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격해지는 반정부 시위에 불타는 페루...의회도 교착 상태 빠져

입력 2023-02-04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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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티요 탄핵에 반감 가진 시위 확산
시위 진압 과정서 사망자 발생하자 시민 분노 커져
시위대, 볼루아르테 사임과 조기 선거 요구
페루 의회·정부, 수십 년 동안 기능 상실
이는 시민 불만, 분열 키운 배경

▲페루 리마에서 지난달 31일(현지시간) 경찰이 한 반정부 시위 참가 여성을 체포하고 있다. 리마/EPA연합뉴스
▲페루 리마에서 지난달 31일(현지시간) 경찰이 한 반정부 시위 참가 여성을 체포하고 있다. 리마/EPA연합뉴스

디나 아세시나! 디나 아세시나!

‘살인자, 디나’란 구호가 지난 몇 주간 페루 거리에서 울려 퍼지고 있다. 디나는 페루 대통령인 디나 볼루아르테를 가리킨다. 페드로 카스티요 전 대통령이 탄핵된 작년 12월 7일, 부통령이었던 볼루아르테는 법률에 따라 대통령에 임명됐다.

지난 2개월 사이 카스티요 전 대통령의 탄핵에 반감을 가진 이들의 시위가 격화하면서 볼루아르테 대통령의 지위가 급격히 위태로워졌다. 시위 진압 과정에서 사망자가 발생하면서 그를 향한 시위대의 분노는 더욱 불타올랐다.

페루 반정부 시위, 갈수록 과격해져

최근 영국 경제 주간지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중앙정부 행정과 공공서비스 실태를 감시하는 헌법 기관인 페루 옴부즈맨 사무소는 카스티요 전 대통령 탄핵 이후 지금까지 시위 도중 최소 58명이 사망했다고 밝혔다. 이중 46명은 진압 부대와 시위대 충돌 과정에서 숨졌다.

볼루아르테 대통령의 사임과 의회 해산, 조기 선거 등을 요구하는 시위는 더 과격해지고 있다. 시위대는 주요 도로와 고속도로 등을 막으면서 교통망을 차단했고, 이로 인해 주요 도시의 병원과 같은 필수시설은 음식이나 휘발유, 산소 등의 부족을 겪고 있다. 도로 점거로 사망한 사람도 최소 10명이다.

수도 리마에서는 매일 저녁 국회의사당 진입을 시도하며 화염병 등을 던지는 위험한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경제부는 시위 과정에서 공공시설과 공장, 농장이 파괴돼 1월 말 기준 약 6억2500만 달러(약 7607억5000만 원)의 생산 손실이 발생할 것으로 추정했다.

카스티요 “나는 엘리트 정치의 피해자”

카스티요 전 대통령의 탄핵 당시엔 우파뿐 아니라 좌파 지지자들 역시 그를 비난했다. 카스티요 전 대통령의 의회 해산, 비상정부 수립 계획이 선출된 독재자로서 1990년부터 2000년까지 페루를 통치한 알베르토 후지모리의 1992년 ‘셀프 쿠데타’를 떠오르게 했기 때문이다.

볼루아르테 대통령은 당시 “카스티요의 의회 해산 계획은 페루 사회의 정치·제도적 위기를 악화하는 쿠데타”라며 “페루는 엄격한 법치 준수로 위기를 극복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카스티요 전 대통령 측의 반박은 그를 쿠데타를 일으킨 당사자에서 우파 공격의 희생자로 만들었고, 그의 지지자들을 흔들었다. 카스티요 전 대통령 측은 현재 부정부패 혐의 등을 부인하며 오히려 우파 엘리트 정치인들이 자신의 통치를 인정하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기득권 엘리트들이 제도를 이용해 자신을 끌어내렸다는 것이다.

알프레도 토레스 여론조사 전문가는 “현재 페루 국민의 약 절반과 안데스 산맥 지역에 거주하는 시민의 3분의 2는 카스티요 전 대통령의 주장을 믿고 있다“고 분석했다.

농촌 지역 원주민들도 상경 투쟁을 벌이는 상황을 두고 캐롤라이나 트리벨리 전 사회부 장관은 “카스티요 전 대통령은 그들에게 자신이 인정하는 대통령이었다”고 설명했다. 트리벨리 전 장관은 “농촌 지역은 정치 중심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고, 무시되기 일쑤였다”며 “카스티요 전 대통령은 부패했지만, 어쨌든 그는 자신들 중 하나”라고 말했다.

분열의 씨앗

페루를 뒤흔들고 있는 반정부 시위와 분열은 위태로운 정치사와 무관치 않다. 후지모리 전 대통령 집권 당시 페루는 자유 시장 정책 도입으로 경제적 성장을 이뤘지만, 제도적 성장은 뒤처졌다. 점점 커지는 시장을 감시할 제도가 부재함에 따라 페루 경제는 비등록, 불법 사업이 지배했고, 동시에 정치 체제 역시 계속 부패했다.

페루는 2016년부터 지금까지 무려 6번째 대통령을 맞았는데, 이중 2명만 선거를 통해 선출됐으며 6명 중 누구도 의회 다수의 지지 역시 얻지 못했다. 2001년 이후 페루를 통치한 9명의 대통령 중 6명은 부패 혐의로 기소된 상태다.

정부뿐만 아니라 의회도 기능을 상실하긴 마찬가지다. 130석의 의회는 무려 12개의 정당이 나눠 차지하고 있으며, 일부 정당은 사업적 목적으로 만들어진 단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이코노미스트는 지적했다.

볼루아르테 대통령의 고문인 라울 몰리나는 “페루 국민은 정치에 대해 구조적인 피로감을 호소하고 있고, 국가 대응은 부족한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특히 안데스 산맥 원주민 등 경제 성장의 혜택을 누리지 못한 사람들의 정치 스트레스는 더 심각한 상황이다.

현재로선 시위대가 요구하는 가능한 빠른 조기 선거가 유일한 해결책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조기 선거를 실시하자는 정부의 요청은 다소 늦은 감이 있고, 의회는 교착 상태에 빠졌다. 조기 선거를 위해선 14일까지 개헌이 이뤄져야 하지만 우파는 내년 선거 실시를, 좌파는 선거와 제헌 의회를 연계를 주장하며 부딪히고 있다. 이코노미스트는 “이들이 시답잖은 논의를 하는 사이 페루는 불타고 있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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