지 시민공원 위치)으로만 남았지만, 대신 싱싱한 수산물을 바로 먹을 수 있는 수산시장이 위치하여 백로뿐만 아니라 더 많은 사람들의 즐거운 공간이 되었다.

노량진수산시장은 1927년 경성수산㈜으로 서울역 근처에서 처음 문을 열었다. 수산물을 산지에서 소비지로 이송하는 데 철도교통이 매우 중요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점차 서울역 인근 인구가 늘어나면서 시장을 도심 외곽으로 이전할 필요성이 높아져, 1971년 한국냉장㈜이 지금의 위치에 도매시장을 건설하게 되었는데, 바로 노량진역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1978년 정부는 서울 도심지에 있던 261개 학원을 부도심으로 옮기려는 계획을 세웠다. 이를 계기로 당시 가장 유명했던 대성학원이 노량진으로 이사하면서 노량진역과 노량진 거리는 1980~90년대 대학교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의 공간이 되었다.<사진> 공무원 학원, 자격증 학원들이 생겨나면서 점차 20~30대 취준생, 공시생들이 모여들었고 노량진역은 어느 순간 아픈 청춘을 상징하는 곳으로 자리 잡았다. 때문에 노량진 거리는 돈 없는 젊은이들이 저렴한 가격으로 배를 채울 수 있는 컵밥, 떡볶이, 한끼버거 등 거리 노점상이 발달하며 이 시대 청춘들의 치열한 삶의 공간이 되었다.

자료=국가철도공단 ‘한국의 철도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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