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사회주의]② 아직도 정의 안 된 ‘스튜어드십 코드’…“경영 개입” VS “장기 수익 도모”

입력 2023-01-08 17:30 수정 2023-01-08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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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
(국민연금)

-국민연금, 수익성 추구에는 동의하나 방법은 제각각
-“후진적 기업지배구조로 주가가 떨어지면 경영 개입 아닌 주식 매도해야”한다는 의견도 있어
- “스튜어드십 코드 행사, 장기 관점에서 수익성 있어”라는 반론 제기

# KT 이사회는 12월 28일 구현모 현 대표를 주주총회에 추천할 차기 대표 후보로 최종 결정했다. 이날 심사 결과가 발표된 후 서원주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CIO)은 보도자료를 통해 “KT의 최고경영자(CEO) 후보 결정이 투명하고 공정한 절차에 따라 이뤄져야 한다는 경선의 기본 원칙에 부합하지 못한다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이어 “앞으로 의결권 행사 등 수탁자 책임활동 이행 과정에서 이러한 사항을 충분히 고려할 것”이라고 했다. 오는 3월로 예정된 KT 정기 주총에서 구 대표 연임에 반대표를 던지겠다고 예고한 것이다.

김태현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이 지난달 8일 ‘오너 없는 기업’들의 지배구조를 문제삼기 시작한 후 KT 주가는 한 달 동안 9%넘게 급락했다. 시가총액은 1조 원 가까이 사라졌다. 결국, 주가 하락의 피해는 국민과 투자자의 목이 된 셈이다.

공적 연금이 지분 투자한 기업에 대해 주주권을 행사하는 것은 흔하다. 하지만 그 바탕에는 공적 연금이 정권의 입김에서 자유롭고, 순전히 경영적인 관점에서 주주권을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 선진국과 달리 우리 국민연금은 의사 결정 구조가 독립적이지 못하고 정부의 그늘에 사실상 있다. 국민연금의 최고 의사 결정 기구인 기금운용위 위원장을 복지부 장관이 겸임하고 4개 부처 차관이 당연직 위원을 맡게 돼 있다. 국민연금 이사장 자리도 낙하산 인사로 채워졌다.

전문가들은 국민연금의 지분이 있다면, 주인 없는 기업뿐만 아니라 KT, 포스코, 금융지주 등 이른바 오너없는 기업들도 정부가 휘두르는 칼날에 생채기를 입을 위험이 크다고 지적한다. 시장에서는 국민연금이 ‘연금사회주의’로 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수익성의 원칙’(국민연금 기금운용의 제1원칙)은 어디갔나

‘수익성의 원칙’. 국민연금 기금운용의 제1원칙이다. 저출생·고령화로 연금을 내는 경제활동인구가 지속적으로 감소하면서, 국민연금이 운용 수익을 내지 않으면 기금은 고갈된다. 수십 년 간 국민연금을 내고도 수급개시연령이 됐을 때 돌려받지 못할 수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안정성, 공공성, 유동성, 지속 가능성, 운용 독립성을 모두 제치고 ‘수익성’이 가장 토대가 되는 운용 원칙으로 올랐다.

전문가들 역시 국민연금은 ‘수익성’을 가장 먼저 추구해야 한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었지만, 그 방법을 두고는 시각차를 보였다. 국민연금이 기업의 경영에 손을 떼고 이들의 자율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의견과 스튜어드십 코드(수탁자 책임 원칙) 행사로 장기적인 관점에서 기업의 가치를 제고할 수 있다는 의견이 부딪히면서다. 다만, 최근 국민연금이 대표이사직 연임에 반대 의견을 낸 KT 건에 대해서는 ‘과도하다’고 입을 모았다.

6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말 KT 대표이사 후보심사위원회는 구현모 현 대표를 차기 대표 후보로 결정했다. 이에 국민연금은 보도자료를 통해 “KT 최고경영자(CEO) 후보 결정이 투명하고 공정한 절차에 따라 이뤄져야 한다는 경선의 기본 원칙에 부합하지 못한다”며 “의결권 행사 등 수탁자 책임 활동 이행 과정에서 이런 사항을 충분히 고려할 것”이라고 밝혔다. 사실상 구 대표 연임에 반대한다는 의견을 낸 것이다.

구 대표 취임 후 KT의 주가는 90% 상승하고 지난해 상반기 역대 최대 실적(12조5899억 원)을 달성했다. 이 탓에 국민연금의 반대가 적절치 않았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이인실 서강대학교 교수는 “(국민연금이) 반대하는 이유가 뚜렷하지 않다”며 “이유를 명확하고 하고 원칙에 의해서 해야 한다”고 했다. 이종오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사무국장 역시 “CEO 선정 절차에 공정성이 부족했다면 절차에 맞춰 문제 제기가 돼야 했다”며 “CIO가 의견을 내고 국민연금에서 보완해주는 자료를 내는 (현재와 같은) 방식은 한 번도 본 적이 없다”고 했다.

다만 일반적인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 행사를 놓고서는 ‘지나친 경영권 개입’, ‘정당한 주주권 행사’로 의견이 갈렸다. 이 교수는 “(국민연금은) 장기적인 운용을 초점에 둬야 한다”며 “인사 문제는 언급조차 하지 않는 게 맞다”고 했다. 국민연금이 사기업의 CEO 선임에 왈가왈부할 처지가 아니라는 뜻에서다.

양준모 연세대학교 교수 역시 “국민연금법에는 국민의 이익을 위해서 (국민연금이) 주식 투자를 하는 것”이라며 “공정한 기업 문화를 만들려고 (국민연금을) 해놓은 게 아니다”라고 했다. 국민연금법 1조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국민의 생활 안정과 복지 증진에 이바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고 규정돼 있다. 그는 “경영권에 개입한다는 건 재무적 투자자의 역할을 벗어난 행위”라며 “기업의 가치가 떨어지면 갖고 있으면서 ‘감 놔라, 배 놔라’하는 건 잘못됐고 과감하게 (해당 기업의) 주식을 팔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면 스튜어드십 코드 행사로 후진적인 기업지배구조를 개선해 장기적인 수익률을 도모할 수 있다는 의견도 나왔다. 이 국장은 “금융 위기의 원인 중 하나로 투자자의 기업 감시 소홀이 지목되면서 이를 반성하기 위해 스튜어드십 코드가 탄생했다”며 “(스튜어드십 코드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기업 가치를 높이고 주주 가치를 제고하는 지향성을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기금위는 국민연금 최고의결기구로, 위원장은 보건복지부 장관이며 정부 측 당연직 위원 5명(기획재정부·농림축산식품부·산업통상자원부·고용노동부 차관, 국민연금공단 이사장), 사용자(3명)·근로자(3명)·지역 가입자(6명)가 추천하는 인사, 관련 전문가 2명 등 총 14명의 민간위원으로 구성된다.

재계 “경영 간섭 우려”

재계 한 관계자는 “국민연금 의결권을 활용해 정치권이 하나하나 간섭한다면 기업들이 정치권 눈치를 보느라 기업 활동이 크게 움츠러들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올해 3월 주주총회가 걱정이다”고 했다.

국민연금의 의결권은 오로지 온 국민의 노후 자산 수익률 제고에 도움 되느냐의 투자 관점만으로 결정돼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독립성이 우선이라는 얘기다.

이 국장은 “(국민연금은) 의사 결정 과정에서 관치를 악화하는 구조”라며 “기금운용위원회(기금위)에 (관련 부처) 차관들은 당연직 위원으로 넣을 필요가 있나”라고 했다.

박경서 고려대학교 교수도 “정치권의 이해가 국민연금을 통해 반영되는 구조”라며 “기업을 위해서 찬반을 하는 게 아니라 특정 외부 세력에 의해 압력을 받을 수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국민연금은 지배 구조상 (압력에) 취약한 조직”이라며 “서구는 전통 관행상 독립성이 확보돼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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