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은 지금] 광물민족주의와 유럽의 RMA(핵심원자재법)

입력 2022-11-30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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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정 동아대학교 국제전문대학원 교수

“리튬과 희토류는 곧 석유와 가스보다 더 중요해질 것이다. 희토류에 대한 우리의 수요는 2030년까지 5배로 증가할 것이다.” 이는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Ursula von der Leyen)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이 2020년 연설에서 핵심원자재법(RMA, The Critical Raw Materials Act)의 필요성을 제기하며 한 말이다.

EU는 2030년까지 녹색대륙, 디지털유럽 달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 두 가지 목표를 달성하려면 다양한 기술력이 집중되어야 한다. 필요한 원자재에 대해 안전하고 지속 가능한 접근 없이는 최초의 기후중립대륙(탄소배출 제로)이 되고자 하는 EU의 목표는 달성되기 어렵다. 또한 원자재의 원활한 공급이 되지 않으면 2030년까지 디지털 전환을 통해 삶의 환경이 고도화하기를 바라는 유럽의 꿈 또한 이루기 어렵다. EU는 이러한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RMA의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올해 9월 14일 RMA 추진계획을 발표하였으며, 9월 30일부터 11월 25일까지 이와 관련한 공개 의견수렴 절차를 거쳐 이제 곧 수렴된 내용을 발표할 예정이다.

EU는 이미 2008년 원자재 접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전략으로 ‘원자재 이니셔티브(Raw Materials Initiative)’를 채택한 바 있다. 당시에도 중국, 러시아, 인도,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주요 자원보유국이 자국의 자원 통제를 통해 시장질서의 왜곡을 야기하고 있었으며, 유럽 국가들은 EU 차원에서 이에 대응할 필요성을 인지하였다. 이 이니셔티브를 정책화하는 EU의 RMA 도입 행보는 최근 1~2년 사이 노골화된 광물민족주의의 확산과 연계되어 있다.

전기차 배터리의 핵심소재인 리튬은 중남미 국가들에 집중되어 있다. 소금물을 1년 반 동안 증발시키면, 이것이 금색의 리튬인산철이 되며, 정제·제련 과정을 거쳐 리튬이 된다. 증발 과정에서 소금밭이 온통 황금색이라, 이전에는 멀리서 볼 때 금밭 같지만 소금에 불과하다고 하였다. 그러나 현재의 리튬은 금과 같이 중요하게 다루어지고 있다. 전기차 확산 붐에 따라 칠레, 아르헨티나, 볼리비아 3국은 리튬 트라이앵글로 불리며 호황을 누려 왔으나, 이들은 이에 만족하지 않았다. 이들 리튬부국들은 광물 공급망 통제를 통해 자원안보체제를 구축하고자 자국 내 리튬 생산체제를 국영화하였으며, 멕시코를 포함해 중남미에 포진한 리튬생산국 간 리튬연합을 타진하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자원 강국인 인도네시아는 니켈의 원석 수출을 제한하는 조치를 취함으로써 세계 유수의 배터리 생산기업의 투자를 유치하는 성과를 얻어냈다. 9월 인도네시아 중부 술라웨이(Central Sulawesi)에 한국의 한화와 중국의 칭샨(Tsinshan), 거린메이(GEM), 닝더스다이(CATL)가 투자한 니켈 라테라이트 습식 제련소의 기공식이 열렸으며, 이외에도 니켈 제련을 해당국 내에서 해야 하는 다양한 기업들의 투자 문의가 쇄도하고 있다. 첨단산업의 비타민으로 불리는 희토류는 자원편재가 압도적인 광물이다. 중국은 전 세계 희토류 매장량의 86%를 점유하고 있으며, 이외에 호주 6%, 미국 2% 정도이다.

희귀한 흙(Rare earth)이란 의미에서 이름 지어진 희토류는 농축되지 않은 원소 형태로 지구 표면의 다양한 곳에 풍부하게 존재하지만, 광물로는 일정 지역에 집중되어 있는 것이다. 희토류는 전자제품 및 정보기술, 스마트폰 산업에 핵심 소재로 쓰인다. 현재 세계는 4차 산업혁명의 핵심기술을 이끄는 국가와 기업들이 광물을 무기화한 국가들에 포획되어 있는 듯하다.

이러한 광물민족주의에 유럽은 연대와 관계성을 통해 대응한다는 전략이다. EU는 핵심 원자재에 대해 글로벌 시장에서 공급에 관한 공정성, 수급에 관한 지속가능성, 환경에 관한 자원효율성을 추구하는 원칙을 내세우고 있다. 또한 부존자원이 편재된 광물공급망에서 힘의 균형을 이루기 위해 첫째, 어떤 원자재가 전략적으로 활용되고 있는지 정보를 공유할 것, 둘째, 유럽 내 원자재 기관의 유럽 네트워크를 구축할 것, 셋째, 보다 탄력적인 광물공급망 구축을 위해 광물의 정·제련 및 가공·재활용에 이르기까지 공정과정에 민간투자를 유치하며 전 과정에 대한 사회적 환경적 유럽표준을 보장할 것, 넷째, 강력하고 지속 가능하며 공정한 경쟁의 장을 보장하기 위해 광업 활동의 환경 및 사회적 성과 인증제도의 EU 통합표준을 체계화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핵심 광물을 수입에 의존하는 한국 또한 유럽의 상황과 다르지 않다. 최근 국내에서 EU의 RMA가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과 같이 한국을 배제하는 상황이 재연될 것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선제적으로 대응할 필요도 있으나, 유럽 담당자에 대한 전문가의 면담 결과 등을 종합하면 한국의 조바심이 유럽에서는 다소 의외라는 반응이다. 광물민족주의가 확산되는 현재, 광물취약국인 유럽과 한국은 연대해야 할 대상이다. 우리 정부는 광물부국과의 연계전략과 함께 광물취약국과의 네트워크 구축을 통해 자원안보 체제를 공고히 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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