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병억의 유러피언 드림] 26. 삐거덕거리는 독일-프랑스 관계

입력 2022-11-10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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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통합의 말과 마부, 이제 그 역할이 바뀌었다

정상회담을 개최했는데 기자회견이 없었다면 무슨 해석이 가능할까?

아마도 두 나라 관계가 그리 원만하지 않다고 여길 것이다. 지난달 26일 독일의 올라프 숄츠 총리가 파리의 엘리제궁을 방문해 3시간 넘게 프랑스의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과 만났지만 공동 기자회견이 없었다. 유럽통합을 주도해온 독일과 프랑스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단기적이고 중장기적인 구조적 요인이 양국 관계를 저해한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양국의 긴밀한 협력이 더 절실한데 말이다.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로 EU 공동예산 더 필요한데 독일은 “NO”

독일은 지난달 2000억 유로(약 280조 원)의 가계와 기업 지원책을 발표했다.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로 에너지 요금이 천정부지로 치솟자 대규모 보조금을 주겠다고 나선 것. 그러자 프랑스를 비롯한 다른 유럽연합(EU) 회원국들의 불만이 폭발했다. 독일은 재정 여력이 있지만 상당수 EU 회원국들은 코로나19 대처에 많은 돈을 지출해 돈 주머니가 얇다. 따라서 EU 차원의 공동정책이 필요한데 독일이 경제력을 무기로 일방적인 정책을 시행한 셈이다. 프랑스는 또 이처럼 중요한 공동 문제를 독일이 일방적으로 결정했다고 불만을 쏟아 냈다. 1963년 1월 서명된 독일-프랑스 우호조약(엘리제조약)에 따라 양국은 지금까지 주요 국제이슈를 사전에 협의하고 조율해 왔다. 독일은 아울러 가스요금 상한제도 반대했다. 러시아 가스 의존도가 EU 평균보다 최소 10%포인트 높은 독일은 EU 차원의 가스요금 상한제를 도입할 경우 자국의 가스요금 협상권 축소를 우려했다. 프랑스와 다른 EU 회원국들이 강력하게 비판하자 독일은 마지못해 가스요금 상한제를 수용했다.

프랑스는 2·24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후부터 독일에 EU 예산의 증액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2020년 7월 당시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와 마크롱은 팬데믹 대처에 필요한 7500억 유로(약 1000조 원)의 유럽경제회생기금(ERF)에 합의했다. ERF의 약 55%가 무상지원이고 나머지는 장기 저리의 유상지원이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ERF 자금을 국제금융시장에서 EU 집행위원회가 조달한다. 최초의 유로화 단일채권인 셈이다. EU 27개 회원국 경제의 20%를 차지하는 독일은 EU 예산의 최대 기여국이고 그렇기에 추가 부담액도 최고다. 당시 독일은 ERF와 유사한 지원이 단 한 번이지 더 이상은 안 된다고 못 박았다. 그런데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했다.

프랑스를 비롯한 이탈리아, 스페인 등은 코로나19 때와 비교해도 지금이 더 어려운 상황이기에 ERF와 유사한 추가 예산이 필요하다고 독일을 압박해왔다. 독일과 특별한 관계를 유지해온 프랑스가 앞장서서 압박했다. 하지만 독일은 이를 거부했다. 지난번 ERF 지원도 쉽지 않았는데 언제까지나 유럽의 ‘물주’ 노릇을 할 수 없다는 것.

분노한 마크롱 대통령은 지난달 26일 예정된 독일-프랑스 각료회의를 불과 며칠 전에 취소했다. 일부 장관들의 일정이 어렵다는 이유를 댔지만 이를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은 별로 없다. 최소 몇 달 전부터 준비해온 회의를 며칠 전에 취소한다? 더구나 독일-프랑스 협력의 상징으로 양국 장관들이 모여 회의를 하고 공동 관심사를 논의하는 자리인데 말이다. 양국이 각료회의 후 발표할 공동성명서에서 큰 의견 차이가 있었다고 알려졌다. 숄츠 총리는 당일 화급하게 파리로 달려가 3시간 넘게 점심을 함께하며 마크롱과 대화했지만 허사였다. 결국 그날 공동기자회견은 없었다. 독일은 회담 이전에 공동회견이 있을 거라고 밝혔지만 프랑스가 거부했다.

▲에마뉘엘 마크롱(왼쪽) 프랑스 대통령이 지난달 26일 엘리제궁에서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를 맞이하고 있다.  파리/로이터연합뉴스
▲에마뉘엘 마크롱(왼쪽) 프랑스 대통령이 지난달 26일 엘리제궁에서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를 맞이하고 있다. 파리/로이터연합뉴스

EU 국방협력 강화·가스 파이프라인 연결 등으로 갈등

프랑스는 또 차세대 방공망 개발에 앞장서 왔다. 지난해 가을 프랑스와 이탈리아는 차세대 방공망 개발에 합의해 현재 진행 중이다. 그런데 독일은 지난달 중순 브뤼셀에서 개최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국방장관 회담에서 14개 나토 회원국 및 회원 가입을 신청한 국가들과 새로운 방공망체계 공동개발에 서명했다. 아무래도 미국 무기체계와 연동되는 방공망을 독일은 선호하는 듯하다. 프랑스는 무기체계 개발에 독일이 최소한 참여하기를 원했다.

독일과 프랑스는 가스 파이프라인 연결을 두고도 오랫동안 갈등을 겪어 왔다. 스페인은 EU 회원국 가운데 액화천연가스(LNG) 강국이다. LNG 터미널이 있고 프랑스와 파이프라인으로 연결돼 있다. 따라서 프랑스 피레네 산맥을 관통하는 150km 파이프라인만 건설하면 스페인의 LNG가 독일로 판매될 수 있다. 포르투갈과 스페인 모두 8개의 LNG 터미널을 보유 중이어서 독일에 이를 판매하고자 했다. 그러나 프랑스는 경제성이 없다며 끝끝내 파이프라인 연결을 거부했다. 실제는 원자력 강국인 프랑스가 원자력으로 녹색 수소를 생산해 독일에 판매하려 했기에 파이프라인 연결을 거부했다.

대신 프랑스는 지난달 스페인, 포르투갈과 해저 파이프라인 건설에 합의했다. 독일은 프랑스의 거절에 매우 불쾌해했다. 화학과 기계제조업 등 제조업 비중이 높은 독일은 이번 전쟁으로 에너지 위기에 대처하느라 여념이 없다. 그런데 프랑스가 이런 사정을 감안하지도 않고 철저하게 자국 이익에 따라서 행동했다.

20살 나이 차 숄츠·마크롱 케미도 별로

이런 갈등이 지속되는 것은 단기적으로 숄츠와 마크롱의 개인적 관계가 그리 원만하지 않은 것도 한 이유다. 마크롱은 지난 5월 재선에 성공하면서 유럽의 지도자로서 입지를 강화해 왔다. 그는 유럽통합, 특히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을 계기로 유럽의 방위역량 강화를 줄기차게 주창해왔다. 반면에 독일 사회민주당의 숄츠 총리는 재무장관 출신으로 지난해 12월부터 녹색당, 자유민주당으로 구성된 3당 연립정부를 이끌고 있다. 44세의 정열적인 마크롱과 20세 더 많은 숄츠는 개인 간 ‘케미’가 그리 좋은 건 아니다. 국익을 위해서라면 두 사람이 더 협력할 수 있을 터이고, 반대로 개인적인 관계가 원만하다면 계속 대화를 하면서 두 나라 이익의 접점을 찾을 수 있을 터인데 그렇지 못하다.

여기에 두 나라의 역학 관계가 근본적으로 변화해왔다. 2010년대 들어 독일 경제가 승승장구하면서 그리스를 필두로 유로존 경제위기가 발발했다. 독일은 두둑한 주머니를 갖고 혹독한 구조조정을 골자로 그리스와 포르투갈 등에 구제금융을 제공했고 위기 극복에 앞장섰다. 물론 프랑스와 사전에 협의를 해 경제위기 극복책을 제시했지만 EU 최대의 경제대국 독일이 원하는 정책이 상당 부분 반영됐다. 당시 전문가들은 “독일은 강함을 숨기기 위해 프랑스가 필요하고, 프랑스는 약함을 숨기려 독일이 필요하다”는 진단을 내렸다.

독일·프랑스 비대칭적 역학관계 장기화

독일의 초대 아데나워 총리와 엘리제조약에 합의한 프랑스의 드골 대통령은 당시 “프랑스가 마부가 되어 독일이라는 말을 제어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런 발언은 채 20년이 지나지 않아 오류로 드러났다. 1980년대 내내 당시 유럽경제공동체(EEC) 정상회담에 참석했던 영국의 마거릿 대처 총리는 말과 마부 관계가 역전됐다고 회고록에 썼다. 독일이 역사적인 업보 때문에 전면에 나서지 않을 뿐 이미 막강한 경제력을 무기로 유럽통합을 선도해 나간다고 봤다. 1990년대 탈냉전 시기에 진입하면서 독일은 점차 역사적 업보를 이유로 무력 행사 자제를 더 이상 거부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럼에도 주변국들의 독일 일방주의 우려를 의식해 프랑스와 사전에 협의를 하여 유럽통합을 이끌어 왔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할 가능성이 큰 가운데 독일과 프랑스는 앞으로 우크라이나의 재건과 EU의 대러시아 공동외교안보 정책에서도 더 긴밀하게 공조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만 두 나라 역학 관계가 근본적으로 변했기 때문에 이를 면밀하게 조정하면서 단기적인 난제를 해결해 나가야 한다. 이게 유럽은 물론이고 국제사회에도 도움이 된다.

팟캐스트 ‘안쌤의 유로톡’ 제작·진행자, ‘셜록 홈즈 다시 읽기’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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