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제재 등 K배터리 협상력 우위
LG엔솔ㆍSK온, 해외투자 재검토
국내 배터리 업체와 글로벌 완성차 기업의 합작공장 계획이 무산됐다는 소식이 잇따라 들리고 있다. 하지만 국내 배터리 업계의 표정은 어둡지 않은 모습이다. 업계에선 전 세계적으로 전기차 배터리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가운데 오히려 국내 배터리 업체들이 협상의 주도권을 쥐게 된 것이라고 해석했다.
25일 업계에 따르면 LG에너지솔루션과 미국 최대 자동차 회사 제너럴모터스(GM)가 추진하던 네 번째 합작공장 건설 계획이 무산될 가능성이 커진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0일(현지시간) 현지 소식통을 인용해 합작 공장 건설을 위한 GM과 LG에너지솔루션 경영진의 협상이 합의 없이 종료됐다고 밝혔다.
LG에너지솔루션과 GM은 전기차 배터리 합작법인 얼티엄셀즈를 설립하고 미국 오하이오주와 테네시주에 총 3개의 배터리 공장을 짓고 있다. 이어 4번째 공장 설립을 논의 중이었으나 협상이 지지부진한 것이다. 이에 LG에너지솔루션 측은 “얼티엄셀즈 4공장에 대해 양사가 논의 중이며 구체적으로 결정된 바는 없다”고 밝혔다.
WSJ은 LG에너지솔루션이 추가 투자에 미온적인 투자를 보인 것이 협상 결렬의 주요 원인이 됐다고 보도했다. 업계에선 LG에너지솔루션이 다수의 글로벌 완성차 업체와 조인트벤처(JV) 설립을 계획 중에 있어서 GM에 투자를 집중할 필요가 없다고 분석한다.
실제로 LG에너지솔루션은 최근 GM 외에도 혼다·스텔란티스 등 완성차 업체와 잇따라 합작공장 설립 계획을 발표했다. 포드가 튀르키예에 짓기로 한 배터리 공장 협력사가 SK온에서 LG에너지솔루션으로 바뀔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
글로벌 고객사 다변화 나설 듯"
업계에서는 합작공장 설립 무산이 국내 배터리 업계가 ‘선택과 집중’을 한 결과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전 세계적으로 전기차 배터리의 공급보다 수요가 더 많은 상황에서 완성차 업체들이 배터리 업체에 잇따라 러브콜을 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 A씨는 “LG에너지솔루션은 다른 고객사에서도 러브콜을 받는 상황이기 때문에 조건이 아주 괜찮지 않은 이상 GM과 4공장까지 진행할 필요성이 적다고 판단했을 것”이라며 “한 고객사에 집중하기보다는 고객사를 다변화하는 걸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앞서 SK온이 포드와 함께 짓기로 했던 튀르키예 합작공장 협상이 틀어진 것도, SK온이 협상에 소극적으로 임했기 때문이란 업계 분석이 나온다. 애초 알려진 자금 부족이나 수율 문제보다는 SK온이 투자 재배분을 위한 선택을 했다는 것이다.
A씨는 “현재 완성차 업체보다 배터리를 대량으로 공급할 수 있는 업체가 훨씬 적다”며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으로 인해 중국의 업체의 미국 진출은 막혔고, 일본 파나소닉의 경우 원통형 배터리만 취급하고 있어 완성차 업체에서는 국내 배터리 3사에 손을 내밀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합작공장 설립 무산은 오히려 한국 배터리 업체에 유리한 상황이 될 수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완성차 업체는 합작공장을 설립할 다른 협력사를 찾아야 하는데 그 선택지가 다른 한국 배터리 업체가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실제로 GM은 LG에너지솔루션 대신 다른 협력사와 미국에 네 번째 배터리 공장 설립을 논의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는데, 업계에서는 삼성SDI가 유력한 후보로 꼽힌다.
업계 관계자 B씨는 “합장공장 설립이 무산됐을 때 완성차 업체는 더 좋은 조건으로 다른 협력사를 찾을 수밖에 없다”며 “한국 배터리 업체가 완성차 업체를 선택할 수 있는 입장이 된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