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실 풍경] 로봇이 나타났어요.

입력 2022-12-21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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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관석 보령 신제일병원장

응급실로 헐레벌떡 뛰어들어 온 엄마의 품엔 사내아이가 안겨 있었다. 거친 숨을 몰아쉬던 엄마는 아이가 방금 로봇을 삼켰다고 말했다.

“네! 로봇이라고요?”

나를 비롯한 응급실 직원들의 눈이 동그래졌다. 주위를 둘러보니 다들 손가락으로 로봇의 크기를 가늠해 보고 있었다. 엄마는 그런 우리 모습을 빤히 쳐다보더니 고개를 심하게 좌우로 흔들었다. 그러더니 주머니 안에서 새끼손톱 크기의 레고 제품 로봇 하나를 꺼내 놓았다.

아이들의 안전사고 중 삼킴 사고는 가장 빈번히 발생하는 사고인데, 행정안전부의 통계자료에 의하면 2017년부터 2019년까지 2년간 약 2073건 정도가 발생했다고 보고되고 있다. 다행인 점은 요즘 완구류들은 삼킴 사고에 대비해 안전하게 제작된 제품이 많다는 것이다. 하지만 규격화된 상품이 아닌 비비탄 총알, 수은건전지, 뾰족한 조립완구류들은 삼켰을 경우 위와 장에 천공 등을 포함한 심각한 합병증을 초래할 수 있기에 특히 조심시켜야 하고, 만일 이런 물건을 삼켰을 때는 내시경을 통해 꺼내야 하기에 빨리 병원을 방문해야 한다.

다행히 삼킨 것이 해(害)가 없는 것으로 밝혀져 일단 지켜보기로 했지만, 아이가 복통을 호소하고 엄마가 입원을 강력히 원하여 병실에서 관찰하기로 했다.

“아기가 변을 본 후에 물을 내리지 말고 로봇이 나왔는지 꼭 확인해 주세요. 아이들의 경우 드물게 삼킨 물건이 소장의 좁은 부위에 걸려 나오지 않을 수 있는데, 그땐 합병증이 생기기도 해 수술이 필요할 수도 있으니까요!”

그리고 다른 주의사항과 함께 엄마에게 아기의 똥을 잘 살펴보라고 당부했다. 그후 아기는 잘 먹고 대변도 예쁘게 봤지만, 그럴 때마다 엄마의 얼굴엔 초조한 빛이 사라지질 않았다.

입원한 지 5일 정도 지났을 무렵이었다. 진료실로 갑자기 아기 엄마가 눈물을 글썽이며 뛰어들어 왔다.

“선생님 로봇이 나왔어요. 로봇이….”

그녀의 손 위엔 우리가 애타게 기다리던 로봇이 들려 있었다. 반가운 나머지 낚아채듯 받아든 로봇, 노란 덧옷을 입은 그 로봇에서는 구수한 냄새까지 피어올랐지만 그게 무슨 대수랴, 애타게 고대하던 로봇이 나타났는데.

우린 마치 로봇을 처음 보는 사람들처럼 향기 나는 그 로봇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박관석 보령 신제일병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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