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로 북한 정권은 두 가지 당면한 전선(戰線)이 있다. 하나는 외부로부터의 체제 방어이다. 핵과 미사일 개발은 북한식 표현대로라면 외부로부터의 압살 기도를 막아주는 국체·보검·최후의 보루가 된다. 다른 하나의 전선은 내부로부터의 도전이다. 국방력도 중요하지만 경제·민생 등 주민들의 기본적 수요를 충족시켜 주어야 한다. 역사적으로 권위주의 정권이 위기를 겪은 주요 원인은 민생문제 파탄에 따른 주민들의 불만 누적에 기인한다. 지도층의 부정부패도 한몫을 한다. 물리적인 통치기제가 있기 때문에 주민들을 억압적으로는 통제할 수는 있지만 누적된 불만은 외부 사조의 유입과 함께 어느 부분에서 곪아 터질지 모른다. 먹고사는 문제에 있어 성과를 보이지 못하면 아무리 성능 좋은 무기를 갖고 있더라도 주민들의 지지와 동의를 얻지 못하게 됨은 자명하다. 이번 최고인민회의에서 한 해 예산의 절반을 경제 분야로 투입한 것은 북한 나름의 자구책으로 볼 수 있다. ‘평양문화어보호법’을 채택한 것은 명목상으로는 우리말 지키기지만 이미 북한 사회에 만연한 외부 사조의 유입을 경계하기 위한 것이다. 북한이 당 전원회의와 정치국 회의 등 주요 회의 때마다 반사회주의·비사회주의적 행위의 근절을 내세워 왔던 이유도, 앞서 2020년 12월 반동사상문화배격법을 채택한 이유도 체제 이완에 따른 도전적 요인을 미리 차단하기 위한 것이다. 올해 5개년경제개발계획 수립 3년 차를 맞이하는 북한이 주민들의 민생문제에 있어 어떤 성과를 낼지 주목된다.
올해 남북관계의 전망은 매우 어둡다. 1월 내부 주요 회의를 마친 북한은 2월 8일 건군절을 기점으로 대대적으로 ‘강 대 강’ 대적 투쟁에 나설 것이다. 건군절에는 대규모 야외 열병식을 개최하여 지금까지 국방 분야의 성과들을 과시하려 할 것이다. 북한은 4월 정찰위성의 준비를 끝낼 것을 예고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한미연합훈련의 질적·양적 강화 도모에 대해 북한은 고강도 도발로 맞대응할 것이다. 3월과 4월에는 한반도의 긴장 고조가 예상되고 윤석열 정부 취임 1주년이 되는 시점을 전후하여 남북 간 갈등은 최고조에 이를 것이다. 이러한 가운데 7차 핵실험이 여전히 정책적 분수령이 될 수도 있다. 북한이 7차 핵실험을 감행한다면 한·미·일과 국제사회의 강력한 반발을 초래할 것이고 동북아 정세 전체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다만 중국이 명시적으로는 핵실험 반대 입장을 내세우고 있어 다방 면에서 중국의 지원이 필요한 북한으로서는 핵실험 단행에 신중하게 접근할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어떤가. ‘전쟁준비’, ‘우리의 적은 북한’. ‘자체 핵보유’ 등 최근 여러 계기에서의 윤 대통령 발언이 회자되고 있다. 대통령의 이러한 발언들이 한반도 긴장을 해소하는 데 과연 어떠한 도움이 될지 모르겠다. 즉흥적인 발언이거나 어떤 정치적인 목적을 위해 계산된 발언이라면 더욱 위험해 보인다. 남북의 지도자가 이구동성으로 상대방을 주적이라고 외치고, 신냉전이라는 표현을 써가면서 스스로를 냉전적 대결 진영에 매몰시키려는 모습을 볼 때 한반도의 분단 해소는 아직도 요원하다는 생각이 든다. 국제적인 대결 구도에 편입되면 한반도의 주도권은 과연 우리가 가져갈 수 있을까? 이제 2~3월이면 최근 몰아친 한파도 잦아들고 한반도에는 봄이 찾아올 텐데 남북관계는 한동안 춘래불사춘이 될 것 같아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