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체적 범죄사실 기재 없이 기소…대법 “피고인 방어권 행사 지장 초래”

입력 2023-01-22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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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뉴시스)
▲대법원 (뉴시스)

본인 명의의 체크카드 등을 타인에게 건네 전자금융거래법 위반으로 1심과 2심에서 징역형을 선고받았지만, 대법원은 공소장에 구체적인 범죄사실의 기재가 없어 피고인의 방어권 행사에 지장을 초래할 수 있다며 원심을 파기했다.

대법원 제2부(주심 민유숙 대법관)는 22일 전자금융거래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A 씨에게 징역 8월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의정부지방법원으로 돌려보냈다.

앞서 1심 재판부는 “피고인은 체크카드를 분실한 것일 뿐이라며 납득하기 어려운 변명을 하면서 자신의 범행을 극구 부인하고 있다”며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지 않는 것으로 보여 엄히 처벌할 필요가 있다”며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 200시간의 사회봉사를 명했다.

이에 A 씨 측은 “피고인은 체크카드와 비밀번호를 적어 둔 종이를 분실한 것일 뿐 양도하지 않았다”며 “또 이 사건 공소사실은 일시와 장소, 양도 상대방과 양도 방법이 특정되지 않아 형사소송법 제254조 제4항에 위반되어 공소제기 절차가 무효”라고 주장하며 항소했다.

법원에 따르면 A 씨는 2018년 11월 4일부터 15일까지 본인 명의의 체크카드 1장 및 비밀번호를 어딘지 모르는 장소에서, 누군지 모르는 자에게, 특정할 수 없는 방법으로 양도했다. 하지만 A 씨 측은 양도한 장소와 사람, 방법 등이 특정되지 않았다며 공소제기 자체가 무효라고 주장했다.

2심 재판부는 공소장에 범죄의 일시, 장소, 방법 등이 구체적으로 적시되지 않았더라도 공소사실을 특정하도록 한 법의 취지에 반하지 않는다며 공소제기가 위법하다는 피고인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하지만 이날 대법원은 “이 사건 공소사실은 범행 일시가 12일에 걸쳐 있고, 범행 장소, 접근매체의 교부 상대방, 교부 방법이 불상으로 기재되어 있는 등 형사소송법 제254조 제4항이 규정한 요소의 상당 부분이 사실상 특정되지 않는 내용으로 구성 및 표시되어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피고인이 자신의 의사로 체크카드 등을 건네준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면서 공소사실을 부인하는 이 사건에서 위 공소사실 기재는 피고인에게 방어의 범위를 특정하기 어렵게 함으로써 방어권을 행사하는 데 지장을 초래할 수 있다”며 원심판결을 파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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