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인을 위한 101] 개방성을 증진시키는 통경축과 공공보행통로

입력 2023-02-02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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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선 연세대 도시공학과 교수

지난해 연말께 구글, 애플, 메타 같은 세계적 기업들이 몰려 있는 미국 실리콘밸리(Silicon Valley)에 3주간 머물 기회가 있었습니다. 이 명칭은 샌프란시스코 만(San Francisco Bay) 지역 남부를 이르는 말로, 원래는 실리콘 칩 제조회사들이 많이 모여 있었기에 그런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지금은 세계의 기술혁신 허브로 물리적 경계 없이 이 지역에 흩어져 첨단기술을 이끄는 곳입니다. 특히 이곳에는 마운틴뷰 시(City of Mountain View)라는 지방정부가 있는데, 인구는 2021년 기준 8만3000명 정도이며 구글 본사가 위치해 있습니다.

이 도시 이름은 지역에 있는 산타크루즈 산맥에 대한 전망에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워낙 환경을 소중히 여기고 관리하는 캘리포니아 주에 있어서 그런지, 이곳에서는 1층 단독주택을 2~3층으로 바꾸고자 할 경우 주변 소유자들과 공청회를 거치게 되는데, 내 재산임에도 불구하고 증축이 거의 불가능하다고 하며, 집 안에 있는 커다란 나무가 집을 망가트릴 염려가 있어 이를 제거하고자 하는 경우 환경 관련 인허가도 매우 어렵다고 합니다. 또한 풍부한 녹지와 자연환경, 이에 대한 접근성, 멋진 도시경관 및 전망을 잘 유지하고 있어 세계적 첨단기업의 종사자들이 모여 살고 있고 엄청난 연봉을 받는 사람들도 주택을 마련하기 어려운 도시입니다.

마운틴뷰라는 이름을 생각해보면 그 이름에 가장 걸맞은 도시는 미국의 그곳이 아니라 바로 대한민국 서울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전 세계 어느 도시도 가질 수 없는 산·강·언덕 등 수려한 자연환경이 공존하고 있으며, 특히 외국인들이 가장 부러워하는 것처럼 산이 동서남북으로 둘러싸고 있으니까요. 자연과 녹지에 대한 조망권 또는 개방성은 도시민들에게 매우 중요한 자원일 뿐 아니라 부동산 가치에 매우 큰 영향을 준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특히 지난 3년간의 팬데믹을 겪으면서 자연과 녹지에 대한 조망, 접근성 및 이용성 여부는 도시민들의 정신건강에 매우 밀접한 영향이 있다는 것이 수많은 논문에서 밝혀지기도 하였습니다.

최근 노후 저층 주거지를 공동주택으로 탈바꿈시키는 재개발·재건축 사업(정비사업)이 진행되고 있는데, 이를 위해 정비계획 수립 단계에서 공공성과 사업성의 균형을 이룬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신속한 사업 추진을 지원하는 공공 지원계획인 신속통합기획을 서울시에서 추진되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가장 많이 논의되고 있는 도시설계기법 중 하나가 조망, 개방감 및 통행 편리성 확보를 위해 조합원들의 사유지에 통경축과 공공보행통로 설치하는 것입니다.

통경축은 공동주택을 건설할 때 따라야 하는 지침인 국토부의 ‘공동주택 디자인 가이드라인’에서 ‘조망 등을 확보할 수 있도록 시각적으로 열린 공간’이라고 정의되고 있습니다. 정비사업이 이루어지는 노후 주거지의 경우 도시 내 건조환경이 밀집되어 일정 거리의 개방적 가시권 확보가 어려운 지역이 대부분이라 개방감을 높이기 위해 정비계획수립 때 선형의 통경축을 설정하여 단지 내 주민뿐만 아니라 인근 주민을 위한 개방 공간을 확보하는 방법입니다.

조합원들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주택 수를 늘려 건설할 수 있도록 주동을 최대로 배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능하면 좋은 단지설계를 통해 이러한 통경축을 확실히 확보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그렇게 되면 아파트의 주동 간 간격이 넓어지는 효과가 있으며 개방감도 생기고 쾌적하게 느껴질 뿐만 아니라 살기 좋은 아파트로 평가되어 자산가치도 높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최근 둔촌동의 한 재건축 아파트의 경우 ‘1.8~2.6m 앞 주방뷰’라는 부정적 평이 언론에 많이 오르내렸던 것을 생각해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 하나, 공공보행통로는 단지 안에 설치된 공간이지만 외부인의 이용과 관련하여 임의로 폐쇄·통제되는 경우가 왕왕 있고, 그로 인해 인근 주민들과 마찰을 빚고 법적 분쟁이 발생하던 시설입니다. 공공보행통로는 국토부 지구단위계획 수립지침에 따라 계획을 수립할 때 적용되는 기준으로, 정비사업은 이 지침을 따라야 하는 사업이기에 공공보행통로 지정 여부를 검토할 수 있습니다.

공공보행통로는 단지 내 주민 및 인근 주민들이 편리하게 짧은 길을 선택해서 갈 수 있도록 보행 편리성과 연계성을 증진하기 위한 것으로, 아파트 단지가 폐쇄적으로 조성되어 도시와 단절되는 것을 개선해줄 뿐만 아니라 개방감과 조망을 높여줄 수 있는 장점도 있습니다. 문제는 공공보행통로를 지정할 경우 일반인의 출입이 용이하여야 하며 24시간 개방을 원칙으로 하고 보행에 지장을 주는 시설물을 설치해서는 안 되는데, 이러한 통로가 사유지에 만들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조성 후 그 기능을 유지하기가 어려운 문제가 발생하여, 최근엔 구분지상권을 설정하여 유지 관리가 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노후하고 조밀한 주거지 및 도시 공간에 정비사업을 통해 조성할 수 있는 통경축과 공공보행통로는 사적 이익과 공적 이익을 동시에 추구할 수 있는 기법입니다. 정비사업 추진 과정에서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꽉 짜인 기성 도시가 가진 폐쇄성을 줄이면서 개방성을 높이고, 자연환경에 대한 전망을 도시민들과 함께 누릴 수 있도록 하여 건강한 도시를 만드는 노력에 함께 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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