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나이 예순. 길동 씨는 IMF를 겪으며 하루아침에 직장이 사라지는 날벼락을 맞았다. 구조조정으로 세상이 어수선한 시절이었지만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터라 충격은 더 컸다. 회사밖에 몰랐다. 인생에서 회사가 가족보다도 우선순위였기에 ‘직장에서의 아웃’은 납득도 용납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날 그의 세상은 무너졌다. 화가 나고 억울해서 미칠 지경이었지만 방법이 없다 보니 술에 화풀이했다. 맨정신으로는 도저히 살 수 없어 매일 취했다. 술이 술을 부른다고 그의 음주는 철로를 탈선한 폭주기관차처럼 멈출 줄 몰랐다. 그러는 사이 정신은 병들고 인간관계도 망가지고 가정은 파탄 나고 사랑하는 가족들도 떠나갔다. 그는 화가 나서 술을 마셨고 화난 감정을 누르기 위해 술을 마셨다. 잠이 안 와서 잠을 자기 위해 술을 마셨고, 외로워서 외로움을 견디기 위해 술을 마셨다. 음주는 일상이 되었다. 몸은 망가지고 마음도 피폐해지고, 단절되고 고립된 생활로 삶이 황폐해졌다. 알코올 사용장애를 겪고 있는 사람들이 모인 자조모임에서 그는 술로 사라진 삶을 회상하며 떨리는 목소리로 죽음보다도 외로움이 더 무섭다고 말했다. 일순간 시간이 멈춘 듯 숙연해졌다. 동병상련, 말은 하지 않아도 모두 같은 마음이었을 게다.
기분이 좋아도 기분이 나빠도 술을 마시다 보니 많은 사람들은 술로 감정을 다스릴 줄 안다고 착각한다. 또 술은 자신이 끊겠다고 마음먹으면 언제든지, 원할 때, 완전히 끊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길동 씨도 그랬다. 술 없이는 일상생활을 하기가 어려웠지만, 자신이 알코올 중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 힘들다는 담배도 끊었는데 술쯤이야’ 하고 우습게 생각했다. 그러나 생각과는 달리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을 보면서 망연자실, 중독임을 직시했다고 한다. 길동 씨처럼 많은 알코올 중독자들은 자신이 중독자임을 인정하지 않는다. 중독자임을 인정하게 되는 순간 보이는 현실 때문이라고 한다. 술을 조절하거나 통제하기가 어렵다면 지금 당장 술잔을 멈추고 중독은 아닌지 곰곰이 생각해볼 일이다. 술이 약이 아닌 독이 되는 선을 넘는 순간, 잃는 것이 너무 많다는 걸 잊어서는 안 된다.
김현주 서울 서대문구보건소 사회복지사