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감 후] 20년의 땀, 가루쌀 탄생 비밀을 아시는가

입력 2022-12-05 05:00 수정 2022-12-07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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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11일 대통령실 기자실 앞에 약간의 간식이 도착했다. 수입밀 대체재로 떠오른 '가루쌀'로 만든 빵이었다. 가루쌀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던 당시엔 무심코 맛보고 '맛있네'라고 평가 정도 내뱉는게 전부였다.

하지만 그 뒤로 알게된 가루쌀의 탄생 배경은 엄청났다. 무려 20년을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이미 그때부터 전문가들은 가루쌀 품종 개발이 시급하다는 점을 공감했다. 보통 멥쌀의 경우 너무 딱딱해 빻을 때 물에 불려야 하는데 쌀 1kg에 사용되는 물은 무려 5톤에 달한다. 비용과 시간이 많이 들 뿐 아니라 쌀을 빻을수록 환경도 오염된다.

이에 쌀 품종을 연구하는 농촌진흥청은 2000년부터 분질(가루 성질) 돌연변이 유전자를 탐색하기 시작했다. 기존 쌀과 달리 물에 불리지 않고 바로 빻아 가루로 만들 수 있는 밀가루 대체재를 찾기 위해서다.

연구원들은 무려 7000개의 돌연변이 계통을 확보했고 이들을 하나하나 논에 심었다. 연구를 위해선 손으로 일일이 심고 수확하고, 왕겨를 벗겨 들여다봐야 한다. 이 과정이 있어야만 유전적으로 원하는 특징이 잘 나타나도록 개량하는 '고정'이 된다. 유전적 고정 작업이 정말 더디고 힘든 이유다. 그렇게 6년 걸렸다고 한다. 연구에 참여했던 한 농촌진흥청 관계자는 "주변에서 할일이 없냐 등 싫은 소리도 많이 들었다. 하지만 생각한 바가 있어서 밀어붙일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이처럼 지난한 과정을 통해 탄생한 품종이 쉽게 잘 빻아지는 ‘수원 542호’였다.

하지만 수원 542호가 병에 약해 농가에 보급하긴 힘들다는 사실을 발견하며 또 다른 난관에 부딪혔다. 수 년 간의 연구 끝에 병(곰팡이, 박테리아, 바이러스)에 강한 품종인 '조평'과 교배해 뽑아낸 품종이 지금의 '가루쌀(품종명 바로미2)'이다. 굉장히 희박한 확률로 발견이 된 이례적인 품종이었다. '바로'는 '바로 빻는다', '바로 사용한다' 등의 의미가 내포돼 있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연구원들은 수원 542, 바로미2에 대한 특허 출원과 등록도 모두 마쳤다. 지적재산권을 방어해 원천소재를 완벽하게 우리 것으로 만들어 도용 방지책을 마련한 셈이다. 시장 교란도 막을 수 있다. 이를테면 가루쌀이 인기 상품화가 돼 수입쌀과 섞어 속여 판매할 경우 유전자 검증을 하면 바로 적발할 수 있다. 그렇게 20년이 걸렸다.

가루쌀 탄생은 단순히 수입밀의 대체재가 아니다. 우선 쌀 소비량이 줄면서 활용 가치가 떨어진 논의 활용도를 높여줄 수 있다. 우리나라처럼 오랜기간 어마어마한 투자를 해 완벽하게 인프라를 갖춘 나라는 드물다. 쌀을 소비하지 않는다고 논을 없애버릴 경우 유사시 식량 안보 차원에서 다시 그 인프라를 갖추기도 어렵다. 또 가루쌀은 생육 기간이 짧아 다른 작물과 이모작도 가능하며 이는 향후 농가 소득도 높여줄 수 있다.

여기에 가루쌀 활성화를 위한 정책까지 받쳐줘 삼박자가 골고루 맞았다. 윤석열 정부 들어 선임된 정황근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농촌진흥청장 시절부터 가루쌀에 관심이 많았다. 정 장관이 내놓은 1호 정책 역시 '가루쌀 활성화'다. 대통령실도 관심이 많다. 윤석열 정부가 가루쌀 보급 정책에 주력하는 이유다.

이렇게까지 가루쌀 탄생 배경과 의미를 상세하게 설명한 이유가 있다. 정부가 내놓는 정책에 국민들은 늘 불신, 불만이 가득하기 마련인데 가루쌀은 보기 드문, 박수 치고 싶은 정책이기 때문이다. 국민이 잘 알지 못하는 20년 간의 노력과 땀을 알리고 싶어서다. 필자 역시 비하인드 가루쌀 탄생 스토리를 듣기 전까지는 관심이 없었다. 가루쌀이 활성화되고 더 나아가 부가가치를 높이고 경쟁력 있는 원료곡이 되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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