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프리즘] 이재용 시대와 삼성의 사회공헌

입력 2022-11-18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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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용 한국가이드스타 상임이사

경영의 신으로 불리었던 잭 웰치(1935~2020) GE 전 회장이 세계 지식포럼에서 “일류 기업과 이류 기업의 차이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받았다. 그는 “일류는 실수를 한 번만 하지만 이류는 두 번, 그 이상 한다”고 했다. 인상적인 답변이었다.

10월 27일 취임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취임 일성으로 “국민에게 사랑받는 기업을 만들겠다”고 했다. 그런데 포브스가 최근 발표한 ‘세계 최고의 직장’ 순위에서 삼성전자가 3년 연속 1위를 차지했다. 2~5위는 마이크로소프트, IBM, 알파벳(구글), 애플 순으로 모두 미국계 IT기업이다. 또 인터브랜드의 ‘글로벌 100대 브랜드’ 중 삼성전자는 올해 5위에 올랐다. 삼성전자의 브랜드 가치는 전년 대비 17% 늘어난 877억 달러에 달했다. 우리나라 기업으로는 현대자동차가 35위에 올랐다.

GM에 좋은 것이 미국에 좋다는 미국 발전 시대의 논리를 적어도 경제에 관한 한 삼성과 한국에 적용하면 딱 맞아 떨어진다. 지금 삼성 없는 한국 경제를 상상이나 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삼성과 한국의 관계를 사회에 대입하여 보면 고개를 갸웃하는 국민들도 많다. 일각의 반기업 정서로 치부해 버리기에는 그 뿌리가 의외로 깊다. 이 간격을 메우는 것이 삼성의 사회공헌 사업이다. 이재용 회장이 이 간격을 좁힐 수 있으면 그의 취임 일성이 실현되는 셈이다.

순수한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 차원에서 삼성의 사회공헌 사업이 두 가지 측면에서 보완되기를 바란다. 첫째는 자발성이다. 삼성의 사회공헌 역사는 길다. 1965년 10월 창업주 이병철 회장은 자신의 재산 180억 원을 셋으로 나눠 이 중 3분의 1을 기부해 삼성문화재단을 만들었다. 이듬해 사카린 밀수사건이 터졌으나 그는 구속은 면했다. 그리고 회장직에서 물러났지만 2년 후인 1968년 다시 회장에 올랐다.

2008년 4월 이건희 회장은 기자회견을 갖고 8000억 원을 헌납해 삼성 고른기회장학재단을 설립한다고 발표했다. 삼성만이 할 수 있는 통 큰 결단이었다. 그러나 시점이 문제였다. X파일 사건과 삼성 특검의 조사 직후였다. 어쨌든 이건희 회장은 구속을 면했고 대신 회장직에서 물러났다. 그러나 평창 올림픽 유치를 명분으로 사면 복권이 됐고 회장직에 복귀했다.

삼성의 사회공헌사에 변곡점이라고 할 두 개의 사건에서 똑같이 공익법인 설립, 사회공헌 사업이 등장하고 총수에 대한 사법 처리가 거론됐다. 회장직 사임, 복귀의 과정도 반복된다. 이쯤 되면 기업의 사회적 책임인지, 총수의 사법 처리와 관련된 해법인지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이래서 자발성이 의심받게 된다.

자발성과 동전의 양면 같지만 두 번째 과제는 진정성이다. 삼성의 사회공헌은 다각도에서 오랫동안 많은 자원과 두뇌를 동원해 지속적으로 추진됐다. 자원봉사 등 사회를 변화시킬 만한 테마도 발굴해 우리 사회에 정착시켰다. 그런데 많은 CSR 사업이 삼성의 사업과 연결되어 있다. 사회와의 접점은 엷어지고 사업과의 연결은 두터워졌다. 미르, K재단에 대한 수백억 원의 기부가 대표적이다.

사회와의 연계인 CSR 활동이 권력과의 거래와 청탁이라는 프레임에 걸려 버리면 그 진정성은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 이재용 부회장이 사법 처리에까지 다다른 것은 권력의 강요는 별개로 하더라도, 진정성이 결여된 사회공헌 사업이 단초였다.

이재용 회장은 신뢰받고 사랑받는 새로운 삼성을 약속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진정성과 자발성이 보완된 사회공헌 사업이 필수적이다. 총수의 필요가 아니라 사회의 필요에 의해, 거래와 청탁이 아니라 헌신과 봉사에 의해 사회공헌 사업이 진행되어야 한다.

이재용 회장의 다짐을 뒷받침하기 위한 한 가지 대안으로 사회공헌 플랫폼의 구축을 제안한다. 공익 플랫폼의 부재로 우리는 너무나 많은 갈등을 겪고 사회적 비용을 치러왔다.

이 공식을 타파하는 방법이 공익 플랫폼이다. 공동체의 발전을 위한 가치와 철학을 공유하고 국민들이 어떻게 어디에 기여하고 헌신할 수 있는지 찾아보게 하자는 것이다. 삼성의 힘으로 만들었지만 국민의 힘으로 굴러가게 된다. 삼성의 진정성과 자발성은 누구도 의심하지 않는다. 단기간에 완성된 모델은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지속적으로 보완되고 발전되면서 완성된 형태로 나아가게 된다.

삼성의 사회공헌은 잭 웰치 회장의 일류와 이류 개념에서 보면 실수를 여러 번 했다. 양은 몰라도 질로는 일류라 할 수 없다. 이재용 회장의 사랑받는 기업을 향한 다짐이 삼성에 좋은 것은 나라에 좋다는 명제가 실현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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