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원회비는 기부금 아냐”…대법, 조직운영에 회비 쓴 단체에 “무죄”

입력 2023-02-04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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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비는 기부금품 모집등록 대상’ 유죄 판결 뒤집혀

법무법인 태평양‧재단법인 동천 공익 변론
기부금품법 제약 두고 ‘소속원’ 여부 쟁점
“회원 자격‧권리 분명하면 기부금 아니다”
1‧2심 잇단 패소後 1년 넘는 상고심서 반전

단체 규정에 회원 권한이 분명하다면 후원 회원이 낸 돈은 ‘기부금’이 아니라 ‘회비’이고, 기부금품의 모집 및 사용에 관한 법률(이하 기부금품법) 제약 없이 조직 운영에 사용할 수 있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4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2부(주심 민유숙 대법관)는 2일 기부금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사단법인 A 연맹과 대표 B(63) 씨에게 유죄를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대구지방법원으로 돌려보냈다.

기부금품법 위반 혐의에 유죄를 선고한 원심 판결이 그대로 확정될 경우 정기 후원금을 통해 운영되는 단체는 사실상 존속하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돼 전국 비영리‧공익단체 관계자들의 우려가 컸다.

법무법인(유한) 태평양과 재단법인 동천은 이 사건의 상고심을 공익 사건으로 선정하고 변호했다. 그 결과 유죄 부분을 파기‧환송하는 승소 취지 판결을 이끌어 내며 원심 판단을 뒤집었다.

▲ 서울 서초동 대법원 전경. (연합뉴스)
▲ 서울 서초동 대법원 전경. (연합뉴스)

檢 “매달 회비에도 기부금품법 적용해야”

법원에 따르면 전국에서 취약계층 대상 무료 급식, 자원봉사 활성화 사업을 해온 A 연맹은 기부금품법에 따라 관할 지방자치단체에 ‘기부금품 모집 등록’을 하고 기부금을 모아왔다. 하지만 2013년부터 2018년까지 5년간 후원 회원으로부터 모집한 기부금 사용이 기부금품법에 위반했다는 혐의로 기소됐다.

기부금품법은 모금‧관리‧운영‧결과보고 등을 목적으로 단체가 쓸 수 있는 ‘모집비용’을 전체 모금액의 15% 이내로 제한하는데, A 연맹이 홍보비나 직원 인건비 등으로 사용한 금액이 이 비율을 넘었기 때문이다.

재판에서는 재원의 92%를 차지하는 20만 명 규모의 회원을 ‘소속원’으로 볼 수 있는지가 쟁점이 됐다. 소속원이 납부한 돈은 기부금품법 규정의 제약을 받지 않는다.

검찰은 A 연맹에 ‘일반 회원’, ‘정기 회원’ 등으로 가입한 사람들이 매달 낸 회비나 정기 후원금에 대해서도 기부금품법이 적용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1심과 2심은 모두 검찰 주장을 받아들여 유죄를 선고했다.

▲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원각사 무료급식소에서 어르신들이 대기하고 있다. (뉴시스)
▲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원각사 무료급식소에서 어르신들이 대기하고 있다. (뉴시스)

1‧2심은 A 연맹 회원을 소속원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명칭은 ‘회원’이지만 이들이 매월 5000~1만 원 이상 돈을 내는 것 말고는 특별한 활동을 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1‧2심은 정 회원, 후원 회원이 ‘소속원’ 아닌 단순 ‘후원자’이므로 이들이 납부한 회비는 ‘기부금품’이라고 보고, 법에 어긋나게 기부금품을 쓴 A 연맹에 유죄를 인정했다.

그러나 기부금품법이 현재 형태로 개정된 이래 행정안전부 등 등록청은 정기후원회원 등 정관에 따라 가입한 회원들로부터 받는 기부금은 ‘소속원’으로부터의 모금에 해당하므로 모집등록 대상이 아니고, 모집비용은 모집활동에 수반하는 모금종사자 인건비 등에 한정된다고 일관되게 해석해왔다.

이에 따라 국내 대부분의 비영리‧공익 법인은 정기회비에 대해서는 모집 등록을 하지 않았고, 관련 세법이 정하는 규율에 따라 비용을 지출해왔다.

재단법인 동천 관계자는 “기존 행정해석을 전면적으로 뒤집은 이 같은 원심 판결이 그대로 확정될 경우, 사실상 국내 대부분의 비영리‧공익 법인은 기부 관련 법령과 주무관청, 국세청, 기부금품 모집 등록청의 행정지도를 준수해왔더라도 법을 위반한 게 된다”면서 “직원들에게는 인건비조차 제대로 지급할 수 없어 운영에 어려움을 겪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청사 앞 검찰 깃발. (뉴시스)
▲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청사 앞 검찰 깃발. (뉴시스)

大法 “정관 따른 ‘후원회원’ 돈엔 기부금품 제외”

사단법인 A 연맹은 2심 유죄 판결 이후 기부금품법 관련 입법운동, 연구, 법률자문 영역에서 전문성을 쌓아 온 동천의 문을 두드렸다. 동천은 법무법인(유) 태평양 변호사들과 변호인단을 꾸려 종전 판례와 법률 연혁, 기부금 관련 법체계의 종합적인 해석을 통해 적극적으로 다투었다.

대법원은 1년여 심리 끝에 2일 원심 판결 중 유죄 부분을 모두 파기하고 원심 법원에 환송하는 판결을 내렸다.

대법원은 회원을 소속원으로 봐야 한다고 판단을 뒤집었다.

대법원은 회비가 기부금품에 해당하는지 판단하기 위해 설립 목적과 운영 상황, 회원 가입 자격‧절차, 회원의 권리‧의무, 회비 납부‧관리 방식 등을 구체적‧종합적으로 따져봐야 한다는 기준을 처음으로 제시했다.

A 연맹은 법인 정관에 정 회원과 후원 회원의 지위와 의결권 등 권리를 명시했고 후원증과 회원증을 발급하며 회원들을 관리했다. 모은 돈은 무료급식소 사업장 확충‧관리, 법인 운영비 등으로 썼다. 모금 과정이나 각종 보고, 공시, 회계감사 등에서 불법 행위가 드러난 적도 없었다.

▲ 서울 서초동 대법원 대법정에 김명수(가운데) 대법원장을 비롯한 대법관들이 착석해 있다. (사진 제공 = 대법원)
▲ 서울 서초동 대법원 대법정에 김명수(가운데) 대법원장을 비롯한 대법관들이 착석해 있다. (사진 제공 = 대법원)

대법원은 A 연맹에 대해 “설립 목적과 회비‧후원금의 관리‧사용 현황 등을 종합해 보면 회비 등의 납부가 무분별하게 이뤄지지 않을 것으로 기대되고 적정한 사용 또한 담보될 수 있는 경우”라고 판시했다.

대법원은 △피고인 법인의 정관에 따라 ‘후원 회원’ 등 자격을 얻은 회원들로부터 납부 받은 금원은 기부금품법 규율 대상인 기부금품에서 제외된다고 봄이 타당하고 △피고인 법인의 인건비 및 홍보비는 법인의 목적 수행에 수반되는 비용이며 △모집목적 외의 용도로 지출한 금액은 이자 등으로 인한 수입 금액에도 미치지 않고 △피고인 법인이 법인세법, 상속세 및 증여세법 등 법령에 규정된 각종 의무를 위반한 사실도 확인되지 않으므로 △회비 등의 납부가 무분별하게 이뤄지지 않을 것으로 기대되고 적정한 사용 또한 담보될 여지가 상당하다는 취지로 판단했다.

이번 판결로 전국 공익단체들이 중대한 운영상 위기를 면하게 됐다. 향후 공익활동의 활성화, 합리적인 관리‧감독체계 마련을 위한 법제 개선에 긍정적인 영향이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박일경 기자 ek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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