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도 유럽도 영국도 ‘매파’...‘피벗’의 조건

입력 2022-12-16 15:04 수정 2022-12-16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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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이 14일(현지시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워싱턴D.C./로이터연합뉴스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이 14일(현지시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워싱턴D.C./로이터연합뉴스
전 세계 주요국 금융당국이 ‘매파’ 본색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에 이어 유럽중앙은행(ECB)과 영란은행(BOE)은 금리인상 속도를 내리면서도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물가와의 전쟁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며 추가 금리인상을 예고했다. 경기 후퇴 조짐에도 갈 길을 가겠다는 ‘매파’들이 ‘피벗(정책기조 전환)’에 나서는 조건을 무엇일까.

연준과 ECB, BOE가 올해 마지막 통화정책 회의에서 줄줄이 금리를 0.5%포인트 인상했다. 앞서 금리를 잇달아 0.75%포인트씩 올리며 긴축 고삐를 바짝 당겼다가 한 템포 쉬어간 것이다. 3월 제로금리를 버리고 금리인상에 착수한 연준은 9개월 만에 4.25~4.5%로 끌어올렸다. ECB는 7월 금리인상에 돌입, 세 번의 빅스텝과 두 번의 자이언트스텝을 밟으며 마이너스(-)0.5%이던 금리를 2.5%까지 인상했다. BOE도 1년 새 9번의 금리인상을 통해 기준금리를 14년래 최고치인 3.5%로 올려놨다.

주요국 금융당국들은 인상 속도를 조절하면서도 시장이 듣고 싶어 하는 이야기는 피해갔다. 이번 결정이 정책 기조 변화를 의미하는 게 아님을 분명히 했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ECB 총재는 “방향을 바꾸는 게 아니다”라며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앞서 제롬 파월 연준 의장도 전날 “아직 갈 길이 남았다”며 금리인하 가능성에 선을 그었다. 금융당국 수장들이 ‘매파’ 기조를 유지하면서 내년 최종금리 전망치는 줄줄이 높아졌다. 미국 기준금리는 5%를 넘을 가능성이 크고, 영국도 4.5%까지 오를 것으로 전망된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유럽중앙은행(ECB) 총재가 지난달 28일 경제통화위원회에 참석했다. 브뤼셀(벨기에)/로이터연합뉴스
▲크리스틴 라가르드 유럽중앙은행(ECB) 총재가 지난달 28일 경제통화위원회에 참석했다. 브뤼셀(벨기에)/로이터연합뉴스
경기침체 우려도 이들의 의지를 꺾지 못했다. 영국은 이미 경기침체에 진입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으며 ‘잃어버린 10년’에 빠져들 가능성도 제기된다. 주요 7개국(G7) 가운데 팬데믹에서 완전히 회복되지 못한 유일한 국가로 꼽힌다. 유럽도 경기침체 그림자가 짙다. 올 4분기와 내년 1분기 성장이 위축돼 기술적 경기침체에 빠질 가능성이 고개를 든다. 상대적으로 선방하고 있는 미국 경제도 아슬아슬하다. 미국 상무부는 11월 소매판매가 전월보다 0.6% 감소했다고 발표했다. 지난해 12월(-2.0%) 이후 11개월 만에 최대폭 감소로, 미국 경제를 떠받치는 소비가 주춤해졌다는 의미다.

경기둔화 조짐에도 금융당국들이 기조 전환을 망설이는 이유는 물가 걱정 때문이다. 최근 인플레이션 지표는 정점설에 힘을 실었지만 불안함을 잠재우지 못했다. 라가르드 총재는 “인플레이션이 매우 높게 유지되고 있다”며 “상당히 오래 목표치를 웃돌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전날 파월 의장도 물가가 계속 더 오를 위험이 있다며 잡혔다는 확신이 들기 전까지 금리인하는 없다고 못 박았다.

미국의 소비자물가지수(CPI)는 6월 9.1%, 7월 8.5%, 8월 8.3%, 9월 8.2%, 10월 7.7%, 11월 7.1%로 둔화했다. 휘발유를 포함한 원자재 가격 하락이 물가 상승세 둔화를 견인했다. 그러나 근원 CPI를 보면 자신감이 떨어진다. 6월 5.9%에서 9월 6.6%로 오른 근원 CPI는 10월 6.3%, 11월 6.0%로 소폭 둔화했지만 안심하기 이르다. 특히 근원 CPI 주요 항목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근원 CPI의 40%를 차지할 만큼 비중이 큰 주거비용은 내년에나 안정을 찾을 것으로 전망된다. 케이스 웨이드 슈로더자산운용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주택시장 침체로 주거비용 상승세가 꺾이는 내년 말쯤 근원 CPI가 4% 아래로 떨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근원 CPI를 움직이는 또 다른 핵심 요인 중 하나는 바로 고용이다. 미국은 올해 경기둔화에도 고용시장이 강세를 보이고 있다. 임금은 계속 상승 중이고 일자리가 소폭 줄었지만 여전히 구직자보다 두 배가량 많다. 실업청구 건수는 오히려 감소했다. 미 노동부는 지난주(12월 4∼10일) 신규 실업수당 청구 건수가 전주보다 2만 건 급감한 21만1000건으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미국 근로자들의 일터 복귀는 여전히 더딘 상태다. 이들이 고용시장에 다시 참여할 경우 임금 인상, 비용 증가, 물가 상승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이를 이유로 웨이드 이코노미스트는 고용시장 약화, 근원 CPI의 뚜렷한 하향세를 연준의 ‘피벗’ 요건으로 꼽았다.

▲미국 매사추세츠주 서머빌에 위치한 장비 렌탈 업체에 구인 광고가 붙어 있다. 서머빌(미국)/로이터연합뉴스
▲미국 매사추세츠주 서머빌에 위치한 장비 렌탈 업체에 구인 광고가 붙어 있다. 서머빌(미국)/로이터연합뉴스
유럽 물가도 10월 10.6%에서 11월 10%로, 영국 역시 11.1%에서 10.7%로 상승 폭이 둔화했지만 여전히 두 자릿 수에 머물고 있는 데다 불안 요인도 크다. 유럽과 영국은 러시아 전쟁으로 악화한 에너지 위기가 현재진행형이다. 전쟁을 유발한 러시아를 제재하고 대러 에너지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추진한 조치들의 효력은 이제 슬슬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 EU는 러시아 원유 가격 상한제를 5일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올해는 급한 대로 에너지 저장고의 90%까지 채워 위기를 면하겠지만 에너지 부족 경고가 잇따르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 파티 비롤 사무총장은 “유럽이 내년 천연가스 추가 부족에 시달릴 수 있다”고 경고했다. ECB는 물가 평균치를 2024년 3.4%, 2025년 2.3%로 각각 전망했다. 금융당국의 물가 목표치인 2%을 훨씬 웃도는 수치로, 에너지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물가를 잡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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