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크래커] ‘범’ 바이낸스가 ‘하룻강아지’ FTX를 무릎 꿇리기 위해 벌인 반전

입력 2022-11-09 15:11 수정 2022-11-09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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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대 가상자산 거래소 바이낸스가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는 FTX를 인수하겠다는 뜻을 밝혔다.(로이터연합뉴스)
▲세계 최대 가상자산 거래소 바이낸스가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는 FTX를 인수하겠다는 뜻을 밝혔다.(로이터연합뉴스)

설립 3년 만에 기업가치 39조 원을 일궈낸 가상자산 파생상품 거래소 FTX가 심각한 유동성 위기를 맞았다. 고객들이 자산을 대량으로 인출하는 ‘뱅크런’이 시작된 후 급기야 모든 출금을 중단했다.

세계 1위의 도약을 노리던 FTX의 몰락 배경엔 세계 최대 가상자산 거래소 바이낸스와의 알력 다툼이 있다.

주요 투자자 바이낸스, FTX 사태 불 지펴

9일 본지 취재에 따르면 가상자산 거래소 FTX는 고객들이 자산을 대량으로 인출하는 ‘뱅크런’이 일어난 후 출금을 중단했다. FTX가 FTT 코인을 무분별하게 발행하며, 유동성 경색을 겪을 것이란 우려가 현실화됐다.

이는 샘 뱅크먼 프리드 FTX 최고경영자(CEO)가 투자한 관계사 알라메다리서치가 재무적으로 취약하다고 알려지면서 수면 위로 드러났다.

코인 전문매체 코인데스크는 알라메다리서치 내부 보고서를 인용해 “알라메다의 대차대조표 상당 부분이 FTX가 발행한 코인인 FTT로 채워져 있고, 이를 담보로 많은 활동이 일어나고 있다”고 보도했다. FTX가 FTT토큰을 발행하고 알라메다가 이를 사주는 형태로 운영 중이라는 뜻으로, 알라메다가 재무적으로 취약하다는 내용이다.

알라메다 측은 대차대조표의 일부분만 본 것이라고 반박했다. 그러나 FTX의 주요 투자자였던 창펑 자오(CZ) 바이낸스 CEO마저 투자 지분으로 받았던 FTT 코인을 전량 매각하겠다고 밝히면서,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이후 CZ는 트위터를 통해 “FTT 처분 발표가 이렇게 큰 논의를 불러일으킬지 몰랐다”며 “거래소를 투명하게 운영하기 위해 해당 사실을 공개했을 뿐”이라고 해명했지만, 투자자들의 공포심을 잠재우기엔 역부족이었다.

최근 3일간 총 60억 달러(약 8조2600억 원)의 자금이 FTX에서 빠져나간 것으로 알려졌다. 이로 인해 FTT 코인은 하루 새 75% 폭락했다. 만약 FTX와 알라메다의 사업 자금이 대부분 FTT 코인의 형태로 있는 것이 사실이라면, 유동성에 심각한 위기를 겪을 수 있다.

▲창펑 자오(CZ) 바이낸스 최고경영자(AP뉴시스)
▲창펑 자오(CZ) 바이낸스 최고경영자(AP뉴시스)

FTX 급성장, 눈에 거슬렸나

CZ는 투명한 매각 과정을 위해 관련 사실을 공개했다고 선을 그었다.

하지만 관계자들은 급성장한 FTX를 견제한 것이라고 해석한다. 그도 그럴 것이 선물·마진 특화 거래소였던 FTX는 현물 거래에서도 고객들을 빨아들이고 있었다. 마진 거래소로 두각을 보였던 비트멕스(BITMEX)가 미국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로부터 규정을 어겼다는 이유로 1억 달러(당시 약 1153억 원)에 이르는 벌금을 부과받으면서 쇠퇴의 길을 걷는 사이 FTX는 빠르게 치고 나갔다.

CNBC에 따르면 FTX는 지난해 10억 달러(약 1조3466억 원)를 벌었다. 2020년 대비 100배 증가한 수치다. 2020년 FTX 매출은 8900만 달러(약 1191억 원)로, 1년 사이에 약 1024%가 증가했다.

지난해 영업이익도 2억7200만 달러(약 3640억 원)로 전년(1400만 달러) 대비 1843% 증가했고, 같은 기간 순이익도 3억8800만 달러(약 5190억 원)를 기록하며 2182% 급증했다.

약세장이었던 올해 1분기 매출도 2억7000만 달러(약 3610억 원)를 기록할 만큼 사업이 안정권에 접어들었다. 2019년 설립된 신생 코인 거래소가 1년 만에 바이낸스의 지위를 위협할 만큼 성장한 셈이다.

그 덕에 올해 초 FTX는 4억 달러(약 5000억 원) 규모의 시리즈 C라운드를 유치해 320억 달러(약 39조 원)에 이르는 기업가치를 인정받았다.

▲샘 뱅크먼 프리드 FTX 최고경영자(로이터연합뉴스)
▲샘 뱅크먼 프리드 FTX 최고경영자(로이터연합뉴스)

무리한 투자가 화근

거래소 실적으로만 보면 위기가 믿어지지 않을 정도다. FTX의 유동성 위기는 거래소 사업에서 나왔다기보다 사업 확장으로부터 기인했다.

FTX는 테라 루나 폭락 사태 이후 유동성을 겪었던 코인 대출 기업 블록파이의 채무를 떠안는 조건으로 인수한 데 이어, 비슷한 사업 구조인 보이저디지털을 2조 원가량으로 사들였다. 보이저디지털은 테라폼랩스 투자 실패로 존폐의 갈림길에 선 벤처캐피털 쓰리애로우캐피털(3AC)의 미상환 자금 관련 청구권을 보유하고 있었다.

이를 두고 CZ는 한 팟캐스트 인터뷰에서 “FTX와 알라메다리서치가 3AC를 지원한 것은 매우 놀라운 일”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나라면 그런 거래는 결코 하지 않고 절대 누구에게 투자할 것인지, 누가 내게 돈을 빌려줄 것인지 등에 대해 말하지 않을 것”이라며 “나는 3AC를 지원하지 않고 오히려 내 돈을 지키려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CZ는 FTX가 블록파이 인수 의지를 공개했을 때도 트위터를 통해 “나쁜 회사를 영속시키지 말라”며 “다른 더 좋은 프로젝트가 그 자리를 채우도록 해야 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때부터 CZ가 FTX의 문어발식 확장을 못마땅해하며 결별을 준비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몇 달 전부터 SNS를 통해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 CZ가 최대 경쟁자로 부상한 FTX를 꺾기 위한 명분이 이번 사태로 마련된 셈이다.

CZ는 위기에 몰린 FTX의 인수 의사를 밝힌 후에도 “언제든 거래를 철회할 재량권이 있다”며 시장의 불안감을 키우고 있다. 인수 조건 협의에서 우위를 점하고, 유사시 계획을 파기할 수 있도록 한 행보로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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