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원의장 없이는 어떤 법안 통과도 불가능
셧다운ㆍ부채 한도 증액ㆍ우크라이나 지원 등 주요 이슈 줄줄이 대기 중
미국 하원은 3일과 4일, 6차례에 걸쳐 의장 호명 투표를 실시했다. 공화당은 케빈 매카시 원내대표를, 민주당은 하킴 제프리스 원내대표를 각각 후보로 추천했다. 공화당 강경파는 이와 별도로 바이런 도널드(공화·플로리다) 의원을 후보로 내세웠다. 6차 투표 결과 매카시 원내대표 201표, 제프리스 원내대표 212표, 도널드 의원 20표를 각각 얻었다. 아무도 과반 지지(218표)를 확보하지 못한 것이다. 미 하원은 휴회 후 7차 투표에 나설 예정이지만 공화당 내 이탈 의원들의 입장이 강경해 결과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미국 하원에서 의장을 한 번의 투표로 선출하지 못하는 건 매우 드문 일이다. 다수석을 차지한 정당이 의장 후보를 내고 소속 의원들만으로 과반 지지를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 재투표가 있었던 건 100년 전으로, 1923년 당시 근소한 차이로 다수당 지위를 유지한 공화당은 당내 진보파의 반란에 부딪혀 9차례 투표 만에 의장을 선출했다.
이번 공화당 내 반란을 주도하는 건 극우 성향의 ‘네버 케빈(Never Kevins)’ 세력이다. 조 바이든 행정부에 대한 고강도 견제를 위해 의사규칙 변경 등을 요구하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이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만은 않다. 2011~2015년 공화당 소속으로 하원의장을 역임했던 존 베이너는 “이들이 앞세우는 아젠다는 별로 없다”며 “대신 장난감을 망가뜨려 아무도 가지고 놀지 못하게 만들려는 심산처럼 보인다”고 비난했다. 그는 자신이 의장으로 있을 때 공화당 내 비슷한 세력들의 ‘훼방’으로 고초를 겪었다며 “그들은 법안을 반대할 때마다 폭스뉴스나 토크쇼에 초대됐고 그걸 즐겼다”고 말했다.
미국 권력 순위 3위인 하원의장 선출이 이토록 진통을 겪는 일은 비단 한 정당만의 문제가 아니다. 하원의장 없이는 법안 통과도 불가능하다. 공화당이 의장 선출을 두고 내홍을 겪는 모습은 “의장 한 명 합의를 못 이뤄내는 의회가 논쟁적인 사안들을 어떻게 다룰 수 있을까”라는 의문을 갖게 한다고 CNN은 지적했다. 정부 셧다운, 부채 한도 증액, 우크라이나 지원 등 주요 이슈들이 줄줄이 의회 통과 과정에서 진통을 겪을 가능성이 커진 셈이다.
BTIG의 분석가인 아이작 볼탄스키는 “이번 의회가 올해 내내 ‘콩가루’가 될 것이라는 분명한 신호”라며 “반드시 통과시켜야만 하는 법안들이 위험에 처했다는 의미”라고 평가했다.
가뜩이나 미국을 비롯한 세계경제가 침체 위기로 살얼음판을 걷는 상황에서 미 의회가 사사건건 표류하는 건 불길한 징조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 민주당이라고 웃고 있을 일이 아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민주당 의원들이 매카시의 ‘굴욕’을 지켜보며 비웃고 있었다고 지적했다. 힘이 없는 하원의장의 탄생은 의회에서 극단의 영향력이 증폭된다는 의미고, 결국 정국 운영에도 큰 차질이 생길 수 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