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감 후] 2022년 대한민국의 ‘재벌집 막내아들’

입력 2022-12-26 05:00 수정 2023-08-23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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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즐겨 보던 ‘재벌집 막내아들’이 끝났다. 내가 이 드라마에 열광한 건 물론 재미있어서다. 회귀라는 비현실적인 설정 아래 배우들의 탄탄한 연기력이 이목을 사로잡았다.

하지만 저녁 10시만 돼도 꾸벅꾸벅 졸던 내가 마지막 회까지 본방을 사수한 진짜 이유는 재벌을 그린 서사 방식이 남달랐기 때문이다.

과거 재벌 물에서 재벌들은 탐욕스러운 자본가였다. 돈을 주는 대가로 노동자를 사정없이 때리는 영화 ‘베테랑’ 속 조태오(유아인)처럼 말이다. 나에게 있어 재벌의 의미도 다르지 않았다.

그런데 ‘재벌집 막내아들’ 속 진양철(이성민)은 밑바닥부터 차근차근 성공한 입지전적 인물이다. 통찰력 있는 식견으로 순양을 키우고, 강한 책임감으로 가족을 이끈다. 냉철하고 권위주의적인 자본가지만 막내 손자에게 기회를 주기 위해 신념처럼 여긴 장자 승계 원칙을 깨는 유연한 모습도 보인다.

그래서 드라마를 보는 내내 진도준(송중기)의 복수를 응원하면서도 진양철에게 마음이 쓰였다. 그들의 성취를 인정하는 다른 시선이 생긴 것이다. 이재용 회장이 출국길에 입은 패딩 조끼가 하루 만에 완판되고,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이 SNS ‘인싸(인사이더)’로 자리잡은 것도 이제야 한편 이해가 간다.

물론 진양철이 말하는 ‘머슴’으로서 아쉬운 부분은 있다. 진도준의 복수 방식이다. 극의 중반부 사업 파트너 오세현(박혁권)은 진도준에게 “그 모든 게 태어날 때부터 너에게 주어진 특권이라는 생각 정말 단 한 번도 안 해본 거야?”라고 묻는다.

그러자 진도준은 “북쪽에서 김씨 부자가 권력을 세습하는 건 그렇게들 못 참아 하면서 남쪽에서 재벌 3세가 경영권을 세습하는 건 왜 다들 당연하게 여길까요? 어차피 자격이 검증되지 않았다는 건 마찬가지 아닌가요?”라고 답한다.

대물림된 부(富)와 권력이 불공정한 사회를 만든다는 문제 의식이다. 그런데 그게 끝이다. 진도준은 체제를 바꾸려 하지 않는다. 그저 부동산 개발과 주식 투자로 부를 쌓아 순양을 사는데 만 올인한다.

자신을 죽인 것이 순양을 넘어선 체제라는 걸 깨닫지 못하고 그저 돈만 버는 자본가의 성공 방식만 답습한다.

물론 최근의 재벌들은 지배 구조를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추고 실력으로 경영 능력을 입증한다. 하지만 일부 재벌 2~3세들은 여전히 마약 파티를 연다. 그들은 부모에게 물려받은 피를 특권이라 여기며 체제가 자신들의 방패막이가 돼줄 것이라 믿었을 테다.

‘재벌집 막내아들’이 30년 뒤 리메이크 돼 2022년을 그린다면 진도준은 어떤 선택을 할까. 2052년 대한민국의 재벌은 좀 더 다른 모습이길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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