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준의 일, 삶, 배움] 자립준비청년과 사회적 경제 3법

입력 2022-12-22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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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직업능력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참여소득’ 저자

존 롤스(John Rawls)는 ‘정의론’에서 공정으로서의 정의의 핵심은 차등원칙에 의거하여 권리, 자유, 기회 및 소득과 재산, 자존감과 같은 기초재화(또는 기본적 가치, primary goods)를 분배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같은 대학 경제학과 교수로 있는 아마르티아 센(Amartya Sen)은 강연회나 저술을 통해 선배 철학자에 대한 존경심과 공로를 치하하면서도 기초재화 분배가 개인의 행복과 자유 확대, 그리고 삶의 질을 높일 수 없다고 반박한다. 개인이 처한 역량과 환경요인으로 인해 기초재화를 활용하여 성과를 보이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센은 개인에게 무엇을 줄 것인가보다 무엇을 할 수 있게 만드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본다. 무언가 할 수 있고 무언가 될 수 있는 잠재역량(capability)의 강화가 어떠한 지원 정책보다 우선시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2021년 7월 보건복지부에서 발표한 자립준비청년(보호종료아동) 지원 강화 방안 보도자료에 따르면 자립준비청년과 일반 청년의 대학진학률은 각각 62.8%와 70.4%로 7.6%포인트의 차이를 보이지만, 실업률은 각각 16.3%와 8.9%로 두 배 이상 차이를 보여주고 있다. 심지어 자살에 대한 생각 비율은 50% 대 16.3%로 3배 이상 차이를 보인다.

이들을 위한 지원책은 자립지원 전담기관 인력 확충, 자립정착금 지원 강화, 진로, 진학 취업 지원, 심리 정서 지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올해 8월 말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정책도 지난해와 별 차이가 없다. 이들 정책의 공통점은 롤스의 기초재화 재분배 정책의 일환이라는 점이다. 우리 사회에서 이 정도의 사회적 지원 확대 또한 크게 칭찬하고 고무적인 현상이라고 말 할 수 있다. 그러나 필자가 주장하고 싶은 것은 이들에게 일반 취약계층 지원과 차별적이지 못한 지원 프로그램만으로는 롤스가 기초재화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자존감을 향상시키는 데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20세 전후 자립준비청년들을 위한 대학 지원이나 취업 지원은 단 한 번에 그치기 때문에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크며, 부모 없이 자랐다는 사회적 편견, 자립준비청년이라는 무시는 이들의 자존감을 높일 수 없는 이유들이다. 정작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그들이 일반 가정에서 자란 또래 아이들과 같은 생각과 판단, 결정을 하고 있다는 믿음을 가지게 함으로써 자신감과 자존감을 향상시키는 것이다. 이들 스스로 결정한 것이 타인과 결코 다르지 않으며 실패를 하더라도 누구나 그럴 수 있는 실패이지 자기가 못나거나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는 생각을 갖게 하는 일이다.

사회적 편견과 무시와 싸우는 자립준비청년, 하나의 직무 완성을 위해 일반인보다도 무수한 반복 훈련을 해야 하는 경계성 장애인, 집 밖으로 나오는 것 자체가 삶의 목적인 은둔형 외톨이, 치매, 장애인들을 대상으로 대학 진학 지원이나 직업훈련, 상담 같은 기초재화만으로는 센이 말하는 것처럼 그들이 처한 환경과 역량의 한계로 인해 그들의 삶의 변화를 가져오는 데 역부족이다.

그렇다면 대안은 무엇일까? 필자의 견해로는 사회적 기업 같은 지역 내 사회적 경제 단체가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인간의 활동 중 다양한 경험을 쌓게 할 수 있는 것이 경제적 활동이기에 경제적 이윤과 상관만 없다면 사회적 기업에서의 실천적 경험은 자신의 자존감을 높이고, 실패도 성공도 다 정상적인 삶의 과정임을 느끼게 하는 훌륭한 교육의 장이자 실천의 공간이 될 수 있다. 이들 스스로 기획하고, 만들고, 판매하고, 결산하는 과정을 반복 경험하게 함으로써 말이다. 그러나 현실은 여전히 사회적 기업을 이윤 영역의 일자리만으로 바라보고 있다. 최근 사회적 경제 3법을 둘러싸고 여당과 야당도 오로지 경제적 이해관계에만 몰두하고 있지, 사람의 가치를 높일 수 있는 대안으로서의 사회적 기업 역할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는 것은 아쉬운 대목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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