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국가는 ‘애도의 다양성’을 허하라

입력 2022-11-10 05:00 수정 2022-11-10 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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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인상적인 사진을 본 적이 있다. 다섯 명의 중년 여성이 검정 옷을 입고, 검은색 벽면을 배경으로 무표정한 얼굴을 한 사진이다. 얼굴들이 평범한 듯 낯익었다. 사진 각주를 읽고 잠시 숨이 ‘턱’ 막혔다. 고(故) 김용균 씨의 어머니 김미숙 씨 등 사회적 재난으로 자식을 잃은 어머니들이었다.

프로이트는 상실을 치유하는 태도를 두 가지로 구분했다. 애도와 멜랑콜리다. 애도는 개인적 상실에 그치지 않고 새로운 사랑으로 건너간다. 사진 속 주인공들은 개인적 실의에 빠지지 않았다. 또 다른 비극을 막기 위해 사회를 조금씩 바꿔나갔다. ‘내 새끼’에만 집착했으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다. 나와 비슷한 아픔과 상실을 겪은 동료, 누군가의 자식일 동료 시민에 대한 새 사랑이 깔린 ‘애도’의 방식이었을 터다.

반면 멜랑콜리는 자신의 상처에만 집착한다. 상처를 인정하지도 않아 상처를 준 대상에 대한 비난을 지속한다. 다른 사랑으로 건너가지 못한다. 프로이트는 멜랑콜리를 ‘병리적 나르시시즘’으로 규정했다.

그래서 이태원 참사에 대한 윤석열 정부의 ‘국가 애도 기간’ 선포는 나르시시즘적이다. 과도한 멜랑콜리다. 희생자의 상실을 당사자 개인에게 떠넘기기 때문이다. 그러니 ‘참사’를 ‘사고’로, ‘희생자’를 ‘사망자’로 용어를 바꾸는 참극이 벌어진다. 여기엔 새로운 사랑이 들어설 공간이 없다. 핼러윈 축제가 아예 사라진다는 소문 아래, 지자체는 모든 축제를 중단하고 유통기업들은 연말 행사와 크리스마스 점등식을 미뤘다.

2001년 미국 9.11테러 발생 1년 뒤, 세계무역센터가 무너진 바로 그 자리에 크리스마스트리가 세워졌다. 무역센터 건물 잔해제거작업을 한 뉴욕목수연합회가 마련한 트리였다. 3000여 개의 전구와 장식물들은 9.11테러 희생자를 상징했다.

어느 뮤지션의 말처럼 노래든, 공연이든, 하다못해 백화점이 크리스마스 점등식을 벌이든 이 모든 활동이 나름대로 애도 방식일 수 있다. 더구나 그토록 ‘자유’를 중시하는 현 정부라면 그 정도 애도의 자유는 보장해줘야 하지 않겠나. 그러니 요구한다. 국가는 애도의 자유, 아니 애도의 다양성을 허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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