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정권이 들어서는데 지대한 공을 세운 항목이 있다고 하면 바로 전 정권 ‘부동산 정책’의 실패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정권을 바꿀만큼 부동산 정책의 성공유무는 엄중한 잣대 중 하나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난 정권에서 집값은 상승을 넘어 ‘폭등’ 수준을 보여줬다. 정부가 갖은 엄포를 놓고 단속에 나서도 그때 뿐 이미 달아오른 부동산 시장 앞에서는 미풍에 그쳤다. 때문에 젊은 세대는 ‘내집 마련’에 대한 희망을 접어야 했고 집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의 자산 격차는 더욱 벌어지게 됐다. 이는 결혼과 출산을 미루는 이유가 됐다. 결국 부동산 정책의 실패가 우리 국가 경쟁력까지 약화시키게 된 셈이다.
하지만 정권이 바뀌고 나서 보니 그 마저도 통계를 조작한 정황이 하나둘씩 나타나고 있다. 감사원은 집값, 소득, 고용 등 핵심 민생지표들이 정권의 경제 구호였던 ‘소득주도성장’과 ‘투기와의 전쟁’에 끼어맞춰졌다고 볼 만한 정황 증거를 상당 부분 확보하고 조사에 속도를 내고 있다.
특히 국토부 산하기관인 한국부동산원(옛 한국감정원)의 부동산값 동향조사에서 표본을 의도적으로 치우치게 추출하거나 조사원이 조사 숫자를 임의 입력하는 등 고의적 왜곡이 일어난 정황을 파악한 것으로 알려졌다.
집값 통계는 당시에도 논란이 됐다. 지난 2020년 김현미 당시 국토교통부 장관은 국회 대정부질문에 출석해 “(문재인 정부 들어 집값이) 감정원 통계로 11% 정도 올랐다고 알고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당시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문재인 전 대통령 취임 이후 3년간 서울 전체 주택 가격은 34% 올랐으며 이중 아파트값 상승률은 52%에 달한다고 주장했다.
통계는 정책의 기초 중의 기초다. 왜곡하면 후폭풍은 예상할 수 없을 만큼 커진다. 그리스만 해도 13.6%였던 국내총생산(GDP) 대비 연간 재정 적자 비율을 6%라고 축소 발표했다가 국가 부도를 맞았다. 우리나라라고 다를 바 없다. 민간 부동산 통계와 최고 4배가량 차이가 나는 통계를 가지고 만든 정책이 얼마나 시장을 왜곡했는지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켜켜이 쌓아 놓은 규제가 인플레이션발 금리인상과 시너지를 내자 서울 집값이 몇 달새 수억 원씩 떨어지는 경착륙 양상을 보이고 있고, 가격이 싸졌음에도 금리와 더불어 각종 규제가 맞물리며 집을 사지도 팔지도 못하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가격 하락이 문제가 아니라 정상적인 거래도 일어나지 못하는 역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그래서 문재인 정부를 욕하자는 게 아니다. 윤석열 정부는 똑같은 우를 범하지 않아야 한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줄곧 내세웠던 ‘핀셋 규제’가 부동산 시장의 대세 상승기의 해법이 아니었던 것처럼 윤석열 정부의 ‘시장 만능’ 정책들 역시 대세 하락기인 지금에는 별다른 영향을 주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단발성 정책들로는 해결할 수 없다는 뜻이다. 당장 효과가 나타나지 않더라도 2~3년 후의 시장을 내다볼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 지금이야 여당과 야당이 편을 갈라 정권이 바뀔때마다 전 정권을 비난하면 끝일지 모르지만 그 속에서 고통받는 것은 국민들이다.
즉 현 정부 역시 전 정권을 폄훼하기 위해 통계를 조작하고 현재의 수치를 과대포장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된다. 온갖 눈속임으로 국민을 잠깐 속일 수는 있어도 진실은 언젠가 밝혀지게 돼 있다. 최소한 거짓말은 하지 말아야 한다.
정책은 내놓기 전에 신중해야 한다. 그것이 국민들의 삶의 기반인 ‘집’ 문제라면 정책에 대한 순효과와 역효과를 모두 예측할 수 있어야 한다. 정책 지속성과 정부 정책에 대한 신뢰는 물론이고 정부를 신뢰한 국민들에게 피해를 보게 해선 안 된다.
최근 정부의 ‘입’은 과연 국민들에게 신뢰를 주고 있는지 돌아봐야 한다. ‘더 하락해야 한다’거나 ‘경착륙을 막아야 한다’는 말 등은 아무 영양가가 없다. 말보다는 행동과 정책으로 보여줘야 한다.
시민을 위한 발전된 정책과 진정 어린 행동 없이 무책임한 말 한마디와 ‘눈 가리고 아웅’ 식의 행동으로 다수의 시민과 시장이 혼란에 빠지는 일이 또다시 반복돼서는 안 된다. 지금은 시장을 뒤흔드는 ‘입’보다는 어떻게 하향 안정화를 시킬 수 있을지 듣는 ‘귀’가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