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배재규 대표 “ETF 승부처는 리테일…‘양강시대’ 돌파할 ‘가치 창출’ 핵심”

입력 2022-12-08 16:34 수정 2022-12-08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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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전 국내에 ETF 도입 선구자…‘ETF 아버지’로 불려
올해 2월 한국투자신탁운용 대표로 취임…“목표치 10%만 달성”
ETF 시장, 미래에셋·삼성 2强 체제…유입 고객 확보 관건
“내년 ETF 시장 키워드는 채권·해외…차별화 전략 세워야”

▲배재규 한국투자신탁운용 사장이 7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한국투자신탁운용 사장실에서 이투데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조현호 기자 hyunho@
▲배재규 한국투자신탁운용 사장이 7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한국투자신탁운용 사장실에서 이투데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조현호 기자 hyunho@

“결국 상장지수펀드(ETF)의 승부처는 리테일 시장입니다. 기관도 크지만 리테일 시장에 어필하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ETF의 아버지’라 불리는 배재규<사진> 한국투자신탁운용 대표는 내년 ETF의 승부처를 리테일 시장으로 꼽았다. 현재 ETF 시장은 미래에셋자산운용과 삼성자산운용의 ‘2강 체제’다. 두 회사의 시장 점유율은 80%에 이른다. 배 대표는 양강구도를 돌파할 전략으로 ‘가치 창출’을 내세웠다. 맹목적으로 ‘돈’만 쫓지 않고 ‘가치’를 추구한다면 한국투자신탁운용만의 경쟁력을 갖춰갈 수 있다는 것이다.

배 대표는 7일 서울 여의도 전국경제인연합회에 마련된 집무실에서 이투데이와 인터뷰를 갖고 “고객이 원하는 상품을 찾아주는 똑같은 전략을 모든 자산운용사가 쓴다. 현재는 ‘테마’에 머물고 있다. 같은 ‘테마’를 고민한다면 이기지 못한다. 그들을 넘어서 한국투자신탁운용만의 무언가를 찾아내는 게 우리의 숙제다”라고 말했다.

배 대표는 평소 ‘신뢰’를 ‘기대에 대한 확실성’으로 정의하며 그 가치를 중시한다. 고객의 ‘신뢰’를 쌓아야 레드오션에 접어든 ETF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는 의미다. 배 대표는 경영 목표의 초점을 선두 업체에 두지 않는다. ‘고객 가치’란 본질을 추구하다 보면 시장 내 지위도 높아질 것이란 얘기다.

지난 10월 브랜드 간판을 'ACE'로 바꿔 단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ETF 시장의 에이스가 되겠다는 포부와 함께 고객 전문가(A Client Expert)가 되겠다는 의지가 담긴 이름으로, 고객 가치를 중점에 두겠다는 일종의 선언이다.

배 대표는 한국투자신탁운용을 이끈 지난 10개월을 되돌아보며 처음 목표한 바의 10%밖에 이루지 못한 것 같다며 아쉬움을 표하기도 했다.

그는 “자산 시장 성장이 ETF, TDF(타깃데이트펀드), OCIO(외부위탁운용)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기 때문에 기존 인력을 그쪽으로 전환하고 새로 인력을 충원하는 게 중요하다고 봤다”며 “하지만 둘 다 쉽지 않았다. 경쟁적으로 바뀐 시장에서 어떻게 우리 몫을 찾아가야 하는지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배 대표는 “궁극적으로 우리가 성공시켜야 하는 모습은 채널이 없이도 좋은 상품을 만드는 것”이라며 “한투운용 상품에 투자하는 투자자들의 자산을 증식하는 것, 고객 가치를 늘려주는 게 목표다. 이 부분을 제대로 하다 보면 선두 주자들보다 앞에 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기 위해선 시간이 필요하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배 대표는 “투자에서 제일 중요한 건 시간이다. 투자해서 성과가 나려면 일주일, 한 달로는 짧다”며 “철저하게 길게 보고 자산 배분을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앞으로 자산운용 시장의 성장 재원이 퇴직연금에서 나오는 만큼 장기적으로는 여러 자산에 투자해 수익을 내는 포트폴리오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배 대표는 앞으로 ETF가 투자 환경을 이끌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우리나라 ETF 시장은 항상 4~5년 정도의 시차를 두고 미국을 따라가는 경향을 보였다”며 “미국과 한국의 ETF 시장 크기를 단순 비교하면 미국이 한국의 4배 정도다. 즉 4배나 더 성장할 수 있다는 말”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ETF는 본차이나(도자기) 그릇, 펀드는 놋쇠 그릇”이라고 비유했다. 간편하게 분산 투자할 수 있는 ETF의 장점을 사용과 관리가 편한 본차이나 그릇에 빗댄 것이다. 배 대표는 “아직 놋쇠 그릇을 쓰는 식당이 남아 있는 것처럼 펀드가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10년, 20년 넘게 장기 투자를 하게 되면 누적되는 비용이 커져서 보수가 저렴한 ETF로 갈 수밖에 없다”고 했다.

한국투자신탁운용은 미국 대표 배당주 ETF ‘SCHD’의 최초 국내 판매에 이어 ‘ACE 미국고배당S&P ETF’의 총보수를 SCHD와 똑같은 수준의 연 0.06%로 인하했다. 총보수 수준을 ‘제로(0%)’에 가깝게 책정한 것이다.

배 대표는 지금은 ETF 투자가 ‘단품’ 투자에 그치고 있지만 장기적인 관점으로 보면 자산 배분의 수단으로 더 많이 활용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투자 비용이 낮고, 주식처럼 쉽게 매매할 뿐만 아니라 채권, 부동산, 원자재 등 다양한 자산에 분산 투자해 손실을 헤지(회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배 대표는 국내 ETF 시장의 입지전적인 인물로 꼽힌다. 2002년 삼성자산운용에서 근무하면서 우리나라에 ETF라는 투자 수단을 처음 소개한 게 바로 배 대표다. 그때만 해도 ETF 관련 규정이 없었다.

그는 “기획재정부와 거래소를 찾아가서 ETF에 대해 설명했다. 그러다 일본이 먼저 ETF를 도입하고, 이후 정책당국과 태스크포스(TF)팀을 짜서 ETF를 도입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들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올해로 20주년을 맞은 국내 ETF 시장은 순자산총액 80조 원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국내 ETF 시장은 2002년 10월 14일에 개설됐다. 당시 종목은 KODEX200(삼성투신), KOSEF200(LG투신), KODEX50(한국투신), KOSEF50(제일투신) 4개뿐이었다. 순자산총액과 거래대금 규모도 각각 3552억 원, 343억 원에 불과했다. 20년이 흐른 현재 올해(9월 27일 기준) 종목수는 622개, 순자산총액(76조6000억 원)과 일평균거래대금(2조8000억 원)의 거래 단위는 수십조 원, 수조 원에 이른다.

해외 ETF 시장(올해 8월 말 기준)에서도 국내 시장의 영향력도 커졌다. 상장종목수는 미국, 캐나다, 중국 등에 이어 6위를, 순자산총액은 미국, 영국, 일본, 독일 등에 이어 12위를 각각 기록하고 있다.

동시에 배 대표는 자산운용업계가 갈수록 위축되고 있는 점을 우려했다. 그는 “투자자의 이익을 가장 대변해야 할 곳은 은행도 증권사도 아닌 자산운용사”라며 “자산운용의 영역을 지켜주지 않으면 운용사가 돈을 못 벌고, 투자를 제대로 못 한다. 그러면 결국 투자자들이 손해를 본다”고 했다.

이어 “자산운용사의 영역을 지켜주는 건 운용사의 수익을 위해서가 아니다. 결국 운용사가 어느 정도 이익을 내고 투자를 해서 고객 가치를 추구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금처럼 경쟁이 매우 치열한 상황 속에서도 투자자의 돈을 벌기 위한 방법을 내세우다 보면 다른 운용사들도 따라올 거고, 결국 우리나라 전체 투자자들의 가치가 올라갈 수 있다는 얘기다.

배 대표는 “20년 전 ETF라는 유용한 투자 수단을 소개했고, 시장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며 “이제는 진짜로 투자자들이 부를 늘릴 수 있는 투자 문화를 만들어 놓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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