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부터 자동차 공학회 정회원
"車공학회의 새 방향성 정립 추진"
"이공계 기피 현상, 어릴 때 바꿔야"
“안타까운 일이에요. 학생들이 공대를 선택했다가도 부모의 권유로 다시 의학전문대학원으로 옮겨가는 경우도 여럿입니다. 당장 우리 학교만 해도 의학전문대학원을 가기 위해 어렵게 들어온 학교를 그만두는 경우가 나오고 있어요.”
지난해 11월 한국자동차공학회 36대 회장으로 선출된 민경덕 서울대 기계공학부 교수가 25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하면서 이공계를 떠나는 후학들을 보며 안타까워했다.
민 교수가 유학을 시작했던 1980년대 미국 역시 이공계 기피 현상에 고민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전통적인 공학자 대신 IT와 소프트웨어 기술자로의 길을 걷는 이들이 많아지기 시작한 것. 결국, 미국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엔지니어와 공학자의 처우를 개선했고, 자연스레 이들을 바라보는 사회적 시각도 점차 개선됐다.
민 교수는 결국 어릴 때부터 공학자와 엔지니어가 하는 일을 아이들이 경험하고 견학할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과학자와 엔지니어를 좋아할 수 있는 교육 시스템이 필요해요. 견학도 하고 직접 공학자들이 어떤 일을 하는지 무엇을 만들어내는지를 어린 학생들에게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서울대학교 기계공학과에서 학부와 석사를 마친 민 교수는 미국으로 건너가 MIT에서 박사학위(기계공학)를 취득했다. MIT 박사를 마친 뒤 독일 다임러그룹의 메르세데스-벤츠 엔진 연구소에서 실질적인 개발 업무에도 참여했다.
자동차공학회 정회원 활동은 모교로 돌아와 강단에 서기 시작한 1997년부터다. 이후 공학회 대외협력이사를 시작으로 총무담당 부회장과 파워트레인부문 부회장 등을 역임했다. 반세기 학회 역사 속에서 절반 이상을 학회 발전에 공헌해온 셈이다.
2020년에는 자동차산업 기술개발의 발전에 이바지한 공로를 인정받아 대통령표창을, 2021년에는 한국자동차공학회 학회발전 기여상을 수상했다.
그가 길러낸 후학들은 국내 완성차 연구개발본부 곳곳에서 또 수많은 민간단체와 연구소에서 활동 중이다. 완성차 제조사의 연구개발본부가 자동차 공학 분야의 석학으로 민 교수를 손꼽는 것도 이런 배경 때문이다.
그는 학회 관련 업무나 세미나가 아니고서는 좀처럼 언론 인터뷰나 대중 앞에 나서지 않는 인물이었다. 그랬던 그가 자동차공학회장 후보에 이름을 올렸다는 사실 자체가 뜻밖이었다.
그는 이와 관련해 “자동차공학회의 새로운 방향성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생각해왔던 공학회의 방향성이 뚜렷해진 것은 물론, 나아갈 목표에 대해 민 교수 스스로 자신감이 차올랐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학회장 임기 1년이 조금 짧은 것이 아니냐”는 질문에 민 교수는 “공학회장 임기가 1년이면 상대적으로 짧은 편이죠. 그런데 물은 흘러야 하고 또 고여 있으면 안 되잖아요. 당장에 커다란 변화를 일으키기에 부족한 기간이지만, 공학회의 새로운 방향성을 확립하는 데 1년이면 결코 짧은 시간은 아닙니다”라고 대답했다.
“이제 자동차 산업이 전기와 전자, 소프트웨어 등으로 확대되고 있잖아요.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현재 시점에서 자동차 공학회가 추진해야 할 방향성도 변화를 맞이해야 합니다. 그래야 장기적으로 더 발전할 수 있어요. 저는 그 토대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2020년 3월, 코로나19 팬데믹이 본격화됐음에도 우리 자동차 산업은 빠르게 운신의 폭을 넓혔다. 생산 차질과 부품 공급 부족 등에 휩싸였음에도 계획대로 신차를 쏟아냈다. 주력 신차들이 공교롭게 이 무렵 시장에 출시되면서 2000년대 이후 세 번째로 맞는 이른바 ‘슈퍼 신차 사이클’을 맞았다.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결정적인 계기였다.
동시에 새로운 변화를 맞았다. 네 바퀴 달린 자동차만 개발해온 자동차 업계가 도심항공교통(UAM)을 비롯해 인공지능과 자율주행 등을 앞세워 새로운 분야에 출사표를 던지기 시작했다. 로봇산업은 물론 항공산업에까지 영토를 확장하기 시작한 셈이다.
일본 토요타의 경우 새로운 도시 건설 프로젝트를 들고나오는 등 주요 제조사들이 전통적인 자동차 산업의 굴레를 벗어나 새로운 청사진을 제시한 것도 이때부터다.
반면 세계 주요 국가의 자동차공학계는 주춤할 수밖에 없었다. 다양한 논문이 쉼 없이 쏟아졌으나 보폭은 제한적이었다. 코로나19 이후 하늘길이 막히면서 주요국의 자동차 석학들과의 교류, 나아가 네트워크 확대가 가로막혔기 때문이다.
민 교수 역시 이런 상황에 안타까움이 컸다. “코로나19 이후 최근 3년 사이 국제교류가 거의 없었어요. 지난해 하반기부터 조금씩 움직임이 커지고 있는 정도입니다. 우리나라는 가까운 일본은 물론 중국과 함께해야 경쟁하고 성장할 수 있어요.”
다행히 지난해 하반기부터 국제 교류의 물꼬가 트이기 시작했다. 민 교수는 지난해 프랑스 파리에서 개최된 FISITA 월드 모빌리티 서밋에서 한국인으로서는 두 번째로 테크니컬 리더십을 수상했다. 1950년에 설립된 FISITA(International Federation of Automotive Engineering Societies)는 35개국, 20만 명 이상의 회원을 확보한 국제자동차공학연합 조직이다.
민 교수는 이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교류 확대를 추진할 계획이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정부와 기업, 공학회의 유기적인 맞물림도 준비 중이다. 그는 “작은 변화가 향후 몇 년 안에 두드러진 성과로 이어질 것”이라고 자신했다.
“자동차공학회가 꾸준히 세미나와 행사, 워크숍 등을 통해 새로운 비전을 반복해서 강조하면 틀림없이 새로운 방향성이 자리를 잡게 됩니다. 자동차 공학회 사무국에 14명의 직원이 있는데요. 정말 큰 힘이 됩니다. 우리가 방향을 0.1도만 틀어도 5년 뒤에는 공학회에서도 많은 변화가 일어날 겁니다.”
민 교수는 맹목적으로 새로운 트렌드를 받아들이고 있는 자동차업계에서 냉철한 시각으로 현재를 진단해 왔다. 대표적인 사례가 전기차에 대한 맹목적인 추종성이다.
“전기차가 친환경차인 것은 맞아요. 다만 탄소배출을 자동차의 배기가스에만 집중해서는 안 된다는 게 중요합니다. 주행 중에 전기차가 배기가스를 배출하지 않는다고 무조건 전기차가 친환경적이라는 주장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생애 전체 주기에 걸쳐 탄소 배출량을 제대로 따져봐야 합니다.” 민 교수는 그동안 여러 세미나를 통해 “전기차의 생애 전주기 탄소 배출과 하이브리드 자동차의 생애 전주기 탄소배출량을 비교하면 아직까지는 큰 차이가 없다”고 주장해 학계의 주목을 받아왔다.
민 교수는 전기차 배터리의 제조 과정은 물론 배터리의 원재료인 희토류 채굴 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 나아가 재사용까지 끝낸 전기차 배터리의 폐기 과정까지 발생하는 모든 단계에서 탄소 배출을 따져봐야 한다고 밝혔다.
자동차공학회는 최초의 고유모델인 현대차 포니 출시(1975년)에 맞춰 학계와 산업계의 석학들이 ‘공학회’ 추진에 뜻을 함께했고, 이들을 중심으로 1978년 자동차공학회가 출범했다. 자동차 산업이 발달해오는 사이 자동차공학회는 개인 회원만 4만 명을 훌쩍 넘는 단체로 거듭났다. 여기에 완성차 제조사 5곳을 포함해 기업과 연구소 등 700여 곳이 법인회원으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