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나온 말이었다. 상담 모델이나 테크닉에 근거해서 말하지도 않았고, 커다란 의미나 의도를 품고 말하지도 않았다. 그냥 상담자로서 내가 느낀 바를 솔직하게 표현했을 뿐이다. 그런데 이 짧은 문장이 엄청난 효과를 냈다. 단 두 회기 만에 상담이 종결되어 버렸다.
이 부부는 서로 박 터지게(?) 싸우지는 않았다. 다만 아내분께서 일방적으로 화를 내신다고 했다. 평상시엔 순한 양처럼 부드럽고 친절하신데, 뭔가 마음에 걸리는 일이 생기면 마치 녹색 괴물 ‘헐크’처럼 변신하신단다. 남편에게 상스러운 욕을 하고 물건을 던지신단다.
남편분은 어떻게 대처하고 계셨을까. 아내와 달리, 초식동물처럼 얌전한 분이셔서 일단은 ‘견디면서 당한다’고 말씀하신다. 그렇게 참고, 참고, 또 참았다가 마지막에는 폭발하셨다. 역시, 참는 데도 한계는 있다. 그래서 마음을 굳게 먹고 부부상담을 신청하셨다고 한다.
그런데 변하지 않을 것만 같았던 아내분께서 내 말 한마디를 듣고 급격하게 변화하셨다. 왜? 평소 작은 문제를 핑계삼아 과도하게 분노를 표출해서 남편이 힘들어 하는 모습을 보면서 죄책감을 느끼셨다고 한다. 그리고 내 말이 그 죄책감을 ‘긍정적으로 자극했다’고 한다.
“그렇지! 남편이 내 화를 받아주려고 태어나지는 않았지. 스스로 행복하게 살려고 사랑하고,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았는데, 어째서 나를 만났다는 사실만으로 일상적으로 불행을 감내해야 할까. 무슨 죄를 지었길래 내가 화낼까봐 늘 조마조마하면서 살아가야 할까.”
10년 넘게 부부-가족상담을 하면서 깨달은 바가 있다. 결국, 상담자가 아무리 전문적으로 교육받았고 임상 경험이 많다고 해도, 내담자 문제를 듣고 쉽게 해석해 주거나 해결해 주진 못한다는 사실. 본인이 변화 의지를 가지고 자신을 돌아봐야 답이 나온다는 사실.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동시에 사람은 끝없이 변한다. 손바닥 뒤집듯이 사람 성향이 바뀌진 않지만, 자기 모습을 인정하고, 의지를 가지고 꾸준히 노력하면 바뀐다. 혹은, 가끔은 빠르게 바뀔 수도 있다.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강력하게 영향을 주고받는 가족이라면.
안녕하세요? 상담하는 사회복지사 이재원입니다. ‘가족’을 주제로 쓴 글로 독자 여러분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살면서 다양한 문제를 겪기도 하지만 이를 이겨내고 회복하는 힘도 가진 가족 이야기를 전하겠습니다. (※위 사례는 개인 정보를 보호하기 위해서, 각색한 내용입니다.)
이재원 강점관점실천연구소장·임상사회사업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