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2월부터 적용
가격 급등 막아 에너지 안정적 공급 보장 기대
장외거래 적용 안돼 불투명 거래 늘어날 수도
19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EU 에너지장관이사회는 이날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회의에서 가스 가격 상한선을 유럽 가스 가격지표인 네덜란드 TTF 선물시장 기준인 메가와트시(㎿h)당 180유로(약 25만 원)로 합의했다.
일명 ‘가스 시장 조정 메커니즘’인 가격 상한제는 내년 2월 15일부터 적용되고 두 가지 조건이 동시에 충족되면 발동된다. 가스 선물가격이 180유로를 넘고, 글로벌 액화천연가스(LNG)보다 35유로 비싼 상황이 3일간 지속될 경우다. 카드리 심슨 EU 에너지 정책 담당 집행위원은 “전쟁 ‘프리미엄’을 제거하는 게 목표”라며 “올해보다 더 힘들 것으로 보이는 내년 에너지 재고 저장을 위해 더 잘 준비할 것”이라고 의의를 평가했다.
상한제 발동 시 최소 20일간 이어지면서 가격 급등을 억제한다. 마지막 3일간 180유로 이하로 가격이 유지되면 발동이 해제되는 방식이다. 180유로는 8월 가스 가격이 정점을 찍었을 당시 ㎿h당 345유로에 비해 한참 낮다. 상한선이 올해 초 시작됐다면 8월과 9월 40일 이상 적용됐을 것으로 추산된다.
다만 이날 천연가스 가격인 약 109유로보다는 다소 높은 수준이다. 독일, 덴마크 등 가격 상한제에 반대했던 국가들의 입장을 고려한 것이다. 회원국 간 이견으로 수개월째 난항을 거듭한 가격 상한제 합의는 EU 27개 회원국 만장일치 동의 대신 ‘가중다수결제’ 투표로 선회하면서 매듭을 지었다. 가중다수결제는 27개 회원국 중 55%에 해당하는 15개국 이상이 찬성하고, 찬성한 국가들의 전체 인구가 EU의 65% 이상일 경우 표결 결과가 인정된다. 독일은 막판 찬성으로 돌아섰고 오스트리아와 네덜란드는 결국 기권, 헝가리는 반대했다. 마테우시 모라비에츠키 폴란드총리는 “러시아와 가스프롬의 시장 조작을 끝낼 수 있게 됐다”고 평가했다.
상한선 설정은 가격 급등을 막아 에너지의 안정적인 공급을 보장하는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반론도 여전하다. 가스 가격이 평소보다 여전히 네 배 이상 높은 상황에서 상한선은 임시방편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상한선이 장외거래에 적용되지 않는다는 점도 우려를 키운다. 브로커가 기승을 부리는 불투명한 시장에서 가스 거래가 증가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오로라에너지리서치의 에너지 시장 애널리스트인 제이콥 맨델은 “장외 거래 증가로 예전처럼 소비자 가격이 또다시 증가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에너지 시장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이 영구적으로 고착화할 수도 있다. 유럽에너지거래소협회는 “시장 참여자들이 개입을 피해 장외 시장으로 이동하면 거래소 물량과 수익이 줄어 현물 가격 상승을 부채질한다”고 경고했다.
유럽도 역풍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다. 상한제 시행으로 부작용이 더 클 경우 즉각 상한제를 푼다는 내용을 합의안에 넣었다. 에너지 공급, 재정 안정성 등 위험이 나타날 경우 즉각 시행을 중단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시장 상황을 면밀히 모니터링한다는 계획이지만 브뤼셀 싱크탱크 브뤼겔의 시몬 타글리아피에르타 선임연구원은 “최종 영향을 평가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며 “가격 상한제가 특효약이 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