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삭제하라”…공소장에 드러난 국방부의 이대준씨 사망 은폐 정황

입력 2023-01-12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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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 모습. (연합뉴스)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 모습. (연합뉴스)

해양수산부 공무원 고(故) 이대준 씨가 북한에서 피살된 이튿날, 국방부에서는 사망 사실 은폐를 위한 ‘밤샘 작전’이 펼쳐진 것으로 법무부의 공소장을 통해 드러났다.

12일 법무부가 국회에 제출한 서욱 전 국방부 장관과 박 전 원장의 공소장에 따르면, 2020년 9월 22일 밤 이 씨 사망을 인지한 청와대 국가안보실은 이튿날 새벽 1시 안보 관계 장관회의를 긴급 소집했다. 회의서 국가안보실은 참석자들에게 “피격 및 시신 소각 사실에 관해 철저하게 보안을 유지하고 위 사실이 일체 외부로 유출되지 않도록 할 것”을 지시했다. 회의에 참석했던 서 전 장관은 회의 종료 직후 합참 작전본부 작전부장에 전화를 걸어 “강도 높은 보안 작전”을 지휘했다.

서 전 장관은 구체적으로 △서해 공무원 사건 관련 자료를 모두 수거해서 파기 △예하 부대가 이 사건 관련 내용을 알고 있으면 화상 회의를 통해 교육 △국방부 및 합참에서 책임지고 조치 이행 등을 지시했다.

서 전 장관의 지시를 받은 합참 작전부장과 예하 지휘관들은 새벽 내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서해 관련 사항은 모두 삭제하라”, “모든 첩보와 시트지를 파기하고 타 보고서에 인용 및 탑재를 금지하라”, “해당 부대 지휘관을 포함해 누구에게도 관련 내용을 전파하지 마라” 등의 지시가 담당 부대와 관련 기관에 전달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56개 부대가 수신한 전문, 군사정보통합처리체계(MIMS·밈스) 내 첩보 60건, 18개 부대 정보 유통망 내 첩보 5417건이 삭제된 것으로 조사됐다.

서 전 장관 측은 그동안 첩보나 보고서의 원본을 삭제한 것이 아니라 보안 유지를 위해 배부선을 조정한 것이라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검찰은 첩보 원음 파일을 비롯한 문서 대부분이 삭제되거나 손상됐다고 판단했다.

국정원에서도 박지원 당시 원장의 지시 아래 수십 건의 첩보와 보고서들이 지워진 것으로 조사됐다. 박지원 전 원장은 서 전 장관과 함께 새벽 안보 관계 장관회의에 참석한 뒤, 노은채 당시 비서실장에게 “9월 22일께부터 국가정보원에서 수집한 첩보 및 관련 자료를 즉시 삭제하라”고 지시했다.

노 전 실장은 23일 오전 9시 30분께 국정원 차장과 기조실장을 소집해 ‘원장님 지시사항’을 전달하며 “첩보 관련 자료를 모두 회수해 삭제조치를 하고, 철저하게 보안을 유지하라”고 요청했다.

이에 따라 국정원에서는 이 씨 사건 관련 키워드가 포함된 첩보와 이를 분석한 보고서 등 55건이 삭제됐다. 서 전 장관은 이후 이 씨의 사망 사실 은폐가 불가능해지자, 국가안보실의 지시를 받아 이 씨를 자진 월북자로 몰아가는 ‘월북 조작’을 벌인 것으로 조사됐다.

이 씨가 스스로 월북한 것처럼 보이도록 일부 현장 상황만을 골라 보고서를 작성하도록 지시하고, 허위 수사 결과 발표와 브리핑을 진행한 것으로 파악됐다. 검찰은 서 전 장관과 박 전 원장의 이러한 지시가 직원들에게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한 것으로 보고, 직권남용 및 공용전자기록 손상 등 혐의를 적용해 기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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