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놀이터] 챗GPT에게 단열필름에 대해 물었다

입력 2023-01-11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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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연섭 한국원자력학회 사무총장, 과학칼럼니스트

붉은 잎을 간직했던 단풍나무도 북풍을 피하려 앙상한 뼈만 남았다. 마당에서 뒹굴던 바둑이는 현관으로 들어온 후에 나갈 생각을 않는다. 아내는 단열필름을 시공한 이중창에다 뽁뽁이까지 붙였다. 월동 준비에도 불구하고 북극 한파가 내려오자 수도 계량기가 터지는 소리가 들린다.

어른에게는 익숙한 풍경이지만 돌 지난 손녀는 눈을 크게 뜬다. 우리는 나이를 먹으면서 지식을 얻지만 경이를 잃는다. 입김으로 추위를 녹여주던 아기도 두 살만 되면 무생물과 생물의 차이를 알 만큼 똑똑해진다. 초등학생은 어른들 못지않게 겨울나기 지혜를 터득한다.

초등학교 졸업 후에 인간은 더 이상 발전이 없어 자기 집에 알맞은 단열필름을 고르지 못한다. 엔지니어링 플라스틱 개발에 참여했던 필자도 모르기는 마찬가지이다. 단열 원리를 부분적으로 이해했지만 다양한 필름을 고를 정도의 종합적 판단이 어려웠다.

필자는 ‘과학’산을 등산한 후에 글 쓰는 취미가 있다. 실험실이나 저잣거리의 신기한 현상은 ‘과학’산을 오르는 입구이다. 매번 출발지점이 다르니 경로도 다양하지만, 정상에는 늘 수학이 자리 잡고 있다. 정상이 오를 때까지 사색을 이어간다. 쉬운 산행도 있고 어려운 산행도 있다. 이번에도 일주일 동안 단열 현상을 화두에 놓고 ‘과학’산에 올랐다. 그제야 산 아래 계곡 따라 흘러가는 열이 보인다.

인공지능 챗GPT(ChatGPT)에도 물었다. 미국의 인공지능 연구기업 오픈AI(OpenAI)가 개발한 챗GPT는 인간처럼 자연스럽게 대화하고 시까지 쓸 수 있다. 놀라운 기능이다. 챗GPT는 열이 빠져나가는 방식에는 대류, 전도, 복사가 있으며 이를 차단하려면 필름을 겹쳐 제조하라고 알려준다. 열전도는 진공이나 공기층을 두면 최소화되고 복사는 금속박막으로 막을 수 있다고 한다.

챗GPT는 단열필름 문헌을 읽어 정보를 추출하고 질문에 대답한다. 문자 기반으로 학습하지만, 함께 삽입된 그림과 그래프는 일단 제쳐둔다. 챗GPT의 단열필름에 대한 대답은 보통 사람을 뛰어넘지만, 원리와 제조방법까지 알려주지는 않는다. 챗GPT는 혁신이지만, 아직 완성은 아니다.

철학적으로 표현하면 챗GPT는 경험적으로 지식을 얻지만, 연역적으로 지식을 얻지 못한다. 챗GPT에 연역적 기능이 없음을 재확인하려 산수 문제로 시험했다. 독자의 이해를 위해 삼각함수의 적분 질문을 땅 고르기 작업으로 빗대어 설명한다. 울퉁불퉁한 땅을 고르면 땅 높이는 그대로인데 챗GPT는 지고마저 높아진다고 주장한다. 틀렸다고 구박을 해도 챗GPT는 정확한 언어모델에 근거했다고 우긴다.

인간도 초등학교 입학 전에 언어모델을 배운 후에 지식을 쌓아간다. 인간의 한계는 일 년에 1권만 책을 읽고, 읽은 내용의 90%를 잊어버린다는 데 있다. 인간에 비해 챗GPT는 수만 권의 책을 읽고 내용을 망각하지 않는다. 그래도 인간이 챗GPT를 이기는 이유는 중등학교 이후의 수학모델과 과학모델에 있다. 두 모델은 경험적 지식이 아니며 연역적 지식을 얻는 도구이다.

챗GPT를 깎아내렸으니 단열 모델을 제시해야 공평할 거다. 사색한 내용을 무턱대고 우기면 필자도 챗GPT와 다를 바 없다. ‘과학’산에 오르면서 필자는 여러 과학자를 소환했다. 독자들은 이들을 무시해도 상관없으며 다만 연역적 사고의 사례로 간주하기 바란다. 슈뢰딩거는 재질의 특성을 얻는 방정식, 맥스월은 빛의 반사와 투과를 계산하는 방정식, 볼츠만은 물질의 열전도를 계산하는 방정식을 보여주었다. 3개의 방정식을 이어 계단을 만들자 단열 현상에서 출발하여 ‘과학’산 정상으로 가는 길이 열렸다.

복사 저감 단열은 자외선, 가시광선, 적외선을 일부 차단하고 반사시키는 원리이다. 제조 기술까지 파고들면 먼저 거울이 떠오른다. 유리가 아니라 거울 뒷면에 발라진 은이 빛을 반사한다. 이것이 지식의 전부가 아니다. 반사가 일어나기 위해서는 원자들이 점처럼 산재하지 않고 가지런히 정렬된 고체 상태라야 된다. 다음은 제조비용을 보자. 붓으로 도포를 하면 은 소모량을 감당하기 힘들다. 기체 상태에서 금속을 단열필름에 증착하는 기법이 최근 기술이다.

전도 저감 단열은 필름에 공기층을 넣는다. 이중 유리는 가운데 공기층이 있다. 스펀지나 스티로폼도 공기를 가둘 수가 있으나 얇은 막을 형성하기 어렵다. 에어로겔은 분자 크기의 빈 공간을 지닌 구조로 최근에 차세대 기술로 연구된다.

필자는 과학 모델들을 펼쳐 ‘과학’산에 올랐지만, 챗GPT는 여전히 산길을 헤매고 있다. 연역의 길이라고 알려 주어도 챗GPT는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나 챗GPT를 무시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챗GPT는 인간을 닮도록 억지로 훈련되어 연역 기능이 약해졌지만 원래 컴퓨터이므로 강한 연역 기능을 지닐 수 있다. 독일의 철학자 칸트가 영국의 경험론과 대륙의 연역론을 종합했듯이 새로운 인공지능은 경험과 연역을 융합하면서 나타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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