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만원짜리 출퇴근 기록기가 없어서 매년 1000억 떼이는 이주노동자

입력 2023-01-0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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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사는 (2023-01-05 18:00)에 Channel5를 통해 소개 되었습니다.
[이(웃)주(민) 노동자] 5-2. "고용주에게 근무 시간 기록 의무화해야"



“‘체불’은 미룬다는 뜻이고, 언젠가 지급할 거라는 의미죠. 사용자 입장의 언어예요. 노동자 입장에서 (임금 체불은) 생계비를 단순히 미루는 정도가 아니라 (생계조차) 어려운 상황으로 몰아가는 겁니다. ‘임금 체불’이 아니라 ‘임금 절도’가 더 맞는 표현인 거죠.”

이주노동자를 돕고 있는 최정규 원곡법률사무소 변호사는 임금 체불 문제에 대해 이같이 단호하게 말했다.

최 변호사 사무실에 임금 체불을 호소하는 이주노동자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것은 아직도 ‘나쁜 사장님’이 사라지지 않고 있어서다. 사업주들이 외국인 노동자를 고용해 일을 시키고도 임금을 지불하지 않는 체불 금액은 매년 1000억 원이 넘는다. 임금을 받지 못한 이주노동자는 돈을 돌려받기 위해 특정 기간에 ‘일을 했다’는 걸 입증까지 해야 한다. 하지만 근무 일자·시간을 적은 메모는 입증 증거로 인정받지 못하는 게 부지기수다.

▲이주 노동자의 최근 5년 임금 체불 현황(자료 제공=이은주 정의당 의원실)
▲이주 노동자의 최근 5년 임금 체불 현황(자료 제공=이은주 정의당 의원실)

5일 고용노동부가 이은주 정의당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2019년부터 4년 연속 이주노동자의 체불 금액은 매년 1000억 원이 넘는다. 구체적으로 △2019년 1216억 원 △2020년 1287억 원 △2021년 1123억 원이었고 지난해에는 10월에 이미 1000억 원을 넘겨 1010억 원이었다. 임금을 떼인 노동자는 3만 명 수준이다. △2019년 3만1904명 △2020년 3만1998명 △2021년 2만9376명 △2022년(10월 기준) 2만3142명 등이다.

떼인 임금을 받는 과정은 지난하다. 이주노동자가 먼저 지역 관할 노동청에 진정을 제기한 후 배정된 근로감독관에게 임금 체불 상황과 규모를 설명해야 한다. 근로감독관이 사업주와 이주노동자의 입장을 조정해 합의해 끝나는 경우도 있지만, 합의에 이르지 못할 경우 이주노동자는 고소로 전환할 수 있다. 하지만 소송 절차를 밟으면 2~3년이 걸리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핵심은 실제 근무시간을 증명하는 것이다. 근무시간만 있으면 시급을 곱해 임금을 산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무직이라서 컴퓨터에 로그인 기록이 있거나, 일터에 출퇴근 기록기가 있어 실제 근무시간을 기록된 경우라면 증명은 한결 수월하다. 하지만 이주노동자 근무지는 출퇴근 기록기가 없는 사업장이 많아 노동자가 자신의 실제 근무시간을 증명하기란 ‘하늘의 별 따기’다.

매일 출퇴근 시각을 자필로 기록했지만 인정받지 못한 캄보디아 노동자 따임피(35) 씨 사례가 대표적이다. 따임피 씨는 2016년 7월부터 2018년 9월까지 경기도 포천의 한 농장의 비닐하우스에서 참나물, 얼갈이, 열무 등을 재배하고 수확했다. 농장주와 따임피 씨가 작성한 근로계약서에 하루 근무 시간은 오전 7시~오후 5시 30분(한 달 226시간, 2일 휴무)이다. 하지만 따임피 씨에 따르면 실제 근로 시간은 계약 내용과 달리 오전 6시 30분~오후 5시 30분이었다.

▲캄보디아 노동자 따임피( 씨가 매일 기록한 근무 일지다. 가로 축은 순서대로 출근 시간, 퇴근 시간, 근무 시간, 휴게 시간, 실제 근로 시간이다. (사진 제공=원곡법률사무소)
▲캄보디아 노동자 따임피( 씨가 매일 기록한 근무 일지다. 가로 축은 순서대로 출근 시간, 퇴근 시간, 근무 시간, 휴게 시간, 실제 근로 시간이다. (사진 제공=원곡법률사무소)

당시 최저임금으로 계산할 때 따임피 씨는 168만8400원을 월급으로 받아야 했지만, 농장주는 123만 원을 주는 데 그쳤다. 또 따임피 씨는 이곳에서 26개월을 일했으나 농장주가 23개월분의 월급만 지급했다고 주장했다. 이 외 연차 수당과 해고 예고 수당(사용자가 근로자를 해고하려면 30일 전에 예고해야 하나, 그렇지 않을 경우 30일분 이상의 통상임금 지급), 퇴직금 등 총 1367만3825원을 받지 못했다며 고소장을 제출했다.

하지만 검찰은 근무시간 일지를 연필로 작성한 점, 휴일에도 근무한 것으로 잘못 기재했다가 지우개로 지운 흔적이 있다는 점을 들어 농장주를 불기소했다. 이 사건을 담당한 최정규 변호사는 “10만 원도 안 하는 출퇴근 기록기가 없어서 노동자가 1000만 원을 받지 못한 사건”이라고 설명했다.

이은주 정의당 의원은 “시간이 지날수록 외국인 노동자는 없어서는 안 될 인력이 되고 있지만 이들에 대한 보호는 여전히 취약하다”며 “가장 기본적인 임금부터 체불 없이 보장될 수 있도록 고용노동부의 지도와 감독이 철저히 이뤄질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고질적인 임금체불 문제와 관련해 안건수 청주이주민노동인권센터 소장은 “사업주가 (노동자의 실제 근로시간을) 입증하게 하면 된다”고 말했다. 근로시간 입증 책임의 주체를 바꾸면 명쾌해진다는 것이다. 안 소장은 “노동자가 ‘몇 시간 일했다’고 주장하면, (사업주가 이견이 있을 때) 사업주는 ‘그게 아니다’라고 입증 자료를 내 처리해야 한다”며 “현재는 (입증 책임이 노동자에게 있어) 사업주의 의견이 대부분 받아들여지기 때문에 임금 체불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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