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크래커] ‘재벌집 막내아들’ 순양家 승계 구도 뒤흔든 금산분리 뭐길래

입력 2022-12-19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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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JTBC ‘재벌집 막내아들
▲출처= JTBC ‘재벌집 막내아들

최신 회차 시청률이 24.9%에 달하는 ‘재벌집 막내아들’의 승계권 싸움이 절정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치열한 전쟁의 중심에 놓인 문제는 ‘금산분리 완화법’입니다.

순양 가문 사람들은 순양 금융 지주 사장 자리를 둘러싸고 본격적인 다툼을 벌이는데요. 주인공 도준(송중기 역) 역시 후계자 싸움에 가세합니다.

도준은 승계권을 위해 진양철 회장에 관한 진실을 폭로합니다. 자신을 아끼던 할아버지에 대한 여론을 한순간에 바닥으로 추락시키죠. 천하의 도준마저 분투해야 했던 금산분리와 금융 지주를 둘러싼 전쟁. 금산분리가 뭐길래 그렇게 치열했던 걸까요?

금융과 산업을 분리 하는 법…정권마다 강화↔완화 오락가락

금산분리란 금융 자본과 산업 자본의 분리를 뜻합니다. 금융 자본을 소유한 은행과 산업 자본을 소유한 기업 간의 결합을 금지해 ‘은산분리’로 불리기도 하죠. 한국은행은 ‘산업자본이 은행 지분을 일정 한도 이상 소유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금산분리 정책이 시작된 건 1961년입니다. 재벌에 의한 금융자원 독점을 막기 위해 박정희 정부는 임시조치법을 공포했죠. 정부는 재벌 소유 시중은행 주식을 모두 정부에 귀속시키는 사실상 은행 국유화를 단행했습니다.

이후 1982년 국내 은행법으로 은행 지분에 대한 산업자본의 보유 한도를 제한하는 금산분리법이 공식적으로 도입됐습니다. 1981년 국유화된 은행을 민영화하는 과정에서 대기업의 은행 지분 보유 한도는 8%로 제한됩니다. 1994년에는 산업 자본의 은행 지분 보유 한도를 4%로 강화한 후, 1997년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가 발생해 산업자본의 금융지배에 따른 폐해가 얼마나 심각한지 드러납니다. 이에 재벌 개혁에 나선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는 지분 보유 한도 4% 기조를 유지하죠. ‘재벌집 막내아들’ 속 순양 가문 사람들이 지주 회사의 설립을 두고 다투던 시점도 이때입니다.

이명박 정부 들어 이 비율은 9%로 완화됐지만, 박근혜 정부 들어 은행 지분 보유 한도를 다시 4%로 강화했습니다. 2013년 동양그룹 자금난 사태가 발발해 금산분리 강화 정책이 지지받았기 때문입니다. 동양그룹 사태란 자금난을 겪던 동양그룹이 2013년 동양증권을 통해 4만여 명의 개인투자자들에게 고금리 회사채와 기업어음(CP)을 무차별 발행했던 사건입니다. 동양그룹은 만기가 도래한 회사채와 CP를 해결하지 못하고 기업회생을 신청했고, 개인 투자자들은 고스란히 피해를 떠안아야 했습니다. 이후 현재까지 비금융주력자(산업 자본)는 은행 주식의 4%를 초과해 보유할 수 없도록 하는 규제 방안이 유지 중입니다.

▲(연합뉴스)
▲(연합뉴스)

삼성은행·LG은행이 없고, 카카오 김범수가 고발당한 이유

여태껏 금산분리로 은행과 기업의 결합을 금지해 온 까닭은 기업이 은행을 사금고화(化)할 우려가 크기 때문입니다. 이는 금융 산업의 BIS 자기자본비율이 다른 산업에 비해 낮기 때문인데요. 이때 BIS 자기자본비율이란 국제결제은행(BIS)가 정한 기업의 총자산 중 자기 자산의 비율을 말합니다. 은행은 고객의 예·적금 등을 통해 실제 자산보다 많은 돈을 운용해 BIS 자기자본비율이 상대적으로 낮습니다.

이런 은행의 특성상 대기업이 적은 지분으로도 금융 기업을 지배하기 쉽습니다. 기업이 은행을 지배하면, 은행을 계열사 투자, 기업 승계 등 필요에 따라 돈을 꺼내쓰는 ‘기업 전용 금고’로 이용할 가능성이 커집니다. 이때 자산 운용에 문제가 생기면 피해는 고객이 감당하게 되죠. 경제 체제에 은행이 미치는 영향이 큰 만큼 한국 경제 전반에 타격을 줄 수도 있습니다.

가치 충돌의 문제도 있습니다. 금융 산업을 경영할 때는 일반 산업보다 안정성을 추구해야 합니다. 하지만 일반 산업은 이익 극대화를 최고 목표로 삼고 어느 정도 위험을 부담하는 것을 기본으로 삼습니다.

즉, 산업과 은행이 추구하는 가치가 완전히 다른 거죠. 은행이 산업 자본 논리에 따라 이익 추구를 우선시할 경우의 피해는 역시 온 사회가 함께 감당하게 됩니다. 특정 기업이 은행을 소유하면 은행의 제 역할을 못할 것이라는 우려도 큽니다. 은행은 기업에 대한 엄격한 평가를 통해 대출을 허가하고 자금을 분배해왔는데, 산업과 은행이 결합할 경우 공정한 평가가 이뤄지지 못한다는 것이죠. 1997년 IMF 외환위기는 이러한 평가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해 건전성이 훼손된 결과로 지목됩니다.

최근 공정거래위원회가 카카오 소속 케이큐브홀딩스(KCH) 법인을 검찰에 고발한 것도 이 때문입니다. KCH는 김범수 카카오 미래이닛티브센터장이 지분을 100% 보유한 개인 회사인데요. 공정위 판단에 따르면 KCH는 카카오 주주총회 등에서 의결권을 행사해서는 안 됩니다. 2020년과 지난해 벌어들인 전체 수익 중 95% 이상이 금융 소득이어서 금산분리 적용 대상에 포함되기 때문이죠. 하지만 KCH는 2년간 카카오 정기 주주총회와 카카오게임즈 주주총회에서 총 25차례 의결권을 행사한 것이 공정위 고발의 이유입니다.

▲김주현 금융위원장(뉴시스)
▲김주현 금융위원장(뉴시스)

윤석열 정부, 금산분리 시동…KB알뜰폰은 ‘OK’, 삼성은행은 ‘NO’

최근 윤석열 정부가 금융규제 완화를 얘기해 금산분리 규제 완화가 다시 테이블 위에 올랐습니다. 올해 7월 임명된 김주현 신임 금융위원장은 “산업구조의 변화를 고려하면 과거 ‘금산분리 원칙’도 재편을 검토할 시점”이라며 적극적인 개혁 의지를 내비쳤습니다.

이는 빅테크 기업들의 핀테크 사업이 활발해지는 가운데, 은행이 발 디딜 곳이 지나치게 좁다는 불만이 있어 왔기 때문입니다. 2019년 ‘인터넷전문은행특별법’이 시행되며 빅테크 기업은 비교적 자유롭게 금융업에 진출해왔죠. 카카오뱅크와 토스 등 인터넷 전문은행은 그 사례입니다. 반면 KB 국민은행과 신한은행이 각각 알뜰폰 사업과 배달업 사업을 진행 중이지만 정부의 별도 심사를 2년마다 거쳐야 하는 등 불편함이 큽니다.

이에 김 금융위원장은 7월 금융규제혁신회의 모두발언에서 “금융 규제 혁신의 목표는 글로벌 금융시장계의 방탄소년단(BTS)이 출현하도록 새로운 장을 조성하는 것”이라고 말한 데 이어, 지난달 14일 열린 금융위원회의 제4차 금융규제혁신회의에서는 빅블러(BigBlur) 시대를 맞이해 금산분리에 대한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이에 이르면 내년 초 은행이 비금융 사업에 진출하는 길이 열릴 전망입니다.

금융권 측에서는 금산분리 완화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습니다. 산업과 금융의 결합으로 인한 시너지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 가장 대표적인 이유입니다. 은행은 각종 생활 서비스 사업에 뛰어들 기대를 하고 있습니다. 금산분리를 통해 한국에서도 글로벌 투자은행(IB)를 육성할 수 있겠다는 전망도 나옵니다.

규제 완화의 구체적인 형태는 논의 중입니다. 현재는 금산분리를 원칙적으로 규제하되 일부만 허용하는 포지티브(Postivie) 규제 방식을 취하고 있는데요. △포지티브 규제 기조를 유지하며 허용 사안을 늘려주는 방식 △원칙적으로 모든 금융과 산업 자본의 결합을 허용하되 일부만 금지하는 네거티브(Negative) 규제 방식 △포지티브와 네거티브 규제를 혼합한 방식 등 다양한 논의가 이뤄지고 있죠. 다만 비금융자본, 즉 산업 자본의 은행 진출 완화는 검토하지 않겠다고 밝혀 당분간 ‘삼성은행’이 탄생할 가능성은 없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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